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무공 김시민 공신 교서 매입 과정과 아쉬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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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항용 작성일06-07-03 09:38 조회1,627회 댓글0건본문
*지난 5월 20일에 야후 블로그에 실린 충무공 김시민 장군 관련 글입니다.
출전 : http://kr.blog.yahoo.com/onekorea/99.html
김시민 장군의 선무공신교서에 대하여
5월(2006년) 19일자 중앙일보에 김시민 장군의 선무공신교서에 대한 기사가 실렸다. 이 기사를 보고 후회스런 감회가 깊어 몇자 적고자 한다.
이 공신교서는 지난해(2005년) 11월 18일부터 21일 사이에 동경고전회가 동경고서회관에서 주최한 “고전적전람대입찰회”에 “1961번 <이순신등공신교서>”란 명칭으로 출품되었던 것이다.
나는 사전에 이 정보를 알고 11월 19일 동경으로가서 23일까지 닷새 간을 체류하였고, 고서회관 전시장을 3일간 수시로 방문하며 물품을 살펴보았다.
이러한 가운데, 수년간 나의 대리인 역할을 해온 일본 굴지의 고서점 주인 S씨를 통하여 사전에 “내정가가 일화 300만엔인데, 500만엔 호가는 이미 나와 있는 것 같다”는 정보를 확인하였고, 이에 나는 “최저 500만엔에서 최고로는 700만엔 까지라도 매입해 달라”고 주문하였다.
그러나, 매우 유감스럽게도 이 공신교서는 1000만엔(중개비를 포함하면 1100만엔)의 가격에 낙찰되었고, 당시 일본의 여러 고서상들은 “의외의 가격”이라고 놀라움을 표시하였다.
원래, 이 김시민 장군의 공신교서를 소장하였던 미우라 히로유키(三浦周行)는 조선사편수회에 속해 있었는데, 지난해 11월, 나는 미우라가 조선사편수회 직원으로 조선에 있을때 김시민 장군의 자손들에게서 이 공신교서를 약취해간 문화재로 판단하였다.
따라서, 나는 이 교서를 입수할 수만 있다면, 그리하여 진주시나 국립진주박물관에 원가에라도 양도할 수 있다면, 나는 큰 영예를 경험하게 된다고 스스로 생각하였다.
그러나, 김시민 장군의 공신교서가 과당 경쟁으로 너무 높은 가격이 될 것을 우려하여 매물로 나왔다는 사실을 소문내지 않았고, 혼자서 조용히 도일하여 기회를 기다렸으나, 결국엔 매입에 실패하였다.
하지만, 전시장을 오가며 몇몇 한국인 수집가들을 마주쳤기에, 그 동안 이 공신교서가 한국으로 팔려 들어온 것으로 생각하였다. 따라서 당시에 고서적상을 통하여 이 공신교서의 향방을 추적하려다 그만 두기까지 하였다.
그리고, 19일에서야 중앙일보를 통하여 이 공신교서를 일본의 다른 고서적상이 샀다는 것을 확인하고 경악하였다.
이 교서가 <이순신등공신교서>의 명칭으로 출품되었기 때문으로 일본 고서상인이 고가에 매입한 것으로 보인다.
지난해 11월, 혼자의 힘으로 매입을 시도하였던 소견 좁은 행동이 이제는 크게 후회된다. 김시민 장군이시여! 죄송합니다.
이제라고 김시민 장군의 선무공신교서가 조국으로 귀국하여 제 자리를 찾기를 소원한다. 중앙일보 기사에게 몇몇 부분에서 정확하지 못하고 다른 부분이 있어 내가 아는 사실을 이렇게 적었다. (2006.5.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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