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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렬공 어록 12 (1281년, 70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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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주회 작성일06-10-08 12:39 조회1,397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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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81년


   그 다음날 다시 싸워 패적(敗績)하고 군중(軍中)에 또 크게 질병이 나서 죽은 자가 무릇 3,000여 명이라, 흔도 홍다구 등이 여러 번 싸워 불리하였고 또 범문호(范文虎)가 기일(期日)을 지나도 오지 않음으로써 회군(回軍)하고자 의론하기를, “성지(聖旨)가 강남군(江南軍)과 동로군(東路軍)이 반드시 이 달 16일에 일기도(一岐島)에서 만나게 하였는데 지금 남군(南軍)이 오지 않고 아군(我軍)이 먼저 와서 여러 번 싸웠으나 전선(戰船)이 썩고 양식이 다 하였으니 이를 장차 어찌하리오.” 하니 김방경이 묵연(默然)하였다.

   10여일에 또 의론이 처음같거늘 김방경이 말하기를, “성지(聖旨)를 받들고 3개월 분량의 양식을 가지고 왔으니 이제 한달 양식이 아직 있는지라 남군(南軍)이 오기를 기다려 합공(合攻)하면 이를 멸할 것이다.” 하니 제장(諸將)이 감히 다시 말하지 못하였다. 얼마 후에 범문호(范文虎)가 만군(蠻軍) 10여만을 거느리고 오니 배가 무릇 9,000소()였다.

   8월에 대풍(大風)을 만나 만군(蠻軍)이 다 빠져 죽으니 시체가 조수(潮水)를 따라 포구(浦口)에 들어와 포구(浦口)가 이 때문에 막혀 밟고 다니게 되는지라 드디어 환군(還軍)하였다.



■ 동문선 제20권 칠언절구(七言絶句)

복주(福州) 김방경(金方慶)


산과 물은 모두 옛 눈에 보던 푸르름인데

/ 山水無非舊眼靑

누대도 또한 바로 소년 때 정일러라

/ 樓臺亦是少年情

기특하여라 고국에는 옛 풍속 남아서

/ 可憐故國遺風在

악기와 노래를 모두 거두어 모아 내 걸음을 뒤로하네

/ 收拾絃歌慰我行


[주 C-001] 복주(福州) : “신사년(辛巳年)에 동으로 일본을 치다가 군사를 돌이킬 때 복주에 이르다.”라는 제주(題註)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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