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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난설헌 소설-이 생에서는 늘 이별이었네 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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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항용 작성일06-05-22 15:26 조회1,449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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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1회>

 

 

 

    4. 연홍(蓮紅).

  율곡(栗谷)을 배웅하고 대문을 들어서는 허봉의 얼굴은 불그스레 상기되어 있었다. 술기운 때문만은 아니었다. 신진사림의 영수로 떠오른 율곡이, 아버지와 불편한 관계임에도 불구하고, 그의 입격을 축하하기 위해 방문한 것은 고무적이었다, 비록 몇 년 전 소과장원 뒤 율곡을 방문 한데 대한 답방 성격이 있다 하더라도. 그는 바깥 사랑채 자기 방 앞에서 걸음을 멈추었다. 옆방 섬돌 위에 형의 신발이 없었다. 허봉은 방으로 들어와 문을 닫고 서안 앞에 앉았다. 그는 벽에 비스듬히 몸을 기대고 무연히 서안 위에 펼쳐진 *전습록(傳習錄)을 보았다.  
 안채에서 들리는 하객들의 웃음소리가 바깥 사랑채에까지 희미하게 들렸다. 대과 입격이 확정되고 3일 거리 *유가(遊街)가 끝난 지가 보름이 넘었는데도 아직 집안엔 하객들의 발길이 끊이질 않고 있었다. 하객들이 찾아와 아버지에게 축하를 할 때마다, 그는 안사랑채에 가서 하객들에게 인사를 해야 했다. 그 횟수가 너무 잦아 이번 과거에 함께 응시했다가 낙방한 형에게 괜스레 송구스러웠다. 아마 형이 낯에 자리를 비운 것은 자신의 입장이 곤혹스러웠기 때문일 터였다.
 그는 자세를 바로 하고 책장을 넘겼다. 안사랑채에서 율곡과 함께 마신 몇 잔의 술기운 때문일까? 책장을 넘기고는 있었으나 글이 눈에 잘 들어오지 않았다. 어쩌면 이미 세 번이나 읽었기 때문일지도 몰랐다. 그러나 그는 습관적으로 책장을 넘기고 있었다. “…不合於吾意 則雖其言之出於孔子 吾不敢以爲信然” (…만약 내 의견과 다르다면 비록 그 말이 공자에게서 나왔다 하더라도 나는 그 말을 믿지 못 하겠다).
 그는 책장을 넘기던 손길을 멈추었다. 곤혹스런 눈빛으로. 참으로 *유자(儒者)로서는 말하기 어려운 망령(妄寧)된 언어였다. 이 글귀 때문에 그는 전습록을 세 번이나 읽었다. 마음[心]이 곧 리(理)다. *육자정(陸子靜)이 이미 심즉리(心卽理)를 주장한 바 있어 아주 생소한 명제는 아니었으나, *왕수인(王守仁)은 육자정과는 달리 마음을 아는 방법으로 양지(良知)를 주장하고 있었다. 모호한 개념이었고 성즉리설(性卽理說)에 익숙한 그로서는 동의하기 어려운 주장이었다. 율곡과 함께 한 자리에서 이 문제를 토론해 보고 싶었으나 다른 하객들 때문에 말을 꺼내기가 어려웠다.
 그는 책을 덮었다. 읽지도 않으면서 책장만 넘기는 행동이 무의미했기 때문이었다. 벽에 등을 기대고 눈을 감았다. 그는 혼잣말로 중얼거렸다. 不合於吾意 則雖其言之出於孔子 吾不敢以爲信然. 씹을 수록 참으로 망령된 언설이었지만, 그러나 한편으로 생각하면 유자(儒者)를 자처하는 자로서 자기 학문에 얼마나 자신이 있었으면 저런 말을 거침없이 할 수 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들어 부럽기도 했다.
 그런 생각이 들었을 때 그는, 학문하는 자로서 나는 언제쯤 저런 자신감에 도달할 수 있을까, 하고 자문해 보았다. 주변에서는 수재니 소년 입격이니 하고 부추켜 세우지만, 그는 점점 학문에 자신감을 잃어 가고 있었다. 처음에는 쉬운 것 같았던 학문의 길은 갈수록 밑을 가늠하기 어려운 깊은 바다와 같았고, 자신은 그 바닷속을 헤집는 작은 물고기에 불과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註)
*전습록(傳習錄) - 중국 명대(明代) 중기의 사상가 왕양명(王陽明:1472~1528)의 어록(上下卷) 과 서간집(中卷). 
*유가(遊街) - 조선시대 과거급제자들이 시가를 행진한 풍습
*유자(儒者) - 유교를 배우는 사람. 또는 유가(儒家), 유사(儒士)라고도 칭한다.
*육자정(陸子靜 1139∼1192)ㅡ남송 유학자 육구연을 말함. 자정은 자. 호는 상산. 주희의 성즉리를 부정하고 심즉리(心卽理)를 주창.
*왕수인(王守仁1472-1528) ㅡ 명나라 유학자. 호는 陽明. 육상산 사상을 계승 발전시켜 지행합일(知行合一)을 강조하는 실천철학인 양명학을 수립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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