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 연속입체낭독 '포화 속의 영웅들(동락리 전투의 영웅들 4부)'-김재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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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발용 작성일06-07-21 18:20 조회1,558회 댓글0건본문
[김재옥 기념관]
충주시 산내면 문락리 동락초등학교에 김재옥 여교사를 기리는 기념관이 있다.
김재옥 여교사는 음성에서 태어나 충주사범학교를 수료하고 6.25의 비극이 있던 1950년 6월1일에 동락 초등학교에 교사로 발령을 받았다.
이 해 6월25일 불법 남침한 북한 군은 파죽지세로 남하하였고,춘천을 방어하다가 후퇴하여 충주에 주둔중이던 국군 6사단장(대령 김 종오)은 7월3일 밤 북괴군이 장호원까지 침입하였다는 정보를 입수하고 제7 연대장(중령 임 부택)에게 장호원을 탈환하라는 명령을 내렸다.
이때 김재옥 여교사는 피난도 가지 않고 학교를 지키고 있다가 적의 병력이 학교로 집결하자 기지를 발휘하여 적군을 안심시키고 학교에서 4km가 넘는 험준한 가엽산 에 매복 중이던 아군에게 적15사단 예하 48연대와 포병연대의 배치상황을 상세히 알려줘 아군이 적을 격파할 수 있있었다.
이날 올린 승전소식은 연전연패하여 사기가 떨어질 대로 떨어진 국군장병들에게 큰 용기와 사기를 북 돋아주는 쾌거가 되었으며 일부 소련제 무기는 소련이 전쟁에 개입했다는 증거물이 되었다.
김재옥 교사는 그후 당시의 소대장 이득주 소위와 결혼하여 군인 가족으로 생활하였다. 그러나 1963년 12월 고재봉 사건 때 저격 대상으로 오인 받아 김 여사 일가족이 참변을 당하였다.
그 후 국방부에서는 김여사의 빛나는 반공정신을 널리 알려 그를 찬양하기 위해 전쟁과 여교사라는 영화를 제작하여 전국에 상영하였다.
동락 전투 당시 박격포 대장이었던 신용관 중위가 군을 제대하여 1968년 해양 경찰대장으로 재임시 고인이 된 김 교사의 충혼을 달래기 위해 현충비를 건립하였다.
또한 1976년 7월에 충주 여교사 협의회에서 김 여사의 업적을 기록한 행적비(6.25참전기념비)를 동락초등학교 교정에 세웠다.
[영상물]
[현충탑]

충주시 산내면 문락리 동락초등학교에 김재옥 여교사를 기리는 기념관이 있다.
김재옥 여교사는 음성에서 태어나 충주사범학교를 수료하고 6.25의 비극이 있던 1950년 6월1일에 동락 초등학교에 교사로 발령을 받았다.
이 해 6월25일 불법 남침한 북한 군은 파죽지세로 남하하였고,춘천을 방어하다가 후퇴하여 충주에 주둔중이던 국군 6사단장(대령 김 종오)은 7월3일 밤 북괴군이 장호원까지 침입하였다는 정보를 입수하고 제7 연대장(중령 임 부택)에게 장호원을 탈환하라는 명령을 내렸다.
이때 김재옥 여교사는 피난도 가지 않고 학교를 지키고 있다가 적의 병력이 학교로 집결하자 기지를 발휘하여 적군을 안심시키고 학교에서 4km가 넘는 험준한 가엽산 에 매복 중이던 아군에게 적15사단 예하 48연대와 포병연대의 배치상황을 상세히 알려줘 아군이 적을 격파할 수 있있었다.
이날 올린 승전소식은 연전연패하여 사기가 떨어질 대로 떨어진 국군장병들에게 큰 용기와 사기를 북 돋아주는 쾌거가 되었으며 일부 소련제 무기는 소련이 전쟁에 개입했다는 증거물이 되었다.
김재옥 교사는 그후 당시의 소대장 이득주 소위와 결혼하여 군인 가족으로 생활하였다. 그러나 1963년 12월 고재봉 사건 때 저격 대상으로 오인 받아 김 여사 일가족이 참변을 당하였다.
그 후 국방부에서는 김여사의 빛나는 반공정신을 널리 알려 그를 찬양하기 위해 전쟁과 여교사라는 영화를 제작하여 전국에 상영하였다.
동락 전투 당시 박격포 대장이었던 신용관 중위가 군을 제대하여 1968년 해양 경찰대장으로 재임시 고인이 된 김 교사의 충혼을 달래기 위해 현충비를 건립하였다.
또한 1976년 7월에 충주 여교사 협의회에서 김 여사의 업적을 기록한 행적비(6.25참전기념비)를 동락초등학교 교정에 세웠다.
[영상물]




[현충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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