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閔賢九교수 論文 중 金方慶 부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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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발용 작성일02-04-28 05:04 조회1,599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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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1년 발간된 韓國史市民講座 제8집에 고려대학교 문과대학 한국사학과

교수로 계시는 閔賢九님의 논문 " 蒙古軍. 金方慶. 三別抄 " 중에서

金方慶부분만 발췌하였습니다.











(중략)



金方慶은 安東 金氏로 좋은 가문의 출신이나 음서를 통해 武班職을 받고

입사하였다. ☞『高麗史』列傳 17. 金方慶傳

그러나 軍職 이외에 여러 직임을 역임하엿는데, 몽고의 침입을 받았을 때

에는 西北面兵馬判官으로 적과 부닥치면서 葦島에 入保한 적도 있었다.

☞入保란 保, 곧 소규모의 城砦가 마련된 요새지에 하나의 州縣을 단위로

官民이 移入하는것을 뜻함.

그는 武人執權者와 가까이 했던 일이 없고, 부당한 처사에 대하여는 용인

하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충직하고 그릇이 큰 인품과 유능함 때문

에 상하의 신임이 두터웠다.

그가 上將軍으로 重房 소속일 때 무슨 일로 하급장교를 杖 때리자 班主

가 權臣, 아마도 집정인 김준에게 참소하여 南京의 수령으로 좌천시켰는

데, 전에 김방경이 西北面兵馬使로 재임했을 때 베푼 선정에 감복했던 西

北 諸城에서 차라리 그곳에 다시 보내달라는 상서를 올려 즉시 그리로 옮

겨 가기도 했다. 그는 또한 사신으로 몽고에 다녀온 적도 있었다. 이러한

점들은 그가 정권을 잡은 무인 집정의 주위에서 맴도는 부류와는 다른 성

향을 지닌 무신임을 말해주는 바로서 그의 가문배경이나 典故를 많이 알

았다는 學識과도 연관을 지닌다고 여겨진다.



(중략)



1271 년(원종 12 년) 5월 15일 金方慶은 逆賊追討使란 직함으로 大軍을

이끌고 진도를 공격하였다.☞『高麗史』列傳 17. 金方慶傳 및 同 世家 27,

元宗 12년 5월 丁丑.

裵仲孫이 지휘하는 삼별초군과 싸우기 위해 서였다. 일찍이 대몽항전에

나서 싸웠고, 고려 조정의 상하 관료들과 일반 백성으로부터 신망과 존경

을 받아온 그가 몽고군의 도움을 받으면서, 바로 고려의 자주성을 주장하

며 독립된 정권을 세운 삼별초와 대결하게 되었으니, 이것은 역사의 비극

이요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었다.



(중략)



한편, 김방경은 진도와 탐라의 삼별초 세력을 분쇄 섬멸시킨 다음, 개선

하여 門下侍中에 올랐다. 그 후 그는 두번에 걸친 몽고의 일본 정벌에

고려군을 이끌고 참전하였다. 그 동안 여러 번 시련을 겪었으나, 그의 명

성은 고려뿐만 아니라 元(몽고)에 까지 널리 알려지고, 世租의 후대를 받

았다. 그는 長壽하면서 국가의 元勳으로 숭앙받았다. 역사에서 그는 난국

에 처한 고려를 부지하여 안정시키는데 큰 공을 세웠다고 기록되고 있다.



(후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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