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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성원(1697-1768)이 포천 금수정에 들렸다가 금강산에서 부사공(지동)과 판관공(건)과 유람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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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주회 작성일06-01-31 20:41 조회1,457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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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 박성원의 글에서

 박성원(朴聖源) : 1697(숙종 23)∼1757(영조 33). 조선 중기의 문신·학자. 본관은 밀양. 자는 사수(士洙), 호는 겸재(謙齋). 이재(李縡)의 문하에서 수학하였다.

박성원(1697-1768)의 <금강록>은 그의 나이 42세인 1738년(영조14)에 함경도 도사로 임명되어 부임하러 가는 도중에 금강산에 들러 외금강과 내금강, 해금강을 15일 동안 두루 구경하면서 느낀 소감을 매우 자세하게 적은 기행문이다. 금강산에 들렀을때 당시 그곳의 현감이었던 부사공(지동)과 그의 아들 판관공(건)이 박성원 일행을 안내하면서 금강산 유람을 함께 한 기행기가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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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월 3일 포천현감 이중태의 인사를 받고, 영평현 경계에 이르고, 양문역에 이르러, 백로주의 하류 금수정을 방문하고, 백운루, 술독 같은 바위, 길 입구 석문동천 큰 글씨, 서쪽 5리 푸른 옥병, 물 건너편 사암 박순의 집터-지금은 서원을 둘러 보고 금강산으로 떠났다.

 금수정을 방문하였는데 이 곳이 곧 백로주의 하류이다. 평지의 양 벌판을 끼고 물이 흘렀으며, 마주보며 우뚝 솟아나와 있어서 물이 그 사이로 도달하여 넓게 돌아서 못을 이루고 있었다. 금수정은 서쪽 절벽 위에 있는데 마을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백운루는 조금 높은 곳에 있었다. 앞에 봉우리들이 빼어나고 기묘했으며 붉은 잎들이 물에 그림자를 드리웠고, 물 가운데는 술독 같은 바위가 있어, 술을 가득 담을 수가 있을 것 같았다. 봉래 양사언이 "석문동천 (石文洞天, *洞天石門의 오류)" 이라고 큰 글씨로 길 입구에 놓았으며, 여기서부터 서쪽으로 5리쯤 가면, 푸른 바위가 우뚝 솟아 물의 흐름을 막고 있었는데 이것이 곧 푸른 옥병이다.

---금강산에 들렀을때 당시 그곳의 현감이었던 부사공(지동)과 그의 아들 판관공(건)이 박성원 일행을 안내하면서 금강산 유람을 함께 한 기행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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