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렬공 어록 03 (1262년, 51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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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주회 작성일06-07-01 16:01 조회1,535회 댓글0건본문
1262년 (51세)
지어사대사(知御史臺事)
원종 4년에 지어사대사(知御史臺事)로 되었다. 이 시기에 좌승선(左承宣)으로 있던 유천우(兪千遇)는 오랫동안 정권(관리 임명권)을 잡고 있었다. 양반 관료들이 모두 그에게 아첨하지 않는 자가 없었다.
한 번은 김방경이 길 가는 도중에서 유천우를 만나 말을 탄 채로 읍례(揖禮-두 손을 약간 올리고 고개를 숙이는 인사)를 하였더니 유천우가 말하기를 “나는 조삼 봉명이므로 3품 이하의 인원들은 모두 피마(避馬-말을 딴 방향으로 돌리어 경의를 표시하는 예식)를 하는데 그대는 어찌 그런가?”라고 따지었다.
김방경이 말하기를 “그대와 나는 다 같이 3품관이요 또 조삼 봉명이므로 나는 예식대로 人事하려는 것뿐이다”라고 하였다. 두 사람이 서로 한참이나 따지고 책망하던 중에 김방경은 “시간이 많이 갔구만!”하고 드디어 결판도 내지 않고 먼저 가버렸다.
유천우는 마음속으로 이 일을 아주 언짢게 생각하고 무릇 김방경의 일가 친척으로서 벼슬살이를 하려는 자가 있으면 그때마다 구실을 붙여 벼슬을 하지 못하게 하였으나 김방경은 그런 것쯤은 염두에 두지도 아니하였다.
그 후에 진도(珍島)를 공격하게 되었을 때 김방경은 전라도에서 군대를 초모하게 되었는데 유천우의 전장(田莊-농장, 소유지)이 장서현(長沙縣-모장(茂長)에 있었다. 그런데 김방경은 그에게 피해되지 않도록 하라고 훈계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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