川沙 金宗德의 문학과사상 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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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주회 작성일02-04-25 21:14 조회1,581회 댓글0건본문
川沙 金宗德의 문학과사상 09
학술대회장에서 보고 들은 바는 있지만, 사상과 철학이라는 것은 함부로 판단할 성질의 것이 아닌 것 같습니다.
따라서 일체의 사견을 배제하고 [川沙 金宗德의 文學과 思想] 학술대회 논문집에 수록된 주요부분과 저술설명 위주로 발췌해서 타이핑하여 소개하고 있습니다.
▣ 천사 김종덕선생의 學問과 著述 --- 金洪永 (계명한문학회 회원)
3. 천사의 저술
3.1 文集
이 책은 시문집으로 순조6년 (1806)에 문인이자 종질인 金堂進 (1751-1833)이 주관하여 [川沙先生文集] 이라는 제목으로 간행했다.
이 문집은 19권 10책으로 편집된 목판본으로 서문과 발문이 없다.
문집의
권1은 詩시, 疏소
권2-13은 書서
건14-16은 雜著잡저
권17은 序서, 記기
권18은 跋발, 箴잠, 銘명, 文뢰문(조문,빌다-뢰), 哀辭애사, 祝文축문, 祭文제문
건19는 行狀행장으로 편차되어 있다.
권1은 121제 150수의 詩와 [의청대산선생원향疏]가 수록되어 있는데,
여기에 실려 있는 시작들은 卷首의 [우제] 한수를 제외하면 모두 31세이던 1754년에서 세상을 떠난 1797년까지 44년동안에 창작된 것으로 시체와 무관하게 창작 연대순으로 편차되어 있다.
문인 정필규의 [언행록]에 의하면,
천사는 詩作 행위 그 자체를 부정적으로 인식하지 않았고, 또 젊은 시절 시 짓기를 즐겼다고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40여 년이란 장구한 기간동안 창작한 작품이 150수에 불과한 것은 스승인 대산의 경계에 힘입어 만년에 많은 작품을 없애버렸기 때문이다.
천사의 시풍에 대하여 정필규는
"충담 혼후하여 무게와 격조가 있다"고 평한 바 있거니와,
문집에 실린 시들은 수식과 과장을 배제하고 중후한 언어로 성리학적 세계관을 표출한 작품들이 주류를 이루고 있다.
특히 [偶題우제], [偶吟우금], [寓意우의], [偶成우성], [敬次퇴도선생遊山韻], [反己반기] 등의 작품은 도학적 사유에 기반을 두어 학문의사를 충실하게 담고 있는 대표적인 작품들이라 할 수 있다.
이밖에 輓詞만사, 贈詩증시, 和·次韻詩 등도 대부분 관용적인 허?가 아닌 言志적 진실성을 내포하고 있다.
권1의 끝에 실린 [擬請대산선생院享疏]는 71세때 지은 것으로
后山은 이 疏本을 보고
"이 노인의 문장은 바다에 들어가 용을 보는 것 같아 헤아릴 길이 없다" 하고 찬탄한 바 있다.
권2-13은
스승 대산에게 올리거나 답한 36편의 書簡서간을 위시하여
道로써 사귄었던, 번암, 후산, 입재, 동암, 노애, 묵헌, 귀와, 회병, 만곡 및
문인 이야순, 정필규, 유송조, 이병운, 이병원, 서활, 조우?, 金淸進, 金堂進, 이병하,
그리고 아우인 宗敬, 宗發 등 100여 명에게 보낸 400여 편의 서간으로 이루어져 있다.
< 중 략 >
권 14-16에는 [仁設疑稟인설의품], [啓蒙疑問계몽의문], [善惡皆天理設선악개천리설] 등 21편이 실려 있다.
권14에 수록된 [仁設疑稟]은 천사가 42세 되던 해 주자의 [仁設圖]를 보고 주자의 설을 분석하면서 仁의 개념과 관련된 선유의 학설을 참고하여 자신이 문제점을 제시한 다음, 그에 대한 자신의 견해를 논술하여 대산께 올린 품의문인데, 대산의 답설이 부록되어 있다.
[仁設後錄]은 66세 되던 해 [仁設疑稟]에 대한 사우들의 견해를 참고하여 前說을 보완한 것이다.
권15의 [啓蒙疑問]은 천사가 38세이던 해에 주자의 [易學啓蒙]과 퇴계의 [啓蒙傳疑]등의 내용 가운데 의문점을 뽑아 자신의 의견을 개진하고 대산에게 질정을 구한 것이다.
권16에는 천사가 43세이던 해에 지은 [善惡皆天理設], [性善說] 등 12편의 設과 [대산선생 碣文中四七設往復修改辨] 외 4편이 실려 있는데,
12편의 설은 [太極圖說設]을 제외하면 대부분 단문이나 성리학에 있어서의 핵심적인 문제에 대한 천사의 宏博(굉박)한 蘊蓄(온축)의 일단을 엿볼 수 있는 자료이다.
권17에는 [兒子入籍序]를 비롯한 8편의 序와 그 밖에 [玉溪遊山錄]과 4편의 記가 실려 있다.
이 가운데 [考證序], [釋學正贓序], [聖學正路序], [政本序] 등은 자신의 저술에 대한 自序이고
[옥계유산록]은 46세 되던 해 대산 선생을 모시고 이경화, 권렴 등 수십명과 18일동안 옥계계곡을 유람한 전말을 기록한 기행문이다.
권18에는 [琴材識금재지] 외에 8편의 跋발, 2편의 箴잠, 3편의 銘명, 3편의 ?文, 2편의 哀辭애사, 3편의 祝文, [祭권보翁文] 외 25편의 祭文이 실려있다.
이 가운데 45세이던 해에 지은 [座右銘]은
"(인욕을) 끊고 끊어 잇지 말며, (천리를) 잇고 이어 끊지 말지니,
(인욕을) 끊는 곳에 문득 (천리가) 이어지고, (인욕을) 잇는 곳에 문득 (천리가) 끊어진다." 는 내용인 바, 여기서 천사의 심성수양에 대한 구도자적 자세를 읽을 수 있다.
권 19에는 스승 대산 遺事유사와 [先考遺事] 및 仲弟(=?종경), 季弟(=?종발)의 家狀이 실려 있다.
이상에서 문집의 체제와 내용을 개괄적으로 살펴본 바, 특기할 만한 것은 이 문집에 실린 각종 저술 가운데 서,기,발문,행장 등의 문자가 수적으로 대단히 적은 편이고, 그것도 한두편을 제외하면 자신의 저술이나 門內事 및 師門에 관련된 것이라는 점이다.
이는 천사가 다른 사람의 요청에 의한 의례적인 문장을 짓는 것을 고사했기 때문이라고 전하는데, 이러한 사실은 [천사선생문집]이 학문적 성격이 짙은 저술이라는 점을 반증하는 하나의 증표가 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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