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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남일보에 실린 칼럼-충무공 김시민 장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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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항용 작성일06-06-04 14:10 조회1,910회 댓글2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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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남 천안에 계신 김태환종친(제, 스님)께서 2006. 5. 30. 충남일보에 기고한 충무공 김시민 장군 관련 칼럼입니다.

[칼럼]우리 지역의 자랑, 충무공 김시민 장군
[데스크 칼럼]우리 지역의 자랑, 충무공 김시민 장군 임진왜란의 3대첩(大捷)은 이순신 장군의 한산대첩과 권율 장군의 행주대첩 그리고 김시민(金時敏) 장군의 진주성대첩이다. 이 중 가장 먼저 치러진 전투가 진주대첩이다. 임진왜란은 1592년 4월에 발발했고 진주성대첩은 그해 10월 5일 왜군들이 진주성을 공격하면서 시작됐다. 왜군들에게 있어 진주성은 매우 중요했다. 조선 최대의 곡창지인 호남평야를 노렸기 때문이다. 호남의 양곡을 군량미로 삼아야 했고 평탄한 호남과 충청 지역을 통해 북으로 진격하려 했던 것이다. 침략자에게 중요한 공격루트는 방어자에게 더 중요하다. 그 길을 빼앗김으로 강산의 초토화가 비롯되기 때문이다. 진주성 대첩은 바로 왜군들이 생각하는 중요 공격루트를 지키는 싸움이었다. 그 전투의 영웅은 김시민 장군이다. 천안 병천에서 태어나 25세에 무과에 급제하여 훈련원 주부를 거쳐 이탕개의 난을 평정하는데 공을 세우고 진주판관으로 부임하면서 진주땅과 인연을 맺었다. 그리고 임진왜란의 소용돌이 속에서 진주 목사가 된 김시민 장군은 급조된 장정들로 구성된 3천 8백여명의 군사들을 지휘하며 조총을 주무기로 한 3만의 왜군을 상대하여 싸웠다. 진주성 대첩은 조선의 군관민이 혼연일체가 되어 결사항전을 함으로써 이뤄낸 쾌거였다. 그 지휘부를 맡은 김시민 장군은 손수 군사와 백성을 독려했고 주변에서 달려 온 의병들과 함께 죽을 각오를 했던 것이다. 그의 전투는 승기를 잡았지만 그는 저격병의 탄환 앞에 쓰러졌다. 39세의 뜨거운 나이에 산화한 그의 장례는 진주성 전투가 완전히 끝난 뒤에야 치뤄졌다. 그의 전투는 임진왜란의 초반을 장식하는 엄숙한 항전이었다. 그로부터 12년 후인 1604년 조정에서 김시민 장군의 진주대첩을 치하하는 선무공신교서(宣武功臣敎書)가 내려진다. 이후 숙종 때도 충무공(忠武公)이라는 시호와 함께 벼슬이 추증 되었다. 400여 년 전의 김시민 장군이 오늘날 다시 화제가 되고 있다. 그 선무공신교서가 일본에서 발견되어 경매에 나왔고 일본인 고서적상인이 낙찰하여 소장하게 됐다는 소식이 전해진 것이다. 원래 교서는 김시민 장군의 후손들이 간직했었으나 조선사편수회에서 일하던 미우라 히로유키라는 일본인이 약위해 간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이 소식이 전해지자 김시민 장군의 산화지인 진주 시민단체들이 교서 되찾기 운동을 펼친다고 한다. 경매에서 1천 2백 만 엔에 낙찰된 교서를 다시 사들이자는 운동이다. 반가운 일이다. 그간 우리는 김시민 장군을 외면해 왔다. 진주성에 동상이 최근에 세워지긴 했지만, 전공비는 아직 없다. 김시민 장군의 출생지인 우리 지역은 어떤가? ‘충무공 김시민장군 기념사업회’가 결성되어 여러 사업을 추진하고 있지만 아직 세간의 눈길을 사지는 못하고 있다. 천안시의 자랑인 충무공을 기리고 그의 애국정신을 기리는 것은 ‘독도는 우리 땅’을 외치는 것만큼 중요한 일이다. 천안시민들도 이제 김시민 장군을 기리는 일에 적극적으로 나설 때다. 생가복원 사업과 사당 건립 동상 건립 등 기념사업회가 계획하고 있는 각종 사업들에 힘을 실어 주어야 한다. 천안시에 ‘김시민로(路)’를 지정하여 그의 충절을 되새길 수 있도록 하는 것도 좋은 일이라 생각한다. 산화지의 후손들이 적극적으로 교서 되찾기 운동을 펼치는 모습을 구경만 하고 있을 수는 없는 것이다. 그의 뿌리가 닿아 있는 우리 지역에서 그의 정신을 잇고 그의 공을 본 받을 수 있는 사업을 다양하게 전개하는 것은 우리 지역의 양심과 자존을 선양하는 일임을 강조하고 싶다. / 김태완 철학박사

댓글목록

김진욱님의 댓글

profile_image 김진욱
작성일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김상석님의 댓글

profile_image 김상석
작성일

    탄생지 천안에서도 충무공의 구국일념과 애민정신이 온전히 자리매김 되어 여러분야에서 추진하는 각종 선양사업이 차근차근 이루어졌으면 하는 바람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