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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동김씨 上古史 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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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주회 작성일06-04-30 13:36 조회2,020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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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김은열, 김숙승, 김일긍, 김이청에 대하여

   증조부 김의화는 <김방경 묘지명>에나마 기록이 보이고 있으나, 김은열, 김숙승, 김일긍, 김이청은 근거기록을 찾을 수 없다. 족보기재 내력을 분석한 글(2002년 서울대 박재우 교수)을 첨부하면서 약간의 설명을 곁들일 뿐이다.


  - 김방경의 선대에 관한 기록 중에 김효인, 김민성, 김의화는 고려후기에 이미 알려졌지만 경순왕과 김의화 사이는 기록이 없다가 조선시기 족보에 나타나기 시작하였다.

  - 안동김씨 족보는 1580년「경진보」에서 시작해서 1739년「기미보」1778년「무술보」1825년「을유보」「정묘보」「임인보」가 편찬되었다. 하지만 「경진보」이전에 김익이 편찬한 초간본이 있었다.

  - 이처럼 김은열, 김숙승, 김일긍, 김이청에 관한 안동김씨 족보의 내용은 조상의 계보를 확인하고 가문을 선양하려 했던 조선후기 지배층 일반의 분위기를 반영하고 있다. 족보의 사회사이다.



4) 김은열

   김은열은 경순왕이 935년 고려에 귀화한 뒤 왕건의 딸 낙랑공주와 재혼하여 낳은 큰 아들이라고 하는데, 경주김씨에서 한 분파의 시조로 모시고 있기도 한다.


  - 셋째, 김은열은 1784년(정조 8)에 묘지석이 발견되어 1825년「을유보」에 처음 나타난다. 하지만 묘지명 내용이 고려시기 양식이 아니다. 고려는 '시중시랑유고려평장사' 식으로 관직을 기록하지 않으며, 묘지명에 사망한 사람의 직계만 기록하여 4조, 부인, 자녀를 기록할 뿐인데 여기는 형제가 기록되어 있다. 그러므로 이에 근거한 계보 추정은 재고할 필요가 있다. 하지만 「을유보」는 '세계원류' 김부 항목의 방주에 경순왕 넷째 아들로 기록하고 있다. 이는 숭조 관념의 발달로 조상에 관한 기록을 가능한 한 믿고자 했던 당시 지배층의 분위기를 반영하는 것이다.



5) 김숙승

비조(鼻祖)란 시조 이전의 先系祖上중 가장 높은 사람을 일컫고, 시조(始祖)란 제일 처음의 先祖로서 첫 번째 조상이며, 중시조(中始祖)란 시조 이하에 쇠퇴한 가문을 일으켜 세운 조상을, 모든 宗中의 公論에 따라 정하여 追尊한 사람이다. <족보>에는 ‘공부시랑 평장사’를 역임했다고 하는 김숙승(金叔承)으로부터 비로소 안동에 봉해졌다고 하여 안동김씨 시조로 모시고 있다. 그러나 사성과정이나 행적, 유적 등 일체의 내용을 알수 없어 안타깝다.


  - 넷째, 김숙승은 1825년「을유보」에 '구보(舊譜)'에 김은열의 아들로 계삼, 숙승이 나타난다고 소개되고 있다. 하지만 1784년 발견된「김은열묘지명」에는 김태화만 기록되고 있어 누가 안동김씨의 선대인지 모르겠다는 기록을 남기고 있다. 이후 김용백이 김호식이 가졌던 가첩의 도움을 받아 김은열 - 김숙승 - 김일긍 - 김이청의 계보였다고 추정하였으나 논증되지 않은 내용이 많아 사실로 받아들이기는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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