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익원공 연보자료 28 (65-66세, 1405-1406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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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주회 작성일06-05-01 22:02 조회1,515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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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5세) 1405년 태종5


○ 형 김사렴 별세. 안렴사공(휘 사렴, 1335~1405)공은 임종이 다가오자 여러 아들들을 돌아보며 유언하기를, "나는 고려조의 옛신하로서 이미 임금을 도와 나라를 보존치 못하였고, 나라가 망하였는데도 불구하고 따라 죽지 못하였으니, 천하의 죄인이 아니고 무엇이겠느냐? 그러니 무슨 면목으로 지하에 돌아가 선왕과 조상님들을 뵐 수 있단 말이냐? 내가 죽거든 깊은 산중에 파묻고 봉분도 하지 말고 표석도 세우지 말라. 그리고 우리 자손 중에서 고려조에 이미 벼슬했던 사람은 다시는 조선조에서 벼슬하지 말라." 고 말하였다. <1822년 고려명신전, 남공철(1760~1840)>

 

<시대상황>

○정몽주 추증, 1405년(태종 5)  권근(權近)의 요청에 의하여 대광보국숭록대부 영의정부사 수문전대제학 감예문춘추관사 익양부원군(大匡輔國崇祿大夫領議政府事修文殿大提學監藝文春秋館事益陽府院君)을 추증하였다.


○조준(趙浚) 죽음,

1346(충목왕 2)∼1405(태종 5). 고려말 조선초의 문신. 본관은 평양(平壤). 자는 명중(明仲), 호는 우재(吘齋) 또는 송당(松堂).




(66세) 1406년 태종6


□ 再過楊季平村舍

(양계 평촌사를 두 번째 지내면서) --- 익원공 김사형


碧溪西畔亂山東

서쪽에는 푸른 시냇물이 흐르고 동쪽에는 여러 산들이 어지럽게 서있네

楊子高亭活畵中

양자의 높은 정자 그림속에 살아 있으니

淸福豈容人久假

이 맑은 복을 어찌 남에게만 오래 주고 있으랴

勝遊眞似夢還空

멋진 놀이는 참으로 허무하게 돌아온 꿈만 같도다

樂生莫作千年調

인생이 천년을 고루 살기를 즐기지 마라

養拙甘爲一野翁

수양하여 한날 야옹이 됨이 좋으련만

不久收身同結社

멀지 않아 몸을 거두고 함께 모일 것이니

半分溪月與山風

시냇가에 저 달과 산바람을 반만 나누어 주오

*1580년 경진보 수록



川方寺 (천방사)--- 익원공 김사형


數間蘭若白雲中

두어칸 절이 백운 가운데 있으니

絶境疑通桂子宮

그 절경이야 말로 계자궁(신선의 궁전)에 통했는듯

夜靜波濤侵小夢

고요한 밤 파도소리 얕은 꿈을 꾸게 하고

月明笙學下瑤空

달밝은 밤 피리소리에 학이 하늘에서 내려오도다

(一聯未詳闕之)

(한짝은 알수 없어 궐함)

往事回頭堪笑殺

머리 돌려 지낸 일의 우수움을 참으며

遯肥從此作閒翁

영화를 다 버리고 이제부터 한옹이 되리라

*1580년 경진보 수록



善竹橋(선죽교) ---익원공 김사형


曾聞周國伯夷淸

일찍 주나라 백이숙제의 결백함을 들었는데

餓死首陽不死兵

그들은 수양산에서 주려 죽은 것이지 병정손에 죽은 것이 아니다

善竹橋邊當日事

선죽교 다릿가에 그날 당한 일은

無人扶去鄭先生

정선생을 도와주는 사람이 없었던가

*1580년 경진보 수록



□ 贈 築隱(증 축은)--- 金士衡(김사형)


起坐窓前思實眞(기좌창전사실진)

  일어나 창 앞에 앉아 지난 삶의 진실됨을 생각하노라니

平生難得假爲仁(평생난득가위인)

  평생토록 힘겹게 얻은 것이란 거짓된 仁뿐이라네

開門復闔橫肱臥(개문복합횡굉와)

  열린 문 도로 닫고 비스듬히 팔 베고 누우니

夜久無端不寐人(야구무단불매인)

  밤깊도록 끝없이 잠 못 이루는 사람이로세.

*축은집(김방려) 수록


김방려(1324-1423)의 <축은집>에 김영돈(1285-1348)과의 교유시 여러 수가 실려 있다. 그 외에도 우리 가문의 김구용(1338-1384), 김제안(?1340-1368), 김사형(1341-1407)과의 교유시도 여러 수가 실려 있다.


*김방려는 김영돈의 문하생일 가능성이 많고 이를 인연으로 우리 가문 여러 선조님과의 교류가 평생 이어진 것으로 볼수 있다.

김영돈       ?  ∼1348

김방려 1324∼1423

김구용 1338(충숙왕 복위 7)∼1384(우왕 10).

김제안   1340?∼1368(공민왕 17).

김사형 1341∼1407(태종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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