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에서 찾아 온 데라우치 문고 전시-4월 25일부터 예술의 전당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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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항용 작성일06-04-25 08:55 조회1,528회 댓글1건본문
4월 25일부터 6월 11일까지 서울시 서초구 <예술의 전당>에서 일본에서 되찾아 온 우리의 중요한 시서화의 유물들인 <데라우치 문고>가 전시된다.
주요 작품은 다음과 같다
▲남종문인화(南宗文人畵)의 조선 도입 상한시기를 앞당겨 잡아야 할 근거유물로 평가되는 1602년 이시발(李時發, 1569~1626)의 <발문(跋文)>이 있는 ≪계묘사마동방계회도첩(癸卯司馬同榜契會圖帖)≫
▲성삼문(1418~1456), 서경덕(1489~1546), 정철(1536~1593), 고경명(1533~1592), 곽재우(1552~1617), 양사언(1517~1584), 이달(1539~1612), 최립(1539~1612), 신흠(1566~1628), 임제(1549~1587), 장유(1587~1638) 등 실물자료가 희귀한 조선초기와 중기의 도학자(道學者), 시문(詩文)대가, 임진·병자양란의 명장과 충신들의 육필시고
▲민성휘(1582~1647)가 1628년(인조6년) 명나라 의종제(毅宗帝) 즉위 진하부사(陳賀副使)와 1647년(인조28년) 청나라 사은부사(謝恩副使)로 연경(燕京)을 갈 때 이호민(1553~1634), 이덕형(1561~1613), 김류(1571~1648), 김상헌(1570~1652) 등 당대 지식인 154명이 송별하며 지은 시 158편을 모은 ≪무진조천별장첩(戊辰朝天別章帖)≫3책과, 《정해부연별장첩(丁亥赴燕別章帖)》2책 ▲송설체(松雪體)에서 왕법(王法)으로의 전환내력과 글씨수련 과정을 밝힌 한호(韓濩, 1543~1605)의 <석봉필론(石峰筆論)>과 붓을 운용하는 비법(秘法)을 논한 김정희(1786~1856)의 <운필법(運筆法)> 초고
▲송민고(1592~1648 이후)의 <석란도(石蘭圖)>, 조속(1595~1668) <매조도(梅鳥圖)>, 조세걸(1635~?)의 <역풍소류도(逆風溯流圖)>, 홍득구(1653~?)의 <어가한면도(漁暇閑眠圖)>, 윤두서(1668~1715)의 <모자원도(母子猿圖)>, 정선(1676~1759)의 <한강독조도(寒江獨釣圖)>, 김홍도(1745~1806 이후)의 <기우취적도(騎牛吹笛圖)>, 이유신(18세기 후반)의 <청풍계류도(淸風溪流圖)>, <취작비폭도(醉作飛瀑圖)> 등 24명의 작가 28점으로 조선회화사를 한눈에 보는 ≪홍운당첩(烘雲堂帖)≫
▲효명세자(1809~1830)가 9세시(1817년, 순조17) 세자시강원(世子侍講院)에 입학하는 장면을 <서문(序文)>과 <세자시강원 입학의식 각 절차>, 그리고 <출궁의도(出宮儀圖)> <작헌의도(酌獻儀圖)> <입학의도(入學儀圖)一(왕복의도, 往復儀圖)> <입학의도(入學儀圖) 二(수폐의도, 授幣儀圖)> <입학의도(入學儀圖) 三> <수하의도(受賀儀圖)> 등의 입학 관련 반차도(班次圖) 6점, 또 시강원 소속 학사 13명의 축하시와 발문으로 구성한 《정축입학도첩(丁丑入學圖帖)》
▲1760년(영조 36) 4월 16일, 청계천 준설 완공 후 왕과 신하가 춘당대(春塘臺) 앞에서 활쏘기시합을 한 후 시를 짓는 장면을 그린 반차도 <춘당대영화당시사후사선도(春塘臺暎花堂試射後賜膳圖)> 1점, ‘력(力)’ ‘국(國)’ 운(韻)의 <영조어제어필(英祖御製御筆) 사언시(四言詩)>와 신하들의 갱운시 27편이 실려 있는 ≪제신제진(諸臣製進)≫(어제준천제명첩, 御製濬川題名帖)
▲1730년(영조 6) 정월 8일, 지난해 8월18일 하명(下命)한 탕평의 본질을 입시한 여러 대신들에게 마음속에 깊이 새겨둘 것을 명하는 내용인 <영조의 하교(下敎)> <응제자 명단> <조현명(趙顯命, 1690~1752)의 발문>으로 구성 된 ≪응제계첩≫
▲ 김정희(1786~1856)의 44세시 필적인 <사언시(四言詩)>와 <도홍경 절구(陶弘景 絶句)>, 조광진(1772~1840)의 <석철신신(昔徹神神)> <묵연(墨緣)> 전서대자 2점, 간찰 등이 수록되어 있는 ≪완당법첩조눌인병서(阮堂法帖曺訥人幷書)≫ 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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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미술사 틈 메울 귀중한 자료`
박재규 경남대 총장은 감회에 젖었다. 12일 오전 서울 예술의전당 서예박물관 회의실. 1996년 일본 야마구치여자대학 박물관이 소장하고 있던 한국 문화재의 보고 '데라우치 문고' 중 일부를 되찾아 오던 무렵을 회고하던 박 총장은 "피 마르는 고비를 여럿 넘겼다"고 말했다. 일제 강점기 조선 총독부의 초대 총독을 지낸 데라우치 마사다케(寺內正毅)가 우리 나라에서 가져간 문화재 가운데 1000여 점을 경남대 박물관이 되돌려받은 일은 한국 문화재 반환 역사에 큰 획을 그었다. 문화재의 가치를 평가하고 연구하는 데 10년 걸렸다. 25일부터 6월 11일까지 열리는 '경남대박물관 소장 데라우치 문고 보물-시(詩).서(書).화(畵)에 깃든 조선의 마음'은 반환의 정당한 근거를 입증하는 전시회다. 조선 선비의 마음이 135책 131점 시문과 글씨와 그림 속에서 살아 돌아온다.
전시에 앞서 공개된 일부 유물은 모두 한국 미술사의 빈 틈을 채워주는 귀중한 자료이자 걸작이다. 조선 중기 화가 이경윤(1545~1611)의 화첩 '낙파필희'는 그동안 이경윤이 그렸을 것이라고 전해오던 작품의 진위를 가늠할 기준작으로 평가받았다. 실물 자료가 없어 연구가 부진했던 성삼문.서경덕.정철.곽재우.양사언 등의 육필 원고가 500년 만에 발굴돼 서예사를 다시 쓰도록 만들었다. 민성휘(1582~1647)가 명나라 때와 청나라 때 각각 연경을 방문할 무렵 당대 지식인 154명이 송별하며 지은 시를 모은 '무진조천별장첩'에선 명.청 교체기 사회사를 읽을 수 있다.
출전 : 중앙일보 |
댓글목록
김주회님의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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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주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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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또 서울 나들이할 일이 생겼네요.
이번주는 일이 있어 그렇고 다음주 어린이날에나 한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