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 게시판

임수간任守幹)을 전송하는 글- 승지 김시경(金始慶 善餘)

페이지 정보

솔내영환 작성일06-02-17 12:15 조회1,516회 댓글1건

본문

 

숙종 37년 (1711년 )임수간(任守幹)1665(현종 6)∼1721(경종 1)은 통신사가 되어 일본에 파견된다.

그때의 기록이 동사일기이다. 1711년 5월부터 이듬해 2월까지 10개월간의 기록을 건(乾)ㆍ곤(坤)으로 나누어 수록하였다.

 이 책은 음률,ㆍ상수(象數), 병법, 지리 등 다양한 내용을 다루었다. 또 체제도 일기에 소제목을 붙여 일목요연하며,

일기와 중요 기록을 구분하고 일부 기록은 원래 지은 자를 명기하여 혼란이 없도록 한 점이 돋보인다.

이때 여러문인들이 전별하는 글(신장(贐章) 을 지었는데

여기에 김시경 선조님의 글이 있어 소개합니다.

 

東槎日記

 

신장(贐章) [승지 김시경 선여(金始慶善餘)]

돈와 부군(遯窩府君)이 일본에 사신갈 때의 신장(贐章) 신묘년(1711, 숙종 37)

 

전권사신은 재주와 꾀를 갖춰야 하는 것 / 殊方專對仗才猷


묘하게도 호당의 첫째 인물 뽑았네 / 妙選湖堂第一流


사절이 새벽에 임금께 하직하니 / 使節曉辭天北極


문창성이 밤에 일본 땅에 비치네 / 文星夜照日東陬


뱃머리는 상제 딸의 베틀 괴던 돌을 향하고 / 槎頭帝女支機石


돛대 밖은 진 나라 동자들의 약 캐던 섬일세 / 帆外童男採藥洲


산과 바다 천만 경치를 다 거둬 와서 / 領略海山千萬景


나를 위해 그 이야기 들려 주게나 / 歸來爲我說奇遊


왕사에 분주하여 저녁에 얼음을 마시는데 / 王事驅馳夕飮氷


타향에 이별의 한 이루 다 견디기 어려우리 / 異鄕離恨浩難勝


온 조정의 덕망이 무거우니 시가 삼백 편이고 / 當朝望重詩三百


나라에 바친 몸이 가벼우니 바다가 만층일세 / 許國身輕海萬層


물결은 돛대를 보내 대마도를 지나는데 / 波送一帆經對馬


바람은 유월을 장식해 건붕에 대이도다 / 風摶六月趁騫鵬


이번의 그 행차는 평생에 으뜸이라 / 奇遊最是平生冠


쾌히 부상에 뜨는 새벽해를 보리 / 快覩扶桑曉日昇

[주D-001]호당 : 독서당(讀書堂)의 별칭. 본서의 저자인 임수간(任守幹)이 일찍이 여기서 사가독서(賜暇讀書)를 한 사람이므로 한 말.
[주D-002]얼음을 마시는데 : 음빙(飮氷)은 ① 얼음을 먹음. 마음이 불안 초조함의 비유. ② 관리가 나라를 위하여 애태움. ③ 곤궁하면서도 깨끗한 절조를 지킴.
 

임수간(任守幹)
1665(현종 6)∼1721(경종 1). 조선 후기의 문신. 본관은 풍천(豊川). 자는 용여(用汝), 호는 돈와(遯窩). 우참찬 상원(相元)의 아들이다.
1690년(숙종 16) 생원시에 합격하였고, 1694년 알성문과에 병과로 급제, 곧 설서가 되었고, 정언을 거쳐 1699년 이만성(李晩成) 등 8

인과 함께 홍문록(弘文錄)에 올랐다.
그뒤 수찬·교리·정언·부수찬 등을 번갈아 역임하다가 1703년 당쟁의 폐단과 시정(時政)의 득실을 논하였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자 일시

향리에 은거하였다. 곧 재기용되어 지평이 되었고, 1707년 사직으로 문신중시(文臣重試)에 병과로 급제하였다.
그뒤 이조좌랑 겸 문학·교리·수찬 등을 역임하다가 1709년 사가독서(賜暇讀書)를 하였다. 다음해에 통신부사가 되어 일본에

파견되었으나 대마도주의 간계에 속아 투옥, 파직되었다.
1720년에 재기용되어 승지에 올랐다.
그는 경사(經史)에 밝았으며 음률(音律)·상수(象數)·병법(兵法)·지리 등에도 해박하였다고 한다.
저서로 《돈와유집》이 있다.

 

 


댓글목록

김항용님의 댓글

profile_image 김항용
작성일

  김시경님의 시문 잘 보았습니다. 홈에 올리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