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보는 제주 유적답사기(4)-애월포,옹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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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항용 작성일06-02-15 08:53 조회2,026회 댓글0건본문
1시간 여를 달려 애월리의 애월포에 닿았다. 이곳이 삼별초의 수군 사령부가 있던 곳이란다. 뒤쪽에 자리잡은 주성인 항파두리를 방어하는 곳이다. 멀리로는 파군봉과 항파두리성이 보인다. 충렬공은 섬의 중서부에 있는 이곳을 피해 함덕으로 양동작전을 벌이며 상륙작전을 폈던 것이다. 역시 이곳의 포구 주변에도 옛 부터 있어온 환해 장성의 성이 아직도 남아 있다.
<애월포와 환해장성(포구의 안쪽에 있는 돌담이 환해장성)>
포구 안쪽으로 들어가니 규모가 엄청난 애월진이 나온다. 해변임에도 갑자기 위치가 높아져 멀리 바다를 경계하기에 좋았다. 그 자리는 성곽만 옛날 그대로 돌로 쌓여 있고 성 안은 애월초등학교로 변했다. 정문 입구에는 안내 표석이 서 있다. "1271년(원종 12)삼별초의 난 때 목성이 축조되었으며 1581년(선조 14) 김대정 목사때 포구로 옮겨 돌로 쌓았다. 둘레 549척, 높이 8척이었으며 남과 서에 성문이 있었다----"고 기록되어 있다.
<애월진 표석>
<애월진 입구(현 애월초등학교 정문)>
<애월진 내부(현 초등학교)>
이곳을 지나 해안가로 달려 한림을 지나 명월포로 간다. 그런데 명월포는 새로운 간척공사로 많이 좁아졌다. 이곳으로 2차 상륙을 했다고도 하고 조금 더 서쪽으로 가서 있는 옹포에 상륙했다고도 한다. 명월포에는 배가 없었고 옹포는 지금도 포구로 쓰고 있었다.
<명월포>
<옹포>
바로 눈 앞에 비양도가 있었다. 서녘 노을에 눈부신 저 섬, 당시 충렬공은 비양도를 은폐 엄폐물로 삼아 양동작전으로 삼별초군을 유인했고, 제주도를 관찰했으며 관군을 잠시 쉬게도 하며 전초기지로 사용했던 섬이다. 당시 긴요하게 섬을 활용했던 충렬공의 눈빛과 작전을 생각해 본다. 김통정이 이 유인책에 속아 함덕에서 온 충렬공 주력부대가 뒤에 있는 항파두리 성을 칠 때까지 바보처럼 비양도만을 바라보며 지키고 있던 포구다.
다시 차를 몰아 내륙으로 들어간다. 이제 항파두리로 간다. 마치 충렬공께서 공격해 가던 모습으로 말이다.
<옹포앞 비양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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