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 게시판

허난설헌 소설-이 생에서는 늘 이별이었네 2

페이지 정보

김항용 작성일06-03-27 14:46 조회1,382회 댓글2건

본문

 

<제2회>

 초가을에 둘째 아이가 제 누이를 따라갔다, 온갖 처방과 정성에도 불구하고. 그는 눈물 한 방울 흘리지 않았다. 다만 그녀를 보는 그 시선에 증오의 불빛만 파랗게 타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남편은 그녀에게는 한마디 말도 없이 주섬주섬 서책을 보따리에 싸서 광주((廣州) 봉은사 깊은 암자로 들어가 버렸다. 시어머니에게는 대과에 입격할 때까진 집에 돌아오지 않겠다고 말하고. 나중에 알았지만 그때 이미 뱃속에는 셋째 아이가 들어서 있었다. 남편은 독하게 마음먹은 것 같았다. 지난 겨울에 시어머니 명으로 그녀가 옷가지와 찬거리를 마련해서 봉은사로 찾아갔을 때에도 남편은 그녀를 만나러 내려오지 않았다.
  『그깟 시험이 대수겠소?』 남편의 음성은 언제나처럼 퉁명스러웠다.
 먼 숲처럼 그녀 주변을 둘러싸고 있던 인물들의 윤곽이 점차로 뚜렷해 졌다. 남편 뒤로 시동생 정립(正立), 늙은 여의원, 산파 그리고 그 옆에 시모(媤母) 송씨. 시모 앞, 초희는 본능적으로 몸을 일으켰다. 몸을 움직이자 잠시 가라앉았던 통증이 다시 밀려왔다. 극심한 통증이었다. 초희는 아랫배를 쥐고 다시 눕고 말았다.
  『괜찮다, 누워있거라. 』 평소와 달리 시모의 음성에 안쓰러움이 묻어 있었다.
 그녀는 다시 눈을 감고 말았다. 얼굴에 땀이 비 오듯 쏟아져 눈으로 흘러 들었다. 옆에 있던 소순이 그녀의 얼굴의 땀을 물수건으로 닦아주고, 두터운 이불을 여미어주었다. 모두들 걱정스런 눈길로 그녀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초희는 그들을 안심시키려는 듯 다시 희미하게 미소지었다. 그러나 그 미소는 부은 얼굴과 계속되는 배의 통증 때문에 여전히 일그러져 있었다. 그런데 아이는, 내 아이는 어떻게 되었을까? 모두들 왜 아이에 대해서는 한마디도 않는 걸까? 그리고 모두들 왜 저렇게 어두운 표정들일까? 그녀는 남편에게 물었다. 겨우 짜내는 듯한 아주 나약한 음성으로.
   『아이는, 우리 아이는?』
 남편이 대답을 하지 못하고 머뭇거렸다. 뭔가 불길한 느낌이 뇌리 속을 스쳐갔다. 무서웠다, 남편의 침묵이. 그녀는 이미 아이 둘을 잃었다. 마침내 남편이 입을 열었다. 그녀의 시선을 피하며.
   『당신은 사흘만에 겨우 깨어났소. 당신 몸부터…』
 남편은 왜 화제를 돌리는 것일까? 내 아이, 내 아이는 어떻게 됐을까? 그녀는 다시 물었다.
   『바로 대답해 해주세요, 우리 아이는? 우리 아이가 어떻게 되었나요? 』
 남편은 말이 없었다. 불현듯 방안에 무거운 침묵만이 흘렀다. 초희가 몸을 일으키려는데 시어머니 송씨가 어두운 음성으로 말했다.
   『…사산이었다.』
 초희는 순간적으로 머릿속이 몽롱해지고 온몸의 맥이 풀렸다. 갑자기 자신도 모르게 두 눈에서 소리 없이 눈물이 흘러내렸다. 정해년(1587)과 무자년(1588)에 딸과 아들을 돌림병으로 연이어 잃었다. 그런데 또 다시 셋째아이를, 그것도 세상 햇빛 한번 못보고 잃다니…. 가여운 내 아이…
 칠일전, 아니다. 사흘동안 혼수상태에 있었다니 열흘전이 되는 셈이다. 초희는 갑자기 산기를 느꼈다. 출산예정일보다 한 달 반이나 일렀다. 친정이 가까웠으나 갈 시간적 여유가 없었다. 그녀는 바로 자리에 누웠고, 이어 산통이 시작되었다. 이전에 없었던 격심한 통증이 왔고, 그 산통은 칠일이나 계속되었다.
 그런데 내 셋째아이가 ……. 가여운 내 아이. 그녀는 몸을 옆으로 돌렸다. 시모 앞에서 눈물을 보이지 않기 위해. 돌아누운 그녀의 어깨가 조금씩 흔들리기 시작했다. 울음, 서러운 울음. 소리를 내진 못하고 속으로 우는 울음. 차츰 그녀의 어깨 흔들림이 커졌다. 그녀는 치밀어 오르는 서러움을 누를 수가 없었다.
 남편이 그녀의 어깨를 잡았다. 그리고는 부드럽게 토닥이며 말했다.
   『진정하시오.』
 그러나 그녀의 귀에는 아무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충격으로 마음이 격탕된 탓일까. 문득 아랫배의 통증이 격심해졌다. 갑자기 코에 스미는 비릿한 내음과 함께 초희는 머리 속이 아득해졌다. 또다시 몸이 깊이 모를  어두운 늪 속으로 빨려들어 가는 느낌이 들었다. 그녀는 한마디 고통스런 신음성을 토하고는 정신을 놓아 버렸다.
 주변을 둘러 싼 인물들 입에서 경악성이 났고, 옆에 있던 성립이 황급히 그녀를 흔들어 깨웠으나 초희는 쓰러진 나무등걸처럼 조금도 움직이지 않았다. 성립이 여의원에게 소리쳤고,  늙은 여의원이 급히 초희에게 다가갔다.
 여의원은 소순으로 하여금 초희를 안아 일으키게 했다. 초희의 얼굴은 밀랍처럼 창백했다. 침착하게 초희의 환세(患勢)를 살핀 여의원이 산파에게 뭔가 이르자 산파가 옆에 놓인 검은색 나는 함에서 작은 종지에 담긴 어두운 액체를 건넸다. 여의원이 그것을 받아 천천히 그 안에 든 액체를 초희의 입 속으로 부어 넣었다. 액체는 초희의 입 속으로 다 들어가지 못하고 일부는 흘러내렸다.
 침묵, 늙은 여의원이 초희에게 응급처방을 하는 동안 방안에는 바위처럼 무거운 침묵만이 감돌았다. 누구도 말을 하지 않았다. 초희를 살피는 여의원의 안색이 극히 침중했기 때문이었다. 뜨거운 물 한 모금 마실 시간이 지나자 초희의 부은 얼굴에 다소 화색이 돌아왔다. 그러나 여전히 그녀는 인사불성이었다. 여의원의 안색은 조금도 밝아지지 않았다. 한동안 초희의 기색 변화를 살피던 여의원이 무거운 음성으로 주변을 돌아보며 말했다.
   『서방님과 도련님은 잠시 자리를 비켜주세요.』

 초가을에 둘째 아이가 제 누이를 따라갔다, 온갖 처방과 정성에도 불구하고. 그는 눈물 한 방울 흘리지 않았다. 다만 그녀를 보는 그 시선에 증오의 불빛만 파랗게 타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남편은 그녀에게는 한마디 말도 없이 주섬주섬 서책을 보따리에 싸서 광주((廣州) 봉은사 깊은 암자로 들어가 버렸다. 시어머니에게는 대과에 입격할 때까진 집에 돌아오지 않겠다고 말하고. 나중에 알았지만 그때 이미 뱃속에는 셋째 아이가 들어서 있었다. 남편은 독하게 마음먹은 것 같았다. 지난 겨울에 시어머니 명으로 그녀가 옷가지와 찬거리를 마련해서 봉은사로 찾아갔을 때에도 남편은 그녀를 만나러 내려오지 않았다.
  『그깟 시험이 대수겠소?』 남편의 음성은 언제나처럼 퉁명스러웠다.
 먼 숲처럼 그녀 주변을 둘러싸고 있던 인물들의 윤곽이 점차로 뚜렷해 졌다. 남편 뒤로 시동생 정립(正立), 늙은 여의원, 산파 그리고 그 옆에 시모(媤母) 송씨. 시모 앞, 초희는 본능적으로 몸을 일으켰다. 몸을 움직이자 잠시 가라앉았던 통증이 다시 밀려왔다. 극심한 통증이었다. 초희는 아랫배를 쥐고 다시 눕고 말았다.
  『괜찮다, 누워있거라. 』 평소와 달리 시모의 음성에 안쓰러움이 묻어 있었다.
 그녀는 다시 눈을 감고 말았다. 얼굴에 땀이 비 오듯 쏟아져 눈으로 흘러 들었다. 옆에 있던 소순이 그녀의 얼굴의 땀을 물수건으로 닦아주고, 두터운 이불을 여미어주었다. 모두들 걱정스런 눈길로 그녀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초희는 그들을 안심시키려는 듯 다시 희미하게 미소지었다. 그러나 그 미소는 부은 얼굴과 계속되는 배의 통증 때문에 여전히 일그러져 있었다. 그런데 아이는, 내 아이는 어떻게 되었을까? 모두들 왜 아이에 대해서는 한마디도 않는 걸까? 그리고 모두들 왜 저렇게 어두운 표정들일까? 그녀는 남편에게 물었다. 겨우 짜내는 듯한 아주 나약한 음성으로.
   『아이는, 우리 아이는?』
 남편이 대답을 하지 못하고 머뭇거렸다. 뭔가 불길한 느낌이 뇌리 속을 스쳐갔다. 무서웠다, 남편의 침묵이. 그녀는 이미 아이 둘을 잃었다. 마침내 남편이 입을 열었다. 그녀의 시선을 피하며.
   『당신은 사흘만에 겨우 깨어났소. 당신 몸부터…』
 남편은 왜 화제를 돌리는 것일까? 내 아이, 내 아이는 어떻게 됐을까? 그녀는 다시 물었다.
   『바로 대답해 해주세요, 우리 아이는? 우리 아이가 어떻게 되었나요? 』
 남편은 말이 없었다. 불현듯 방안에 무거운 침묵만이 흘렀다. 초희가 몸을 일으키려는데 시어머니 송씨가 어두운 음성으로 말했다.
   『…사산이었다.』
 초희는 순간적으로 머릿속이 몽롱해지고 온몸의 맥이 풀렸다. 갑자기 자신도 모르게 두 눈에서 소리 없이 눈물이 흘러내렸다. 정해년(1587)과 무자년(1588)에 딸과 아들을 돌림병으로 연이어 잃었다. 그런데 또 다시 셋째아이를, 그것도 세상 햇빛 한번 못보고 잃다니…. 가여운 내 아이…
 칠일전, 아니다. 사흘동안 혼수상태에 있었다니 열흘전이 되는 셈이다. 초희는 갑자기 산기를 느꼈다. 출산예정일보다 한 달 반이나 일렀다. 친정이 가까웠으나 갈 시간적 여유가 없었다. 그녀는 바로 자리에 누웠고, 이어 산통이 시작되었다. 이전에 없었던 격심한 통증이 왔고, 그 산통은 칠일이나 계속되었다.
 그런데 내 셋째아이가 ……. 가여운 내 아이. 그녀는 몸을 옆으로 돌렸다. 시모 앞에서 눈물을 보이지 않기 위해. 돌아누운 그녀의 어깨가 조금씩 흔들리기 시작했다. 울음, 서러운 울음. 소리를 내진 못하고 속으로 우는 울음. 차츰 그녀의 어깨 흔들림이 커졌다. 그녀는 치밀어 오르는 서러움을 누를 수가 없었다.
 남편이 그녀의 어깨를 잡았다. 그리고는 부드럽게 토닥이며 말했다.
   『진정하시오.』
 그러나 그녀의 귀에는 아무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충격으로 마음이 격탕된 탓일까. 문득 아랫배의 통증이 격심해졌다. 갑자기 코에 스미는 비릿한 내음과 함께 초희는 머리 속이 아득해졌다. 또다시 몸이 깊이 모를  어두운 늪 속으로 빨려들어 가는 느낌이 들었다. 그녀는 한마디 고통스런 신음성을 토하고는 정신을 놓아 버렸다.
 주변을 둘러 싼 인물들 입에서 경악성이 났고, 옆에 있던 성립이 황급히 그녀를 흔들어 깨웠으나 초희는 쓰러진 나무등걸처럼 조금도 움직이지 않았다. 성립이 여의원에게 소리쳤고,  늙은 여의원이 급히 초희에게 다가갔다.
 여의원은 소순으로 하여금 초희를 안아 일으키게 했다. 초희의 얼굴은 밀랍처럼 창백했다. 침착하게 초희의 환세(患勢)를 살핀 여의원이 산파에게 뭔가 이르자 산파가 옆에 놓인 검은색 나는 함에서 작은 종지에 담긴 어두운 액체를 건넸다. 여의원이 그것을 받아 천천히 그 안에 든 액체를 초희의 입 속으로 부어 넣었다. 액체는 초희의 입 속으로 다 들어가지 못하고 일부는 흘러내렸다.
 침묵, 늙은 여의원이 초희에게 응급처방을 하는 동안 방안에는 바위처럼 무거운 침묵만이 감돌았다. 누구도 말을 하지 않았다. 초희를 살피는 여의원의 안색이 극히 침중했기 때문이었다. 뜨거운 물 한 모금 마실 시간이 지나자 초희의 부은 얼굴에 다소 화색이 돌아왔다. 그러나 여전히 그녀는 인사불성이었다. 여의원의 안색은 조금도 밝아지지 않았다. 한동안 초희의 기색 변화를 살피던 여의원이 무거운 음성으로 주변을 돌아보며 말했다.
   『서방님과 도련님은 잠시 자리를 비켜주세요.』

댓글목록

김태서님의 댓글

profile_image 김태서
작성일

  사랑과 이별은 언제나 무너지는 가슴 뿐이지요.

김영윤님의 댓글

profile_image 김영윤
작성일

  김영희 작가의 소설 전재 잘 보고 있습니다
이번 회는 내용이 2번 중복 되어 있습니다 살펴 보시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