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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전 된 경순왕릉은 누가 발견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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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발용 작성일06-05-09 22:27 조회1,537회 댓글8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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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0244000031001.jpg457by1.jpg지난 일요일, 홈페이지 게시판에 대종회에서 공시한바와 같이 敬順大王 春季陵享大祭가 연천군 장단면 고량포의 경순대왕릉에서 성대하게 개최되었다 합니다.
저는 전날 선산에서 제초작업을 하다가 약간의 농약중독증세가 있어서 부듯이 참석하지 못하였습니다. 올해는 꼭 참여하려했었는데 내년을 기약하고 말았습니다.

다음날 경순대왕 춘향대제에 참석했던 재구님과 용주님으로부터 전화를 받으니 그 아쉬움이 더합니다. 어제는 날씨가 너무 청명했었거든요...


이번 능제에서도 敬順大王陵誌를 설명하며, “실전되었던 경순대왕릉을 발견한 것은 후손인 안동인 김굉(金硡)이다.”라는 언급이 있었던가봅니다.

 

이번기회에 안동인(安東人) 김굉(金硡)에 대하여 알아보겠습니다.


먼저 2002년 경순대왕 춘계능향대제 주최 측에서 배부한 敬順大王 陵誌를 보면


 

敬順大王 陵誌


신라 제56대 경순대왕의 능은 경기도 장단면 남8리 (현 경기도 연천군 고랑포리) 聖居山 줄기의 花藏山에 위치하고 있다.

이곳 화장산(花藏山)은 동쪽에는 연천강과 월봉산(月峰山이) 있고, 서쪽에는 성거산(聖居山이) 있으며, 남쪽으로는 임진강이 흐르고, 북쪽에는 金陵坡(금릉파)가 있는 지역으로 성거산의 한 줄기가 서남쪽으로 흘러내린 곳에 자리 잡고 있다.

地師들의 말에 의하면 일명 花藏龍(화장룡)이라고도 부르는 이곳은 八百蓮花格(팔백연화격)이요 金鷄抱卵形局(금계포란형국)으로 천하의 명당이라고 한다.

고려경종3년 (서기 978) 음력 4월4일에 대왕께서 승하하시자, 이곳에 大王禮로서 因山하여 陵을 조성하였으나,

임진왜란 이후에 실전되었던 것을 조선조 영조3년 (서기 1727) 에 후손(안동인) 金硡(김굉)이 [敬順大王藏之] 라는 6자가 각자된 誌石을 발견하고 영조 23년 (서기 1747)에 영역을 찾아내어 영조대왕께 修治疏(수치소)를 올렸다.

영조대왕께서는 金聖運(강원,충청감사), 金應豪(僉正) 등으로 하여금 陵墓(능묘)를 봉축하게 하고, 장단부사 沈鳳徵(심봉징)으로 하여금 致祭(치제)하게 하였으며, 그로부터 장단부에서는 매년 3월1일과 10월1일에 춘추享祀(향사)를 올리고, 官軍으로 하여금 수호하도록 하였다.

 

 

 

위 기록을 근거로 조선왕조실록을 영조조를 검색하면 金硡(김굉)이란 인물이 십여 곳에서 검색이 됩니다. 그런데 영조실록에 나오는 金硡(김굉)은 慶州人으로 영조(英祖) 11년 (을묘, 1735년), 증광시(增廣試) 병과32(丙科32)에 합격하신 분입니다. * 아래 항용님께서 올려주신 자료 <동방급제자(40)-김가경(제), 김광국(군)>의 김굉(金硡) 참조.


 

그밖에 경순왕으로 검색한 왕조실록 영조때의 기록을 보면


 

영조 64권 22년 10월 14일 (병자) 004 / 동지 김응호가 신라 경순왕의 지석과 석물이 장단에서 나와 이를 정비하는 일로 아뢰다

 

동지(同知) 김응호(金應豪) 등이 상소하였는데, 대략 이르기를,

“신들의 선조인 신라 경순왕의 능묘를 오래 전에 잃어버렸습니다. 지금 장단(長湍)에서 그 지석(誌石) 및 신도비(神道碑)가 나왔으나, 왕묘에 대한 일은 사삿집의 무덤과는 그 사례가 달라서 벌목을 금지하는 절차와 석물을 세우고 수호자를 두는 일은 조정의 지시가 아니고서는 할 수 없습니다. 혹시라도 조정에서 사정을 참작하여 규정을 허락하여 준다면, 위로는 전대(前代)를 추념하는 성주(聖主)의 뜻을 드러낼 수 있고, 아래로는 추원 보본(追遠報本)하려는 신들의 정성을 위로할 수 있을 것입니다.”

하니, 비답하기를,

“마땅히 대신들에게 물어서 처리하겠다.”

하였다.

【원전】 43 집 226 면

【분류】 *정론-정론(政論) / *역사-전사(前史) / *가족(家族) / *풍속-예속(禮俗)


 

영조 65권 23년 4월 20일 (기묘) 003 / 신라 경순왕의 묘를 수치하도록 명하다

 

신라 경순왕(敬順王)의 묘(墓)를 수치(修治)하도록 명하고, 하교하기를,

“지금 김일호(金一豪) 등의 비지(碑誌) 인본(印本)을 보건대, 그것이 경순왕의 묘임을 의심할 것이 없다. 1천 년 가까이 된 후 오늘날에 찾게 되었으니 기이하다고 말할 만하다. 전대의 다른 능(陵)과 비교하여 사면(事面)이 더욱 중대하니, 도신(道臣)으로 하여금 관심을 가지고 수치하도록 하라. 그리고 이미 치제(致祭)하였으니 비석(碑石)을 세울 때에 역군(役軍) 또한 돌보아 돕도록 하라.”

하였는데, 이보다 앞서 그의 자손이 진소하였기 때문에 이런 명이 있었다.

【원전】 43 집 245 면

【분류】 *왕실-종사(宗社) / *정론-정론(政論) / *재정-역(役) / *역사-전사(前史)

 

 

영조 90권 33년 7월 21일 (신해) 003 / 승지를 보내 신라 경순왕의 묘에 치제케 하다

 

승지를 보내어 신라 경순왕(敬順王)의 묘에 치제(致祭)하였다. 묘의 소재를 몰랐었는데, 후예(後裔) 김효대(金孝大) 등이 장단(長湍)에서 찾아 개봉(改封)하였기 때문에 임금이 듣고 이런 명령이 있었다.

【원전】 43 집 657 면

【분류】 *역사-전사(前史) / *풍속-예속(禮俗)


다음, 2002년 능제당시 주회님께서 수안김씨 대종회장 김수선씨로부터 전해들었다는 "김굉(金硡)은 좌정승 김사형의 8대손이며 영의정 김수동의 4대손이다." 라는 기록을 바탕으로 족보의 기록을 찾아보았습니다.  


족보기록

士衡(사형)-陞(승)-宗淑(종숙)-碔(무)-義錫(의석)-淪(윤)-應天(응천)-孝祥(효상)-硡(굉)


硡(굉)

忌十二月十七日 墓長湍郡津東面哨里城村酉坐

敬順王陵失傳久遠始尋塋域修治守護自公以始


족보기록으로 보면
김굉(金硡)은 익원공 휘 사형의 8대손이며 동추공(同樞公) 휘 종숙의 5대손입니다.

장단군 진동면 초리에 묘가 있으며, 경순왕릉이 실전 된지 오래 되었는데 무덤을 찾고 수치, 수호한 것이 공으로부터이다.



위의 기록을 종합해보면

-1727년 영조 3년 후손 안동인 김굉이 실전된 경순왕의 지석을 발견하다.

-1746년 영조 22년 동지(同知) 김응호(金應豪)가 신도비를 발견하다.

-1747년 영조 23년 왕이 경순왕(敬順王)의 묘(墓)를 수치(修治)하도록 명하다.

-1757년 영조 33년 왕이 경순왕의 묘에 제물과 제문을 내리다.


김굉(金硡)

생몰년미상(조선중기. 영조대). 본관 안동. 조선개국공신 익원공 김사형의 8대손이다. 실전 된지 오래된 경순왕릉의 지석을 발견하여 왕릉을 찾는데 단초를 제공하였다. 경순왕릉과 인접한 장단군 진동면에 묘가 있다.

 

 

댓글목록

김발용님의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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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참여 못한 아쉬움을 달래며 김굉의 기록을 찾아보았습니다. 혹 오류가 심화될까 두렵습니다. 잘못된 부분은 지적해주시기 바랍니다. 족보를 보면 김굉의 후손이 많이 번성했습니다. 그 집안에 전해 내려오는 또 다른 기록을 기대해봅니다.

김주회님의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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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속시원하게 깔끔하게 정리하셨네요. 프로의 경지에 이름!!!
경순왕릉 다시 찾은 것이 그리 오래되지 않았네요. 기회 있을 때마다 참배하고 싶네요. 내년에는 꼭...

김윤식님의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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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예전에 경순대왕 추향대제에서 김굉이란 분에 대한 이야기를 들고 찾아보았느데,
실마리를 찾지 못하고 숙제로 남아 있었습니다.
궁금증이 해소돼 무척 기쁩니다.
감사합니다.
사무실에서 일하다가 잠시 들어왔습니다.

김항용님의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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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김굉에 대한 족보 기록을 찾는 중이었습니다. 명쾌한 해설과 종합 정리에 감사합니다. 홈 김씨 계통도에 올리겠습니다.
감사합니다.

김용주님의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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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지난일요일 화창한 날씨속에 청풍김씨 친구한명과 경순대왕 춘계대제에 참석하였읍니다 그리고 금년부터 춘계대제는 오월첫째일요일에 해마다 거행 한다고 합니다. 신라김씨 대종원ㅁ총재 김수선님의 설명에 의하면 경순대왕능묘을 찾겟된동기가 구안동김씨의 선조.효종조때 분으로 영의정을 지내시다 파당에 휘말려 역적으로 몰리셔 돌아가신 김자점 선조님의 후손들이 황해도에 피신하여 살다가 일부가 연천.장남지역에 들어와 사셨다합니다 그후손중의 김굉 이란분께서 표석을 발견하여 지방수령 께 알려 영조대왕께서 경순대왕의 능묘을 치수 하였다.하더군요 나는처음 참석하여 그이야기을 들어서인지 어깨가약간 으쓱 하였읍니다 그래서 이런생각을 하여보았읍니다. 능 입구에 위사실을 적은 설명판은 어덜지요. 그리고 군사공파 재구대부님을 만나서 반가워읍니다. 

솔내님의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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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일목요연한 정리.. 그동안 답답했던 가슴이 후련합니다.

김용주님의 댓글

profile_image 김용주
작성일

  대글중 선조가아니라 인조 입니다.

상석님의 댓글

profile_image 상석
작성일

  휘 굉(익) 선조님께서 발견하신 지석과 석물로 오랜 선조님이신 경순왕의 능이 다시 조성되어 모셔진 사연과 이보다 앞서 충익공(휘時讓) 선조님께서 충렬공 선조님의 묘전을 수호하기 위해 범장한 묘를 처리하시던 과정에 얽힌 기록들을 보며 실로 많은 것을 배우고 있습니다.이로써 하나하나 써내려가는 기록문화에 커다란 가치를 둡니다.명쾌한 전말의 기록,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