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렬공 어록 11 (1278년, 67세)
페이지 정보
김주회 작성일06-09-09 14:23 조회1,552회 댓글0건본문
1278년 (67세)
■ 역옹패설 (낙옹비설, 이제현)
천벌을 받은 사람
韋得儒(위득유)와 盧進義(노진의)가 韓希愈(한희유)와 공적을 다투다가 서로 구타하고 元帥(원수)인 首相(수상) 金方慶(김방경)에게 고소했다. 김방경 공이 韋(위)와 盧(노) 두 사람이 바르지 않다고 판결을 내렸는데, 이것을 마음에 새겨 두었다가 金公(김공)이 한희유와 함께 큰일을 거사하고자 음모한다고 誣告(무고)하니, 達魯花赤(다루가치) ?豆(흔두)가 김공을 구속하고 중국 조정에 보고했다.
洪茶丘(홍다구)가 황제의 명령으로 慶陵(경릉, 충렬왕을 가리킴)과 함께 訊鞫(신국)하기를 청했다. 김공이 말하기를, “우리나라는 원나라를 받들기를 하늘같이 하고, 경애하기를 어버이같이 하는데, 어찌 하늘을 배반하고, 어버이에게 반역하여 스스로 멸망할 화를 취하는 사람이 있겠습니까?” 라고 했으나, 다구가 반드시 죄를 자복하게 하고자 하여 참혹하고 악독한 형벌을 가하니, 몸이 성한 곳이 없고, 기절했다가 살아나기를 여러 번이나 했다.
경릉이 차마 볼 수가 없어 말하기를, “경이 비록 自首자수하여도 天子천자는 어질고 거룩하니 장차 그 실정과 거짓을 밝혀서 죽게 버려두지는 않을 것인데 어찌 스스로 고통을 이처럼 당하는가?” 라고 하니,
공이 말하기를, “신은 몸을 졸병의 行伍(행오) 속에서 일으켜서 지위가 재상에 이르렀으니, 肝(간)과 腦(뇌)를 깨뜨려 땅에 바를지라도 나라에 보답하기에는 모자랍니다. 어찌 내 몸을 사랑하여 거짓으로 自服(자복)하여 이 나라를 저버리겠습니까?” 하고, 다구를 돌아보며 말하기를, “죽이려면 바로 죽여라. 나는 不義(불의)에 굴복하지는 않을 것이다.” 라고 하였다.
황제의 詔書(조서)가 있어서 김공과 韋(위), 魯(노)가 모두 중국의 서울로 불려가게 되었는데 위득유는 혀가 타서 中路(중로)에서 죽고, 노진의는 都城(도성)에 도착했으나 또한 병들어 죽으니, 사람들이 천벌을 받았다고 말한다.
■ 《고려사》 제104권 - 열전 제17 >
홍다구(茶丘)는 자기의 조국인 고려에 대하여 오랜 악감을 품은 자였으므로 무슨 짬이라도 있는가 하고 엿보고 있다가 화를 전가시킬 궁리를 하고 있었는데 김방경의 사건을 듣고는 중서성에다 자기를 고려에 보내 문초하도록 할 것을 요청하였다.
또 흔도 역시 이보다 앞서 그의 아들 길대를 보내 위득유의 말을 황제에게 보고하도록 한 바 있었으므로 황제는 글을 보내 국왕과 공주가 함께 문초에 참가하라고 지시하였다.
이에 왕이 흔도, 홍다구와 함께 다시 김방경과 김흔을 문초하게 되었다. 홍다구는 쇠줄로 김방경의 목을 둘러 죄고 못이라도 박을 듯이 하였으며 또 형장 가진 자를 꾸짖어 그의 머리를 치게 하였으며 종일토록 알몸뚱이로 세워 놓았다. 날씨는 극히 추워서 그의 피부는 얼어서 먹을 뿌려 놓은 듯하였다.
왕이 홍다구에게 말하기를“먼저 번에 내가 흔도와 함께 이미 문초를 다 끝내었는데 하필 다시 문초할 필요가 있는가?”라고 하였다. 그러나 홍다구는 듣지 아니 하였다.
때마침 낭가대가 전라도에서 돌아왔다. 왕이 그들과 함께 문초하자고 하였더니 낭가대가 말하기를“내가 곧 조정에로 돌아가겠는데 황제께서 만일 고려 일에 관하여 물으면 응당 내가 보고 들은 대로 말하겠다”라고 하였다. 그래서 홍다구도 상당히 휘어 들었었다.
그 후에 다시 문초하니 김방경이 말하기를“우리 나라가 귀국을 받들기를 하늘을 받들 듯이 하고 귀국을 사랑하기를 친어버이를 사랑하듯이 하는데 어찌 하늘과 어버이를 배반하고 거슬러 스스로 자신의 멸망을 초래하는 일을 하겠는가? 나는 차라리 원통하게 죽을지언정 감히 무근거한 고발을 승인하지는 않겠다”라고 하였다.
홍다구는 반드시 그를 자복시키려고 모진 고문을 가하였기 때문에 몸뚱이가 온전한 데라곤 없었으며 죽어 넘어졌다가 다시 살아나기를 몇 번이나 거듭하였다.
홍다구는 왕의 측근자들을 가만히 달래기를“지금 한창 아주 춥고 비, 눈이 그치지 않는 때여서 왕도 역시 심문에 피로하였다. 만일 김방경으로 하여금 죄를 인정하게 한다면 그 한 사람에게만 벌을 줄 것이며 법에 따라 다만 귀양을 보내게만 될 것이니 고려를 위해서도 더 이상 무슨 일이 있겠는가?”라고 하였다.
왕이 홍다구의 말을 믿기도 하고 또 고문받는 정상을 차마 볼 수가 없어서 김방경에게 이르기를“황제가 어질고 거룩하신 분이니 장차 그대의 실정을 밝혀주고 죽이지는 아니 할 것인데 어째서 그런 고통을 받고 있느냐?”라고 한즉
김방경이 대답하기를“왕은 어떻게 이런 말을 합니까? 저는 병사의 몸으로 출세하여 직위가 재상에까지 이르렀으니 저의 간과 골이 땅바닥에 구르게 된다 하더라도 나라의 은혜를 다 갚지 못하겠거늘 어찌 일신을 아끼어 근거 없는 죄명을 둘러쓰고 국가를 배반하겠습니까?”라고 하면서 홍다구를 돌아다보며“나를 죽이려거든 죽여라! 나는 부당한 일을 가지고 굴복하지는 않겠다!”라고 하였다.
그리하여 드디어 갑옷을 감추어 두었다는 죄를 논하여 김방경을 대청도에, 김흔을 백령도(白翎島)에 귀양 보내고 나머지는 모두 석방하였다. 김방경이 귀양 가게 되자 나라 사람들이 모두 그가 가는 길을 막고 울면서 그를 보내었다.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