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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지리(陽地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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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서 작성일02-05-03 20:33 조회1,942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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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양지리 (陽地里)

  장대리 외곽 로터리는 청주에서 진천으로 가는 국도와 증평 쪽으로, 독립기념관 쪽으로

나있는 교차로인데 그곳에서 충남 독립기념관 방향으로 가는 길 양쪽으로 나있는 양지 바른

마을이 양지리다.

  동의 장대리, 서의 성산리, 남의 주성리, 북의 복현리로 둘러 싸여 있는데, 해발 228.7m의

목령산(鶩嶺山)에서 보면 북쪽에 위치하면서 양지가 되어 양지편, 양지촌으로도 호명되는데

본래는 청주군 북강외일면이었고 영조, 정조, 헌종조를 거치면서 마을 명칭과 장소도 여러

가지로 불리워지다가 1914년 행정개편때 주곡리의 일부를 주성리로 넘겨주고 산소동 하담

리, 목령리, 주곡리 일부를 병합하여 양지리라 명명하고 오창면에 끌어들였다.

  마을의 연혁은 조금 복잡하다. 영조대에 주곡리, 양지서리만 있었고 정조 13년에 주곡리가

주곡동리와 양지하리로 나누어지고 목령리, 하담리, 산소동리가 새로 또 생기고 헌종대에 목

령리 주곡리 양지리로 통합했다.

  그만큼 자연부락도 많다. 닭작골, 산수골, 안골, 연못거리, 윗골이 그것이다. 지명도 여러

가지가 있음을 볼 수 있다. 거담바위, 용선암, 작은서낭댕이고개 장수바위, 큰서낭댕이 고개

가 있고 운암사라는 태고종 사찰도 있다.

  이 마을의 특징은 오창면의 깃발이라 할 수 있는 목령산을 끼고 있다는 것과 송천서원을

소유하고 있는 것 그리고 수령 640년이 되는 은행나무에 얽힌 전설과 중요한 문화유적과 안

동 김씨의 집성촌을 이루면서 누대를 살아왔다는 것이다.

  목령산을 끼고 있어서 산촌 마을이고 최서단 골짜기의 산수동 마을, 도로변은 연못거리

(河潭)마을, 남서도로 건너가 닭작골 마을이며, 동남쪽은 안골 마을, 은행나무가 있는 은행정

마을이 있다.

  이 마을에는 유난히 많은 문화유산을 가지고 있다. 그것은 청풍 김씨와 전의 이씨, 안동

김씨의 묘소가 많은데 생전에 국가에 큰 업적을 남겼음을 나타내는 표적들이 있기 때문이

다.

  승정원 동부승지 김공예(金公藝, 1485-1537)의 묘갈(墓碣), 정평도호부사(定平都護府使) 이

효석(李孝碩)의 신도비, 영암군수 이사혜(李士蕙)의 묘비, 효정공(孝貞公) 이정간(李貞幹,

1360-1439) 추원단(追遠壇)의 유허비, 청풍 김씨 김윤(金潤) 집안의 충실한 노비였다던 삼월

의 비가 있는데 충청북도 문화재 자료 14호로 지정되어 있다.

  조선조 성종(成宗) 1489년, 출생한지 삼일만에 일점혈육을 남기고 산모가 죽자 노비들이

아기를 해치고 재산을 탈취한다는 것을 알고 노비 삼월이 아기를 물동이에 넣고 한양을 빠

져나와 청주 오근촌으로 피신, 성장시켜 청풍 김씨의 증시조를 위기에서 구출해 주어서 훗

날 김윤의 묘소 아래 「三月者 淸風金氏忠婢也」라고 시작되는「忠婢三月之碑」가 세워져

있다.

  그곳에는 유명한 송천서원(松泉書院)이 있다. 본래는 옥산 송천마을에 세워졌었는데 1871

년 고종 8년 대원군의 서원 철폐령에 의해 철폐되어 잊혀졌던 것을 1970년 현재의 위치에

옮겨 재건한 것으로 김사렴, 최유경, 이정간, 박광우, 이지충, 조강, 이대건, 이제신, 최석정,

이인혁, 이효석, 남구만, 박문수, 이종성, 김여량 등 15인을 배향하고 3월20일(음)에 향사(享

祀)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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