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대가 안동김씨 집안에서 버림 받고 살고 있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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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현섭(작은돌) 작성일06-09-23 01:50 조회1,573회 댓글2건본문
오래전 이야기 지만 저는 분명 제학공파 22대손으로 알고 있고
지금도 5대조 조부님(일징) 묘소를 모시고 있습니다.
오래된 이야기지만 인동장씨의 품안에서 살아왔고(1851년 11월 29일생)
지금도 저희 아버님(34년 2월 15일생 안동 김씨 본명 창년) 부터 키워온 그분인동장씨 천만)을
높이 평가하고 고마움에
선소를 모시고 있습니다.
제가 중학교 2학년때 저에 피를 안 사실 때문에 정신적인 고통을 엄청 받고 지금 까지 견디어 왔습니다.
성은 안동김씨인데 왜 인동 장씨 장손이였나를
요즘 법정 해석도 원치 않습니다.
법이 원한다면 바로 준비하고 있습니다.
피는 못속인다고 요즘도 안동김씨 어느손이냐 묻든다면 저는 재학공파 22대 손이라 말 합니다.
저에 큰집(5대손 부터 남자는 오직 하나) 그러다 보니 형제 처럼 오랬동안 같이 살아 온것 갔더군요.
안동김씨에 호적은 없습니다. 단 족보에는 있습니다.
사연은 다음 글로 이어지겠습니다.
저의 아버님 부터는 인동 장씨 호적에 있구요.
안동김씨 족보에는 아버님 부터 우리가족(아이까지) 삼대 21, 22, 23.대 까지
대방동에 사시던 김 영,(큰집)당숙 되시는 분이 오래전에 재학공파 족보(제가 알기론 수필원본)에
올려 주셨지만 어린 저는 찢었습니다.
이후 인쇄본에 저희 가족도 올려 있더군요,
부모를 탓하며 아니 씨를 탓하며
요즘 저에 소망은 원래의 씨와 호적을 바꾸는 것이 급선무 입니다.
큰집 은 모두 미국에 살고 있습니다.
큰집 당숙께서 저에게 안동김씨 충렬공 22대손 이라며 꼭 손을 잡고 미국으로 떠나시며 족보 필사본을 저에게
주시며 선소를 찾아 모시라며 떠나시면서 눈물을 흘리실때 그때만해도
저는 그저 그런가 했는데 천안시 병첨 구도리 선소를 본뒤 십년쩨 말없이 모시고 있습니다.
종친 여러분 저희 3 대에게 본성을 찾게 도와 주십시요,
양천구 신정4동 토밖이 모든 분들은 저희 가정에 대하여 너무나 잘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옛 법은 상대쪽 부모가 인정하여야 모든것이 해결 된다고 하지만
최근 법이 개정 되면 적극 도와 주시기 바랍니다.
안동김씨 종친 여러분 건강 하시기 바랍니다.
(약주 조금만 하시고요,)
작품 글 :
그리운 사람을 찾아 떠나는 길
에덴을 찾아서
3종경기
마음밭에 묻어둔 세상
철인 그네들에 이야기
별명 철인 3종경기에서는 작은돌
댓글목록
김항용님의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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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항용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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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본 홈 방문을 환영합니다.
님의 안타까운 사연을 잘 읽었습니다. 그동안 다른 성을 쓰고 있던 자신 때문에 얼마나 가슴이 아프셨습니까. 법에 호소하여 본성을 되찾으려는 님의 간절한 소망에 저 또한 가슴이 메입니다.
우선 천안시 병천에 선조님들이 계시다니 일단 제학공파의 가능성은 있다고 봅니다.
그런데 제학공파의 후손들이 양천구 신정4동에 집성촌을 이루고 사셨다는 이야기는 처음 듣습니다. 그리고 조부님, 아버님의 함자가 우리의 전통 항렬자를 따르지 않고 있으니 좀더 확인 과정이 필요하다고 봅니다.
우선 님이 소장하고 계신 족보 필사본을 복사하여 제게 한 부 보내 주시기 바랍니다.
(주소 : 서울시 강남구 개포동 주공아파트 604동 1504호. 김항용. 우)135-993. 전화:011-892-5273)
그리고 님께서 원하시는 바대로 모든 일이 잘 이루어 질 수 있도록 제 힘이 닿는데까지 도와 드리겠습니다.
힘을 내십시오.
감사합니다.
장현섭(작은돌)님의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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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현섭(작은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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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윗 글 내용중 제 출신 년도가 잘못 되었구요. (1951년생)
신정4동에 집성촌이 아니고 신정4동(옛 은행정)에 오랫동안 거주한
토박이를 이야기 한 것입니다.
김항용님께 사본을 곧 보내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관심을 주셔서 대단히 감사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