익원공 연보자료 18 (55세, 1395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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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주회 작성일06-04-17 23:06 조회1,911회 댓글0건본문
(55세) 1395년 태조4
태조 007 04/03/12 (을사) 002
/ 창종을 앓는 좌정승 조준과 우정승 김사형에게 중관을 보내 문병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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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정승(左政丞) 조준(趙浚)과 우정승(右政丞) 김사형(金士衡)이 모두 창종(瘡腫)을 앓으니, 임금이 중관(中官) 조순(曹恂)을 보내서 문병하게 하고, 또 말하였다.
“창종(瘡腫)을 고치는 데는 동심(動心)하여서는 안 되니 정사(政事)를 염려하거나 손님을 접대하지 말라.”
태조 007 04/04/09 (임신) 001
/ 최유경에게 관직을 제수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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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금이 우정승 김사형(金士衡)에게 일러 말하였다.
“경상도 도관찰사 최유경(崔有慶)이 무진년에 비록 우리들을 배반하였으나 그 임금을 위한 것이요, 또 포치(布置)하는 재주가 있다.”
이에 지중추원사(知中樞院事)·중군 동지절제사(中軍同知節制使)를 제수하고, 그대로 관찰사를 겸임시켰으며, 진을서(陳乙瑞)로 서북면 병마 도절제사·평양 윤을 삼았다.
태조 008 04/07/17 (무신) 002
/ 좌우 정승 조준과 김사형, 판삼사사 정도전에게 말 1필씩을 하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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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정승 조준(趙浚)과 우정승 김사형(金士衡)과 판삼사사 정도전(鄭道傳)에게 문충보(文忠甫)가 바친 말 1필씩을 각각 하사하였다.
태조 008 04/09#27 (무자) 001
/ 종묘제에 왕이 새 궁궐에서 재계하다. 헌관 김사형 등도 서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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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금이 새 대궐에서 재계(齋戒)하였다. 종묘제 헌관(宗廟祭獻官) 우정승 김사형(金士衡)과 여러 집사들이 삼사(三司)에 모여서 서계(誓戒)하고, 각 아문에서도 재계를 하였는데, ---
태조 008 04/10/05 (을미) 001
/ 제례를 마친 후 중외의 조하를 받고 국정 쇄신의 내용을 담은 교서를 내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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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금이 면복(冕服)을 입고 친히 관향(祼享)하고 작헌례(酌獻禮)를 행하니, 세자가 아헌(亞獻)하고 우정승 김사형이 종헌(終獻)하였다.
---읽기를 마치자, 임금이 여(輿)를 타고 환궁하였다. 여악(女樂)이 궁전 뜰에 이르니, 현비가 주렴을 드리우고 풍악을 보았다. 3일 뒤 정유일에 〈종묘 제사의〉 집사관으로 참예했던 사람들에게 각각 한 계급씩 올려 주고, 양부(兩府) 이상에게는 내구마 1필씩 하사하고, 신궁(新宮)에서 군신(君臣)에게 잔치를 베풀었다.
삼봉집(三峯集) 제8권 /부록(附錄)
삼봉 시집에 씀 정묘 [題三峯詩集 丁卯 ]
삼봉에게 올리는 시[上三峯詩] 서문도 있음. ---권근(權近)
생각하옵건대, 우리 전하(殿下)께서는 천명(天命)을 받고 개국하여 도읍을 한양(漢陽)에 정하고 을해년(태조 4 1395) 10월 을미일에 친히 태실(太室)에 제사지내고 군신들의 조회를 받은 다음 국내에 대사령(大赦令)을 내렸다. 그리고 1일이 되는 정유일에 상이 정전(正殿)에 납시어 문하 좌정승(門下左政丞) 신(臣) 조준(趙浚)과 우정승(右政丞)신 김사형(金士衡)과 판삼사사(判三司事) 신 정도전 등에게 내구마 각각 1필씩을 주고,---
태조 008 04/10/14 (갑진) 001
/ 홍영통이 말에서 떨어져 죽은 것 때문에 대신들에게 요여를 내려 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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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정승 조준·우정승 김사형·판문하부사 권중화·판삼사사 정도전에게 대[竹]로 만든 요여(腰輿) 하나씩을 내려 주고, 기로 제신(耆老諸臣)에게도 내려 주었는데, 대체로 홍영통이 말에서 떨어져 죽은 것을 경계한 것이었다.
태조 008 04/12/20 (기유) 001
/ 좌우 정승 조준·김사형과 판삼사사 정도전에게 칼 한자루씩을 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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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정승 조준·우정승 김사형·판삼사사 정도전에게 각각 칼 한 자루씩을 주었다.
삼봉집(三峯集) 제4권 /기(記)
이요정기 을해 (二樂亭記 乙亥 ) ---정도전(鄭道傳)
전하께서 한양에 도읍을 정하신 이듬해에, 친한 신하를 나누어 보내서 주군(州郡)을 다스리게 했다. 이는 대개 군민(軍民)을 중히 여겨서이다. 종맹(宗盟 종묘 앞에서 맺은 맹세, 또는 그 사람)인 문하 좌정승 평양백(平壤伯 조준(趙浚))과 문하 우정승 상락백(上洛伯 김사형(金士衡))이 여러 동맹한 이들과 같이 새 서울 남쪽에서 그들을 전송했는데, 이른바 이요정(二樂亭)이란 정자에 오르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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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요정(二樂亭)이란 곧 의안백(義安伯 이화(李和))의 별장으로 산봉우리가 우뚝하게 한강 가운데에 서 있는데, 그 위에 정자를 지어 노니는 장소로 삼았다. ---
[주C-001]을해 : 조선 태조(太祖) 4년(1395).
○형 김사렴의 3자 김위, 정랑을 지냈다. *동명이인 확인 필요 <조선왕조실록>.
조선왕조실록 태조 04/07/30(신유)
/ 사헌부에서 급전을 잘못한 호조 급전사의 판사․전서 등을 탄핵하다
헌사에서 호조 급전사(戶曹給田司) 판사 최윤지(崔允沚)․전서(典書) 장자충(張子忠)․산기(散騎) 이문화(李文和)․시사(侍史) 송인(宋因)․의랑(議郞) 윤회종(尹會宗)․정랑(正郞) 김위(金偉)․좌랑(佐郞) 안근(安懃) 등이 급전(給田)함에 있어 잘못된 것을 탄핵하니, 모두 삭직하여 외방으로 유배보냈으나, 윤지와 자충은 원종 공신이므로 <죄를> 용서하였다.
【원전】 1 집 81 면
【분류】 *인사-임면(任免) / *사법-탄핵(彈劾) / *행정(行政) / *농업(農業)
<시대상황>
○이색(李穡), 1395년(태조 4)에 한산백(韓山伯)에 봉하여지고 이성계의 출사(出仕)종용이 있었으나 끝내 고사하고 이듬해 여강(驪江)으로 가던 도중에 죽었다.
---아울러, 그의 문하에서 권근(權近)·김종직(金宗直)·변계량(卞季良) 등을 배출하여 조선성리학의 주류를 이루게 하였다.
○정도전(鄭道傳), 1395년에 정총(鄭摠) 등과 더불어 《고려국사 高麗國史》 37권을 찬진하고, 《감사요약 監司要約》을 저술하여 전라도관찰사 이무(李茂)에게 주었으며, 《경제문감 經濟文鑑》을 저술하여 재상·대간·수령·무관의 직책을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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