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숭의전(崇義殿)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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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영 작성일06-07-28 16:43 조회1,487회 댓글1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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숭의전(崇義殿)이야기
~ 중략 ~
가장 절통한 것이 정도전(鄭道傳)은 목은 이색(牧隱 李穡)의 문인으로서, 여말에 벼슬이 재상의 열에 이르고서도 왕검(王儉)과 저연(褚淵)의 옛일을 본 받은 일이다. 나라를 팔아 이익을 삼고 스승을 해치고 친구를 해치었다. 고려가 이미 망하였는데 또 왕씨 종실을 제거하자는 책문(策文)을 올리었고 자연도(紫燕島)에 귀양보내 둔다고 빙탁(憑托)하여 모든 왕씨들을 큰 배에 가득 태워 바다에 띄우고 몰래 헤엄치는 자를 시켜서 배 밑을 뚫어 가라앉게 하였다. 이 때 한 산승(山僧)이 왕씨를 보고서 이에 시 한 귀절을 읊었다.
“푸른 물결 위에 고요히 들리는 노(櫓) 젓는 가냘픈 소리 내 있은들 어이하리”
이제 그 가라앉은 곳에 모래와 진흙이 생겨서 바다 속에 큰 섬 하나가 되었다. 이른바 정주해(貞州海-승천포 남쪽)인데, 보련강(步輦江)아래에 있다. 태조가 왕위에 오르자 공양왕을 관동으로 옮기고, 왕씨의 태묘(太廟)를 헐고 나무 신주(神主)를 큰 배에 실어 임진강에 띄웠더니 배가 저절로 강을 거슬러 올라가 마전현(麻田縣) 강위, 절(佛寺)앞에 이르러 그치었다. 고을 사람들이 왕께 여쭈니 태조가 명하여 불상을 다른 절에 옮기도록 하고 나무 신주를 절에 안치시키고 숭의전(崇義殿)이라 이름 지었다. 왕씨를 구하여 전감(殿監)을 삼고자 하였다. 그러나 왕씨로 이름난 벼슬을 하는 자는 전에 이미 제거 되었고, 나머지는 모두 도망가고 숨어서 성명을 고쳐서 혹은 마(馬)씨가 되고, 혹은 전(全)씨가 되고, 혹은 옥(玉)씨가 되어 모두 왕(王)자를 자획 속에 감추어 썼으나 왕씨라는 것을 자인하지 아니 하였다.
그리하여 장헌조(莊憲朝-世宗)에 이르러서 비로소 왕 순례(王循禮) 한 사람을 구해서 기자전(箕子殿)에 선우(鮮于)씨로 지키게 한예에 의하여 전토와 노비를 주어서 전참봉(殿參奉)을 세습시키며 그 제사를 받들게 하였다. 
~ 이하 생략 ~  <이중환의 택리지>
초대 숭의전 부사 왕순례
허균(許筠)의 형인 허봉(許篈)이 조선 시대 야사(野史)를 묶어 편찬한 해동야언(海東野言)에 의하면 왕순례는 제우지(齊牛知)라고 변성명을 하여 공주에 숨어 살았는데 어느 날 밭을 갈다가 이웃 사람과 밭 경계를 가지고 다툼이 벌어지더니 이웃 사람이 관가에 왕씨라고 일러바침으로서 알려지게 되었다.
이 사실이 충청도 관찰사에게 알려지고 충청도 관찰사는 문종 2년(1452) 3월에 역마(驛馬)를 보내주고 나라에서는 의복ㆍ갓(笠)ㆍ신ㆍ안장 얹은 말(鞍馬)과 쌀ㆍ콩을 하사하기도 하였는데, 왕씨의 후예인 왕우지를 공주에서 찾아내자 조정에서도 바로 왕씨의 후사가 봉사하는 조건을 본격적으로 논의하여 문종 임금에게 올렸다.
문종은 의정부에서 일목요연하게 작성해서 올린 절목(節目)을 보며 흡족해 하며 예조에 그대로 하도록 명을 내려 숭의전을 짓고 봉사자를 정하게 하였다.
왕우지(왕순례)의 가계
왕우지 즉, 왕순례는 실록에 전하기를 다만 고려 현종의 후손이라고만 알려져 있고 현종으로부터 왕우지에 이르는 가계(家系)는 알려지지 않고 있다.
숭의전사(崇義殿史)에 의하면 조선왕조 초기에 왕씨들을 도륙내면서 왕씨와 차(車)씨, 그리고 유(柳)씨의 대동보(大同譜)를 해주 신광사(神光寺)에서 모두 불살라 없앴다고 하였다. 따라서 왕순례 이전의 가계에 대해서도 여러 기록을 찾아보았지만 현종의 다섯 아들(덕종, 정종, 문종, 평양공 기, 검교태사 충) 중 누구의 손인지 아직 정확하게 밝혀내지를 못했다. 다만 조선왕조실록 태조 3년(1394년) 2월의 기록을 보면 장님 이흥무가 왕씨의 명운을 점친 일과 관련하여 대간과 형조에서 여러 차례 왕씨들을 처벌하자고 여러 차례 신하들이 상소를 올려 마지못해 왕씨들을 귀양 보낼 때 왕강(王康)은 공주로, 왕격(王隔)은 안변으로, 왕승보(王承保)는 영흥으로, 왕승귀(王承貴)는 합포로 보냈다는 기록으로 보아 왕씨 후손들 일부가 공주로 흘러갔던 것만은 사실이다. 그리고 두 달 뒤인 4월 20일 중앙과 지방의 왕씨들을 대대적으로 수색하여 모두 참수(斬首)하였는데, 왕우지는 다행히 이 때에도 살아남았던 모양이다.

*연천문화원에 숭의전에 관한 자료를 요청하였더니 메일로 '숭의전 이야기'를 보내 주셨습니다.

 

댓글목록

김항용님의 댓글

profile_image 김항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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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숭의전의 전참봉(殿參奉) 왕우지와 조선초 왕씨 왕가 후손들의 수난사를 잘 읽었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