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범께서 심으신 향나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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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환 작성일02-04-17 18:47 조회1,658회 댓글0건본문
마곡사 대웅전 앞에는 백범선생님이 심으셨다는 향나무가 있다고 전해오는데
확인하지 못한 사항이라 현종여러분중에서 마곡사를 다녀오신분이 계시면
이에 대해 알려 주시기 바라며, 저도 마곡사에 들리면 꼭 확인하겠습니다.
자료
- 김구선생의 은거지
이곳은 대한민국 임시정부 주석이며 우리민족 독립운동의 지도자인 백범 김구(1836-1949)선생이
1896년 명성황후 민씨시해에 대한 분노로 안악군 치하포에서 일본군 특무장교를 처단 후 은거하여
도를 닦던 곳이다. 조국 광복 후 선생이 이곳을 찾아 대웅전 주련에
却來觀座間猶如夢中事(돌아와 세상을 보니 흡사 꿈속의 일 같구나)를
보시고 더욱 감개무량하여 그 때를 회상하며 향나무 한 그루를 심어 놓았다.
마곡사의 건물들
천왕문 [문화재자료 제62호]
입구에서 해탈문을 거쳐 두 번통과하는 문이다. 정면 3칸, 측면 2칸으로 해탈문과 같은 규모이나
해탈문이 팔작집인데 비하여 맞배집이라는 점에서 차이가 있다. 중앙 칸에는 동서남북의 불법을
수호하는 호법신인, 사천왕상을 안치 하였다. 건립 연대는 미상이나 내부에 걸린 연액에는 1910년에
중수 하였다고 기록되어 있다.
- 오층석탑 [보물 제799호]
이 오층서탑의 최정상부에는 라부식 보탑과 유사한 청동제의 장식물로된 상륜부가 있어 특이한
형태를 보이는 탑이다. 2층탑신부 4면에는 4방불인 아촉불·보상불·아미타불·묘성불이 조각되어 있다.
원나라 영향을 받은 고려 말의 작품으로 임진왜란때 무너져 그 속의 귀중품은 이미 없어졌다.
- 해탈문 [문화재자료 제 66호]
마곡사의 정문으로 이문을 통과하면 속세에서 벗어나 법계에 들게 되고 해탈하고야 말겠다는
마음을 갖게 된다고 하여 해탈문이라 한다. 건물은 정면 3칸, 측면 2칸의 팔작집으로 정면의
중앙 칸을 개방하여 통로로 사용하고 양쪽 협칸에는 흙으로 구워만든 금강 역사상 2구씩을 안치 하였다.
- 대광보전 [보물 제7802호]
대광보전은 비로자나불을 모신 곳이다. 비로자나르는 광명이 어디에나 두루 비친다는 뜻을 지며
이불상이 봉안된 불전을 대광명전 또는 대적광전 등으로도 부른다. 현재의 건물은 조선
순조13년(1813)에 다시지은 덧으로 정면 5칸, 측면 3칸의 규모이다. 기둥위 추녀 밑으로는
처마의 하중을 받고 또 장식도 겸해 짜맞춘 포가 많이 배치된다. 포형식은 팔작지붕이다. 내부에는
불단을 서쪽에 배치시켜 비로자나불을 동향으로 모셔져있다. 불상 위의 섬세한 조작 단집과 기둥위의
용머리 조각, 천장의 연화봉과 문학문 단청등 장식적 특성을 잘 살린 조선후기 건축의 걸작품
가운데 하나이다.
- 대웅보전 [보물 제801호]
대웅전은 석가부처님을 봉안한 곳이다. "법화경"에 석가 부처님을 큰 영웅 즉 대웅이라 한 것에서
유래한 석가 부처님이 사는 집이라는 뜻이다. 현재 전각안에는 석가·약사·아미타여래의 삼세불이
봉안되어 있다. 건물은 정면 5칸, 측면 4칸의 중층 팔작집이다. 기단은 막돌 허튼층 쌓기이며 민흘림
두리기둥을 세웠다. 기둥위 처마 밑으로는 처마 하중을 받으며 장식도 겸해 누무쪽을 짜맞춘 포를
여러 개 설치한 다포식으로 조선후기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대웅보전의 현판은 신라의 명필 김생의 글씨라고 전해 온다. 임진 왜란 때 병화로 소실된 것을
조선효종 2년 (1651)에 각순대사와 당시의 공주목사가 중건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 응진전 [문화재자료 제65호]
부처님의 제자인 16나한을 모신 전각을 응진전이라고 한다. 이건물은 조선 철종3년(1852)에
중수하였다. 낮은 자연석 기단 위에 자연석 주초를 사용한 정면 3칸, 측면 2칸 규모로 추녀 밑에는
처마의 하중을 받고 장식도 겸해 나무쪽을 짜맞춘 도구를 여러개 배치한 다포계의 팔작집이다.
이건물은 석가모니를 주불로 봉안하고 좌우 불단에는 석가의 제자인 나한상을 봉안하였다.
- 영산전(靈山殿)[보물 제 800호]
일명 천불전(千佛殿)으로 불러 오기도 하는 이 영산전은 조선 효종 2년(1651) 각순대사(覺淳大師)가
중수한 바 있는 전각으로 마곡사에서 가장 오래된 건축물이다.
▣ 김항용 -
▣ 김주회 -
▣ 김은회 -
▣ 김윤만 -
확인하지 못한 사항이라 현종여러분중에서 마곡사를 다녀오신분이 계시면
이에 대해 알려 주시기 바라며, 저도 마곡사에 들리면 꼭 확인하겠습니다.
자료
- 김구선생의 은거지
이곳은 대한민국 임시정부 주석이며 우리민족 독립운동의 지도자인 백범 김구(1836-1949)선생이
1896년 명성황후 민씨시해에 대한 분노로 안악군 치하포에서 일본군 특무장교를 처단 후 은거하여
도를 닦던 곳이다. 조국 광복 후 선생이 이곳을 찾아 대웅전 주련에
却來觀座間猶如夢中事(돌아와 세상을 보니 흡사 꿈속의 일 같구나)를
보시고 더욱 감개무량하여 그 때를 회상하며 향나무 한 그루를 심어 놓았다.
마곡사의 건물들
천왕문 [문화재자료 제62호]
입구에서 해탈문을 거쳐 두 번통과하는 문이다. 정면 3칸, 측면 2칸으로 해탈문과 같은 규모이나
해탈문이 팔작집인데 비하여 맞배집이라는 점에서 차이가 있다. 중앙 칸에는 동서남북의 불법을
수호하는 호법신인, 사천왕상을 안치 하였다. 건립 연대는 미상이나 내부에 걸린 연액에는 1910년에
중수 하였다고 기록되어 있다.
- 오층석탑 [보물 제799호]
이 오층서탑의 최정상부에는 라부식 보탑과 유사한 청동제의 장식물로된 상륜부가 있어 특이한
형태를 보이는 탑이다. 2층탑신부 4면에는 4방불인 아촉불·보상불·아미타불·묘성불이 조각되어 있다.
원나라 영향을 받은 고려 말의 작품으로 임진왜란때 무너져 그 속의 귀중품은 이미 없어졌다.
- 해탈문 [문화재자료 제 66호]
마곡사의 정문으로 이문을 통과하면 속세에서 벗어나 법계에 들게 되고 해탈하고야 말겠다는
마음을 갖게 된다고 하여 해탈문이라 한다. 건물은 정면 3칸, 측면 2칸의 팔작집으로 정면의
중앙 칸을 개방하여 통로로 사용하고 양쪽 협칸에는 흙으로 구워만든 금강 역사상 2구씩을 안치 하였다.
- 대광보전 [보물 제7802호]
대광보전은 비로자나불을 모신 곳이다. 비로자나르는 광명이 어디에나 두루 비친다는 뜻을 지며
이불상이 봉안된 불전을 대광명전 또는 대적광전 등으로도 부른다. 현재의 건물은 조선
순조13년(1813)에 다시지은 덧으로 정면 5칸, 측면 3칸의 규모이다. 기둥위 추녀 밑으로는
처마의 하중을 받고 또 장식도 겸해 짜맞춘 포가 많이 배치된다. 포형식은 팔작지붕이다. 내부에는
불단을 서쪽에 배치시켜 비로자나불을 동향으로 모셔져있다. 불상 위의 섬세한 조작 단집과 기둥위의
용머리 조각, 천장의 연화봉과 문학문 단청등 장식적 특성을 잘 살린 조선후기 건축의 걸작품
가운데 하나이다.
- 대웅보전 [보물 제801호]
대웅전은 석가부처님을 봉안한 곳이다. "법화경"에 석가 부처님을 큰 영웅 즉 대웅이라 한 것에서
유래한 석가 부처님이 사는 집이라는 뜻이다. 현재 전각안에는 석가·약사·아미타여래의 삼세불이
봉안되어 있다. 건물은 정면 5칸, 측면 4칸의 중층 팔작집이다. 기단은 막돌 허튼층 쌓기이며 민흘림
두리기둥을 세웠다. 기둥위 처마 밑으로는 처마 하중을 받으며 장식도 겸해 누무쪽을 짜맞춘 포를
여러 개 설치한 다포식으로 조선후기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대웅보전의 현판은 신라의 명필 김생의 글씨라고 전해 온다. 임진 왜란 때 병화로 소실된 것을
조선효종 2년 (1651)에 각순대사와 당시의 공주목사가 중건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 응진전 [문화재자료 제65호]
부처님의 제자인 16나한을 모신 전각을 응진전이라고 한다. 이건물은 조선 철종3년(1852)에
중수하였다. 낮은 자연석 기단 위에 자연석 주초를 사용한 정면 3칸, 측면 2칸 규모로 추녀 밑에는
처마의 하중을 받고 장식도 겸해 나무쪽을 짜맞춘 도구를 여러개 배치한 다포계의 팔작집이다.
이건물은 석가모니를 주불로 봉안하고 좌우 불단에는 석가의 제자인 나한상을 봉안하였다.
- 영산전(靈山殿)[보물 제 800호]
일명 천불전(千佛殿)으로 불러 오기도 하는 이 영산전은 조선 효종 2년(1651) 각순대사(覺淳大師)가
중수한 바 있는 전각으로 마곡사에서 가장 오래된 건축물이다.
▣ 김항용 -
▣ 김주회 -
▣ 김은회 -
▣ 김윤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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