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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이 장군과 시 한수 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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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중 작성일06-03-09 17:34 조회1,658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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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관 의령(宜寧). 시호 충무(忠武). 태종의 외손(外孫)이다. 1457년(세조3) 약관의 나이로 무과(武科)에 장원, 세조의 지극한 총애를 받았다. 1467년(세조13) 이시애(李施愛)가 북관(北關)에서 난을 일으키자 우대장(右大將)으로 이를 토벌, 적개공신(敵愾功臣) 1등에 오르고, 의산군(宜山君)에 봉해졌으며 이어서 서북변(西北邊)의 건주위(建州衛)를 정벌하고 28세의 나이로 병조판서에 올랐다.

1468년 예종이 즉위한 후 대궐에서 숙직하던 중 혜성(彗星)이 나타난 것을 보고, 묵은 것이 없어지고 새 것이 나타날 징조라고 말하자, 그에게 항상 질투를 느껴오던 유자광(柳子光)이 엿듣고 역모를 획책한다고 모함하였다. 또한 남이가 여진토벌(女眞討伐) 때 읊은 시 ‘白頭山石磨刀盡, 豆滿江水飮馬無, 男兒二十未平國, 後世誰稱大丈夫’ 속의 ‘미평국(未平國)’이란 글귀를 ‘미득국(未得國)’이라 하였다고 조작한 사실은 유명하다. 즉 ‘나라를 평정하지 못하면’을 ‘나라를 얻지 못하면’으로 왜곡하여, 반역의 뜻이 있다고 모함받아 영의정 강순(康純) 등과 함께 주살(誅殺)되었다. 1818년(순조18) 관작(官爵)이 복구되었다.


***남이가 심한 고문끝에 다리뼈가 부러졌었다. 이때 남이는 당시 영의정이었던 여든
살의 강순이 역모를 하도록 시켰다고 자백했다. 어처구니없이 역모에 끌려든 강순이
같이 죽음을 당하는 마당에 남이에게 물었다.
"남이야 너는 나에게 무슨 원한이 있어 나를 모함하였느냐"고. 이때 남이는 "원통한
것은 나도 마찬가지입니다. 영의정이 되어 나의 원통한 것을 알고도 구원해주지
않았으니 원통하게 죽는 것이 마땅하오"라고 말했단다...
-이규태의 역사산책에서 전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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