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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 백범일지(40)민족에 내놓은 몸 6. 원수는 외나무다리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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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내영환 작성일06-04-10 16:50 조회1,574회 댓글1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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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원수는 외나무다리에서

도변이놈은 나를 보고 첫 말이, 제 가슴에는 엑스 광선이 있어서 내 평생의 역사와 가슴 속에 품은 비밀은 소상히 다 알고 있으니 일호도 숨김이 없이 다 자백을 하면이어니와 만일에 은휘하는 곳이 있으면 이 자리에서 나를 때려죽인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도변이놈의 엑스 광선은 내가 17년 전 인천 감옥의 김충수인 줄은 모르는 모양이었다. 연전 해주 감사국에서 검사고 보고 있던 '김 구(金龜)'라는 책에도 내가 치하포에서 토전양량을 죽인 것이나 인천 감옥에서 사형 정지를 받고 탈옥 도주한 것은 적혀 있지 아니하였던 것과 같이 이번 사건의 내게 관한 기록에도 그것은 없었던 모양이다.

그러고 보면 내 일을 일러바치는 한인 형사와 정탐들도 그 일만은 빼고 내 보고를 하는 모양이니 그들이 비록 왜의 수족이 되어서 창귀 노릇을 한다 하더라도 역시 마음의 한 구석에는 한인 혼이 남아 있는 것이라고 나는 생각하였다.

도변이놈이 나의 경력을 묻는 데 대하여서 나는, 어려서는 농사를 하다가 근년에 종교와 교육 사업을 하고 있거니와 모든 일을 내어놓고 하고, 숨어서 하는 것이 없으며, 현재에는 안악 학교의 교장을 있노라고 대답하였더니 도변은 와락 성을 내며 내가 종교와 교육에 종사하는 것은 껍데기요, 속으로는 여러 가지 큰 음모를 하고 있는 것을 제가 소상히 다 알고 있노라 하면서, 내가 안명근과 공모하여 총독을 암살할 음모를 하고, 서간도에 무관 학교를 설치하여 독립 운동을 준비하려고 부자의 돈을 강탈할 사실을 은휘한들 되겠냐고 나를 엄포하였다.

이에 대하여 나는 안명근과 전연 관계가 없고 서간도에 이민하란 것은 사실이나 이것은 빈한한 농민에게 생활의 근거를 주자는 것뿐이라고 답변한 뒤에, 나는 화두를 돌려서 지방 경찰의 도량이 좁고 의심만 많아서 걸핏하면 배일(排日)로 사람을 보니 이러고는 백성이 아무 일도 할 수 없어서 모든 사업에 방해가 많으니 이후로는 지방의 경찰에 주의하여 우리 같은 사람들이 교육이나 잘하고 있도록 하여 달라, 학교 개학기도 벌써 넘었으니 속히 가서 학교 일을 보게 하여 달라 하였다. 도변이놈은 악형은 아니 하고 나를 유치장으로 돌려 보내었다.

이제 보니 도변이놈은 내가 김창수인 것을 전연 모르는 것이 확실하고, 그렇다 하면 내 과거를 소상히 잘 아는 형사들이 그 말을 아니한 것도 분명하였다. 나는 기뻤다.

나라는 망하였으나 민족은 망하지 아니하였다. 왜 경찰에서 형사질을 하는 한인의 마음에도 애국심이 남아 있으니 우리 민족은 결코 망하지 아니하리라고 믿고 기뻐하는 동시에 형사들까지도 내게 이같은 동정을 주었으니 나로서는 최후의 일각까지 동지를 위하여 싸우고 원수의 요구에 응치 아니하리라 하였다.

그리고 김홍량은 나보다 활동할 능력도 많고 인물의 품격도 높으니, 나를 희생하여서라도 그를 살리리라 하고 심문시에도 내게 불리하면서도 그에게 유리하게 답변하였고 또 '龜沒泥中鴻飛海外(거북은 진흙 속에 있으며 기러기는 바다 위를 나른다)'라고 중얼거렸다.

전후 일곱 번 심문에 도변의 것을 제하고 여섯 번은 번번이 악형을 당하여서 정신을 잃었다. 그러나 악형을 받고 유치장으로 끌려 돌아올 때마다 나는,

"나의 목숨은 너희가 빼앗아도 나의 정신은 너희가 빼앗지 못하리라"

하고 소리 높이 외쳐서 동지들의 마음이 풀어지지 않도록 하였다. 내가 그렇게 떠들면 왜놈은,

"나쁜 말이 해소도 다다꾸"

라고 위협하였으나 동지들의 마음은 내 말에 격려되었으리라고 믿는다.

내게 대한 제 8 회 심문은 과장과 각 주임경시 7,8 명 열석하에 열렸다.

이놈들이 나를 향하여 하는 말이,

"네 동류가 거개 자백을 하였는데, 네놈 한 놈이 자백을 아니하니 참 어리석고 완고한 놈이다. 네가 아무리 입을 다물고 아니하기로서니 다른 놈들의 실토에서 나온 네놈의 죄가 숨겨지겠느냐. 너 생각해 보아라. 새로 토지를 매수한 지주가 밭에 거추장거리는 돌멩이를 추려내지 아니하고 그냥 둘 것이냐. 그러니 똑바로 말을 하면이어니와 일향 고집하면 이 자리에서 네놈을 때려죽일 터이니 그리 알아라"

한다. 이 말에 나는,

"오냐 이제 잘 알았다. 내가 너희가 새로 산 밭의 돌이라면 그것은 맞았다. 너희가 나를 돌로 알고 파내려는 수고보다 패어내우는 내 고통이 더 심하니, 그렇다면 너희들의 손을 빌 것이 없이 내 스스로 내 목숨을 끊어버릴 터이니 보아라"

하고 머리로 옆에 있는 기둥을 받고 정신을 잃고 쓰러졌다.

여러 놈들이 인공 호흡을 한다, 냉수를 면상에 뿜는다 하여 내가 다시 정신이 들었을 때에 여러 놈 중에서 한 놈이 능청스럽게,

"김 구는 조선인 중에 존경을 받는 인물이니 이같이 대우하는 것이 마땅치 아니하니 본직에게 맡기시기를 바라오"

하고 청을 하니 여러 놈들이 즉시 승낙한다.

승낙을 받은 그 놈이 나를 제 방으로 데리고 가더니 담배도 주고 말도 좋은 말을 쓰고 대우가 융숭하다. 그놈의 말이 자기는 황해도에 출장하여 내게 관한 조사를 하여 가지고 왔는데, 그 결과로 보면 나는 교육에 열심하여 월급을 받거나 못 받거나 여일하게 교무에 열심하고 일반 인민의 여론을 듣더라도 나는 정직한 사람인데 경무총감부에서도 내 신분을 잘 모르고 악형을 많이 한 모양이니 대단히 유감된다 하고, 또 말하기를 심문하는 데는 이렇게 할 사람과 저렇게 할 사람이 따로 있는데 나 같은 인물에 대하여서 그렇게 한 것은 크게 실례라고 아주 뻔뻔스럽게 듣기 좋은 소리를 한다.

왜놈들이 우리 애국자들의 자백을 짜내기 위하여 하는 수단은 대개 세 가지로 구별할 수 있으니, 첫째는 악형이요, 둘째는 배고프게 하는 것이요, 그리고 셋째는 우대하는 것이다. 악형에는 회초리와 막대기로 전신을 두들긴 뒤에 다 죽게 된 사람을 등상 위에 올려 세우고 붉은 오랏줄로 뒷짐 결박을 지워서 천장에 있는 쇠갈고리에 달아 올리고는 발 등상을 빼어버리면 사람이 대룽대룽 공중에 달리는 것이다.

이 모양으로 얼마 동안을 지나면 사람은 고통을 못 이기어 정신을 잃어버린다. 그런 뒤에 사람을 끌러 내려놓고 얼굴과 몸에 냉수를 끼얹으면, 다시 소생하여 정신이 든다. 나는 난장을 맞을 때에 내복 위로 맞으면 덜 아프다 하고 내복을 벗어버리고 맞았다.

그 다음의 악형은 화로에 쇠꼬챙이를 달구어 놓고 그것으로 벌거벗은 사람의 몸을 막 지지는 것이다.

그 다음의 악형은 세 손가락 사이에 손가락 만한 모난 막대기를 끼우고 그 막대기 두 끝을 노끈으로 꼭 졸라매는 것이다.

그 다음은 사람을 거꾸로 달고 코에 물을 붓는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악형을 당하면 나도 악을 내어서 참을 수도 있지마는 이보다 더 견디기 어려운 것은 굶기는 벌이다. 밥을 부쩍 줄여 겨우 죽지 아니하리 만큼 먹이는 것인데 이리하여 배가 고플 대로 고픈 때에 차입 밥을 받아서 먹은 고깃국과 김치 냄새를 맡을 때에는 미칠 듯이 먹고 싶다.

아내가 나이 젊으니 몸을 팔아서라도 맛있는 음식을 늘 들여 주었으면 좋겠다는 생각까지도 난다. 박영효의 부친이 옥중에서 섬 거적을 뜯어먹다가 죽었다는 말이며, 옛날 소 무(蘇武)가 전을 씹어 먹으며 19년 동안 한나라 절개를 지켰다는 글을 생각할 때에 나는 사람의 마음은 배고파서 잃고 짐승의 성품만이 남은 것이 아닌가 하고 자책하였다.

 

댓글목록

김행순님의 댓글

profile_image 김행순
작성일

  "나의 목숨은 너희가 빼앗아도 나의 정신은 너희가 빼앗지 못하리라"
지난번에 올려주신 "죽을만큼 노력하면 못할 일이 없다"고 하셨죠.
되새김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