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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주회 작성일06-02-11 09:53 조회1,226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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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안동김씨

안동김씨(安東金氏)들은 구(선)안동과 신(후)안동으로 구분하고 있는데 여주에 거주하는 구안동김씨는 고려중기 몽골의 침략기를 슬기롭게 극복해낸 명장이자 명재상으로 유명한 김방경(金方慶)의 후손들로 현재 흥천면 귀백리 등지에 거주하고 있다. 고려후기에는 김방경의 현손들인 김구용,김제안,김구덕 형제가 모향(여흥민씨 민사평)을 찾아 김구용은 천녕현(현 이포면)에 유배를 와서 육우당을 짓고 수년간 살았고, 김구덕은 현재 가남면에 묘가 있다. 조선초기에는 김방경의 8세손 김환이 여말의 충신으로 두문동 72현의 한 사람으로 알려지고 있는 증조부 김사렴의 유훈으로 선대의 고향인 오근(충북 청원군 오창면)에서 여흥(현 흥천면 귀백리)로 이거하였다. 김환은 1442년(세종24)에 문과에 급제하여 승문원판교(承文院判校)에 이르렀다. 이후 후손들이 20여대째 세거하여 현재 50여가구가 거주한다. 명종때 무신인 11세손 김공석(金公奭, 1477-1553)은 1507년에 무과에 급제후 함경도 병마절도사(咸鏡道 兵馬節度使)에 이르럿다. 묘는 귀백리 남쪽 구릉에있다. 12세 문단공 김주(金澍, 1512-1563)의 자는 응림(應霖). 호는 우암(寓庵)이다. 1531년(중종26)에 진사가 되고, 1539년(중종34)에 별시 문과에 장원으로 급제하여 호당에 뽑혔다. 전라도, 황해도 관찰사 및 개성유수, 대사헌(대사성)을 지내고 예조참판에 이르럿다. 1563년(명종18) 선계변무사(璿系辨誣使)로 명나라에 가서 사명을 완수하였으나 그곳에서 병들어 죽었다. 1590년(선조23)에 그의 공이 인정되어 광국공신(光國功臣)3등으로  화산군(花山君)에 추봉되었다. 이황(李滉), 김인후(金麟厚), 임형수(林亨秀) 등과 교유가 깊었다. 시호는 문단(文端)이다. 그의 묘는 귀백리 백양산 절골 우측 구릉이다.

 제2권 78페지(성씨와동족마을편)

         79페지 安東金氏 系譜편--  始祖  方慶--2세恂--3세永煦--4세천--5세士廉--6세약--7세遇周--8세丸(묘 흥천면 귀백리)--9세宗孫(묘귀백리)--10세城(1451-1487 묘귀백리}--11세公亮(1472-1544,묘귀백리),,,,,公奭(1477-1553.咸鏡北道 兵馬節度使묘귀백리)--12세3남澍(묘귀백리).....濯(1526-1598묘귀백리)--13세正男(形曹佐郞)....壽男(1547-1605兵使 묘귀백리)--14세憙(1567-1635.長興府使)....지  지 (昌原大都護府使.묘귀백리)--15세1남鼎基.  2남益基.  3남泰基.....允厚...光厚...益厚---16세 鎬..당.. .......................................

          166페지 부록 여주의 성씨와 세거지-----구안동김씨 안렴사공파...흥천면상백리..귀백리--15세기중반   8세 환(丸)

          171페지 흥천면의 세거성씨  ---------구안동 안렴사공파

          38페지   성씨별 여주입향시기-------구안동김씨 15세기중반

          25페지 판교공 丸(묘) 하단 설명. 15세기중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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