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시민 장군의 12대손 독립운동가 김구응선생 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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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대영 작성일06-09-06 04:07 조회1,631회 댓글2건본문
안녕하십니까..제학공파 28세손 김대영입니다. 김시민장군님의 15세손이면서 김구응선생님의 증손되는 사람입니다.
이번에 천안시에서 시민할아버님의 유허지 정비 사업을 추진하면서 유관순열사 생가나 독립운동가들의 생가 정비사업을 하고 있는거 같던데
저희 증조부님의 이름은 독립운동가들 이름에서 쏙 빠져 있어서 안타깝게 느껴지더군요. 증조부님이 생전에 병천에서 기독교계통의 신식학교
인 진명학교에서 훈도를 하시고 실질적으로 아우내 독립만세운동을 주도하셨고 또한 증조부님이 터전을 잡아 살고 가르치시고 독립운동을
하셨던 주무대가 시민할아버님의 유허지에서 다 가까운 곳에 위치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유관순 열사의 명성에 가려져 그 빛을 제대로 못보고
있는거 같아서 안타까운 마음에 글을 올려봅니다.
1920년 상해에서 간행된 김병조의 『한국독립운동사』(상)에도 아우내독립만세운동의 기사가 실렸다.
천안군의 병천장에서 의사 김구응이 남녀 6천4백 명을 소집하여 독립을 선언하였다. 일본 경찰이 우리 민중의 기수(旗手)를 찌르고자 하자, 기수는 맨손으로 칼날을 잡으니 유혈이 임리(淋璃)할 때에 적이 (기수의)복부를 연거푸 찔러서 치사시켰다. 이에 김구응이 적의 잔인무도함을 힐난하여 변박(辨迫)하니 적은 이치에 굴복하고 말에 궁하게 몰려 문득 그 총으로 자살코자 하더니 도리어 그 총을 김구응에게 발사하니 김구응이 순국하고 말았다.
그러나 적은 시체가 된 김구응의 머리를 때려 부수고, 시체의 사지를 칼로 난자하였다. 이윽고 김구응의 늙은 어머니가 와서 시체옆에 이르러 혼도(昏倒)하여 쓰러지며 적을 크게 꾸짖으니 적은 또한 그의 늙은 어머니를 찔러 죽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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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천안사람이다. 1919년 4월 1일 홍일선(洪鎰善), 김교선(金敎善), 한동규(韓東圭), 이순구(李旬求), 조인원(趙仁元), 유관순(柳寬順)등이 갈전면(葛田面) 아우내(並川)장날을 기하여 일으킨 독립만세시위에 참가하였다.
이날 오후 1시경 조인원이 태극기와 「대한독립」이라고 쓴 큰 깃발을 세우고 독립선언서를 낭독한 후 대한독립만세를 선창하자, 3천여명의 시위군중이 일제히 대한독립만세를 연호하니, 아우내 장터는 만세소리로 가득찼다.
시위군중이 계속 독립만세를 부르며 태극기를 흔들고 일본 헌병주재소로 접근 하자, 시위군중의 기세에 놀란 일본 군경들이 주재소에서 기총을 난사하고, 또 천안에서 불러들인 헌병과 수비대까지 가세되어 무자비하게 총검을 휘둘러대며, 계속 발포하여 유관순의 아버지 유중권(柳重權)등 19명이 현장에서 순국하고 30명
이상이 부상하는 일대 참사가 일어났다. 이날 그도 적의 흉탄에 맞아 쓰러졌는데, 일본 헌병은 잔인하게도 다시 머리에 대고 총을 쏘아 죽였고, 이 소식을 듣고 달려와서 아들의 시체를 안고 통곡하던 어머니 최씨(崔氏)마저도 잔악무도하게 창칼로 찔러 순국케 하는 만행을 서슴치 않았다.
정부에서는 그의 공을 기리어 1977년에 대통령 표창을 1991년에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출처 : '김구응(金球應) : 1887. 7. 27 ~ 1919. 4. 1)' - 네이버 지식iN)
댓글목록
김항용님의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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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항용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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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상기 김구응선생님에 대한 소개 자료를 압축, 정리하여 다시 올려 주셨으면 합니다. 본 홈 <안동김씨 소개>의 <역사적 주요인물>란에 있는 선조님들의 일반적 소개 내용을 보시고 같은 양식으로 정리해 주셨으면 합니다.
김대영님의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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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대영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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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당장은 제 일신상의 이유로 자료들을 정리할 수 없는 상황이라서 9월 중순이후에 자료 정리를 해서 9월 말경에 올려 드리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