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온공의 교류인물(6)제정 이달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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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내영환 작성일06-06-19 15:25 조회1,478회 댓글0건본문
문온공(김구용)할아버님과 제정(이달충)선생과는 학문적으로
또 정치적으로 매우 절친한 관계이셨습니다.
그리고 제정선생의 따님을 며느님(아들 김명리의 처)으로 맞이하시어
사돈이 되시었습니다.
제정선생께서 문온공께 주신 글을 살펴보면, 척약재잠(척若齋箴),
제김안렴시권후발(題金按廉詩卷後跋)등이 있습니다.
척약재 잠
毋不敬 毋自欺 馭朽索 攀古枝 進知退 安思危 厲無咎 念在玆
무불경 무자기 어후삭 반고지 진지퇴 안사위 려무구 념재자
공경하지 아니함이 없어야하며
스스로 속임이 없어야한다.
썩은 새끼로 말을 다루듯(조심)하라 *1
마른 나뭇가지에 매달린듯(조심)하고*2
나아갈 때 물러설 줄을 알아야 하고
편안할 때 위태로움을 생각하면
불편한 일이 있어도 재앙되는 일이 없을 것이니
생각이 (늘) 이에 있으라
*1(썩을 새끼를 갖고 여섯 마리 말을 다루듯 위태롭고 조심된다. -書經-)
*2(東晉의 명사들이 모여서 위태로움에 대해서 시를 짓는데, 그 중 한 사람이“백살된 노인이 높은 나무의 마른 가지에 매달려 있다”고 했다)
題金案廉詩卷後跋 惕若齋
余於癸丑秋。來自山中。友人金君敬之肯訪旅寓。謂曰。
吾之案部關東也。交遊贈行序若詩以寵榮之。惟子相燕雁。
未獲一言之贐。頗有慊乎心者。請跋卷後。袖出一軸以示。
皆一時鉅筆也。吾敬之之才之德之美。與夫諸公褒崇勉礪之義。
則已無餘蘊矣。疇復措辭於其間哉。柳嘗聞之。觀於海者。難爲水。
游於聖人之門者。難爲言。敬之生長功勳善慶之門。優游道德文章之
藪。奉使關東。觀光淮右。胸襟益軒豁。氣象增豪雄。吾儕之括目以
竢。蓋不誣矣。吾何敢蹄涔乎汪洋。蟻垤乎嵂崪。蔬糲乎瓊漿。
蘆笳乎錦瑟。匪癡卽狂。必爲咄咄。余所以將下筆。輒復止焉者此也
。敬之之請至再。聊以塞責跋。
김안렴사(金安廉使)의 시권(詩卷) 뒤에 제(題)하다 ▣
--이달충(李達衷 : 주)
--내가 계축년 가을에 산중(山中)으로부터 오니 김군 경지(金君敬之)가 선뜻 여우(旅寓)로 찾아와 말하기를ꡐ내가 관동(關東)을 안찰(按察)하게 됨에 있어 우인(友人)들이 길 떠나는 데에서(서(序))와 시(詩)를 증여하여 영예롭게 해주었는데 오직 그대와는 서로 만날 수 없어 한 마디 말의 행자(行資)를 얻지 못하여 자못 마음에 서운하였소.ꡑ하고 권후(卷後)에 발(跋)을 청하며 소매에서 한 권축(卷軸)을 꺼내 보이는데 모두 한 때의 큰 문필(文筆)들이었다. 우리 경지(敬之)의 재주와 덕의 아름다움은 제공(諸公)들이 포장(?章)하고 면려(勉勵)한 뜻에 덧붙일 만한 것이 없어 다시 그 사이에 중언부언할 것이 있겠는가? 또 일찍이 듣건대, 바다를 본 자와는 물을 말하기 어렵고 성인(聖人)의 문하에서 배운 자와는 말하기 어렵다고 한다. 경지(敬之)는 공훈(功勳)과 선경(善慶)의 가문에서 생장하였고, 도덕과 문장의 문하에서 배웠다. 관동에서 사명(使命)을 받듦에 있어 회우(淮右)를 관광(觀光)하여 흉금(胸襟)이 더욱 활달하고 기상(氣像)이 더욱 호탕할 것이므로, 우리들이 눈을 비비고 기다림은 대체로 속일 수 없는 사실이다. 그러니 내 어찌 감히 말 발굽에 괸 물로 큰 물에, 개미 둑[蟻 ?(의질)]으로 큰 산에, 푸성귀로 기름진 음식에, 노가(蘆? : 갈대로 만든 피리)로 금슬(琴瑟 : 비단으로 치장한 비파)에 끼이려 하겠는가? 이렇게 함은 어리석지 않으면 곧 미치광이로서 반드시 괴탄(怪嘆)스런 일일 것이다. 내가 장차 붓을 대려다가 곧 다시 그침도 이러해서다. 경지(敬之)의 청이 두 번씩이나 있게 되므로 말막음이나 하여 발(跋)을 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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