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릉답사자료 강릉과 문온공(척약재 김구용)- 삼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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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내영환 작성일06-07-13 10:49 조회1,705회 댓글0건본문
삼척과 문온공
111)醉題三陟客舍東上房壁
취제삼척객사동상방벽
瀟灑山川共我淸 소쇄산천공아청
樓臺到處管絃聲 루대도처관현성
若非細馬馱紅紛 약비세마차홍분 馱=실을타. 싣다...
誰謂三韓更太平 수위삼한갱태평 謂=일컬을위
111).삼척객사의 동쪽상방의 벽에 취하여 짓다
깨끗한 산천이 나와 같이 맑은데
누대 곳곳에서 관현악소리 들리네
만약 좋은말에 아름다운여인 태우지 않는다면
누가 삼한이 다시 태평하다 하겠는가?
주1. 이시는 신증동국여지승람 권44. [삼척도호부]에 실려 있다.
주2.삼한=우리나라를 달리 부르는 이름중에 하나이다.
삼척시 서쪽 오십천(五十川)이흐르는 강안(江岸)에 솟아 있는 절벽 위에 세워져 있으며, 예로부터 관동팔경(關東八景)의 하나로 유명하다. 1275년(고려 충렬왕 1) 이승휴(李承休)가 창건하였다는 설이 있다. ,현재의 건물은 1403년(조선 태종 3) 삼척부사 김효손(金孝孫)이 중창한 것이다. 그 뒤 여러 차례의 수리로 인하여 원형이 손상되어 1971년 문화재관리국이 복원하였다. 이 누각에는 어제시(御製詩)와 1662년(현종 3) 허목(許穆)이 쓴 <죽서루기(竹西樓記)>를 비롯하여 13점의 편액과 현액이 걸려 있는데, <관동제일루(關東第一樓)>라는 현판은 숙종 때의 부사 이성조(李聖肇) 가 게시한 것이다. 이 누각은 정면 7칸, 측면 2칸의 겹처마 단층 팔작지붕의 건물이다. 원래 정면 5칸, 측면 2칸이었던 것을 좌우로 1칸씩 늘린듯, 이 부분의 공포는 가운데 공포와 다르게 장식이 과다하여 조선 후기의 양식적 특징이 보이고, 또 내부 천장에 있어서 당초 측면 밖으로 나와 있던 도리의 뺄목들이 그대로 남아 있어 전에는 맞배지붕이었음을 알 수 있다. 공포는 기둥 윗몸에서 소첨차를 보의 방향으로 놓고, 이 위에 대접받침을 놓아 초제공에 놓은 첨차를 받치고, 이 첨차는 외이출목도리(外二出目道里)의 장여를 받치고 있는 주심포식(柱心包式)의 모습을 지니고 있어 특이하다. 가구(架構)는 칠량(七樑)으로 앞뒤 평주(平柱) 위에 대들보를 걸고, 이 위에 첨차와 소로로 싸여진 포작식(包作式)의 동자기둥을 세워 종량(宗樑)을 받치고 이 종량 위에 초각된 판형(板形)과 대공(臺工)을 놓아 기둥은 모두 길이가 다른데, 특히 누각 아래의 기둥과 외진주(外陣柱)는 바위 생김새에 따라 길이를 조절한 뒤 글겅이질을 하여 누각 바닥은 우물마루, 천장은 여등천장, 우물마루바닥 밖으로는 계자난간을 두르고, 기둥 사이는 벽체나 창호 없이 모두 개방하였다. 서액 중 “제일계정”은 현종 3년(1662) 부사 허목이 쓴 것이고, “죽서루”와관동제일루”는 숙종 37년 (1711) 부사 이성조가 썼으며, “해선유희지소”는헌종 3년(1837) 부사 이규헌이 쓴 것이다. 이 밖에 숙종(1674 -1720년) , 정조(1776 -1800년)와 율곡 이이(1536 -1584) 등 많은 명사들의 시액이 걸려 있다. 보물 제213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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