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 게시판

中자싱시 김구 선생 피난처 중ㆍ한 우호거리로 조성

페이지 정보

김주회 작성일06-05-30 00:00 조회1,604회 댓글0건

본문

中자싱시 김구 선생 피난처 중ㆍ한 우호거리로 조성
[연합뉴스 2005-04-21 10:17]
432005041901900_1.jpg
img_caption.gif中 자싱 '金九觀潮處' 제막식 거행

자싱시 메이완 거리 10월중 주변 보수 완료

(자싱<中 항저우(杭州)>=연합뉴스) 지일우 기자 = 백범 김 구 선생이 1932년 윤봉길 의사의 의거 이후 일제의 검거를 피해 1년반 가량 피신했던 중국 항저우(杭州) 자싱(嘉興)시 메이완제(梅灣街) 주변 거리가 중ㆍ한 문화우호거리 등 3대 거리로 조성된다.

21일 자싱시 관계자에 따르면 시 당국은 오는 10월까지 김 구 선생이 피신했던 시내 난탕농(南當弄) 메이완가 76번지 주변 거리를 ▲중ㆍ한 문화우호거리 ▲미식(美食)거리 ▲고대 문화거리 등 3대 거리로 조성할 계획이다.

항일운동을 함께 한 동지로서 한ㆍ중간 유대감을 살리고 옛 건물들을 복원.보수함으로써 항일운동 당시의 느낌을 유지하는 한편 고급 식당들을 유치해 관광객, 특히 항일운동 유적지를 찾는 한국인 관광객을 대거 유치하겠다는 것이다.

메이완 거리에는 김 구 선생의 피난처와 당시 김 구 선생과 함께 일제의 검거 선풍을 피해 피신했던 임시정부 요인들의 거주지가 위치해 있다.

김 구 선생과 이동녕 선생 등 당시 임시정부 요인들은 중국 국민당과 중국 신해혁명의 원로인 추푸청(저<옷 의변에 者>補成) 선생 등의 도움으로 1932년 5월부터 이듬해 12월까지 19개월간 자싱에 피신, 독립운동을 이끌었다.

김 구 선생이 피신했던 메이완 67번지 가옥은 2층 목조 건물로 1층은 접견실 겸 식당으로, 2층은 침실로 재현됐다. 특히 2층 침실 한편에는 인접한 남호(南湖)로 연결되는 비상구와 김 구 선생이 피신할 때 사용한 조각배도 배치됐다.

김 구 선생은 윤봉길 의사가 1932년 4월 29일 일왕의 생일인 천장절(天長節)과 상하이 사변 전승기념식이 열리는 상하이 훙커우(虹口) 공원에서 폭탄을 던져 일본 상하이 파견군 대장 시라카와 요시노리(白川義則)와 상하이 일본 거류민단장 가와바타(河端貞次) 등을 즉사시킨 의거를 일으킨 뒤 일제의 검거 선풍을 피해 항저우 자싱 부근 헤이앤(海鹽)을 거쳐 그 해 11월 이 곳으로 피신한 바 있다.

윤 의사의 당시 의거는 김 구 선생의 지시에 따른 것으로 당시 의거로 일본 제3함대 사령관 노무라(野村吉三郞), 제9사단장 우에다(植田謙吉), 주중(駐中) 일본공사 시게마쓰(重光葵) 등도 중상을 입었다.

윤 의사는 거사 직후 현장에서 체포돼 일본 오사카(大阪)로 이송된 뒤 그해 12월 18일 가나자와(金澤) 형무소로 옮겨져 19일 총살됐다.

자싱시는 앞서 2001년 자싱시 민중집단공사와 한국 독립기념관, 광복회 등 9개 단체의 후원으로 김구 선생의 피난처와 메이완 17번지에 위치한 임정 요인 거주지에 대한 대대적인 보수공사를 완료, 일반에 공개하고 있다.

자싱시는 이와 함께 김 구 선생의 피난처와 임정 요인 거주지를 `문물보호단위'(문화재)로 지정하는 한편 자싱시내 김 구 선생의 다른 피난처인 헤이앤현 남북호 주변 지역도 민속촌으로 조성해 관광객을 맞이할 채비를 갖추고 있다.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