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敬順大王 02 (경순대왕陵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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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주회 작성일02-05-08 02:41 조회1,614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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敬順大王 02 (경순대왕陵誌)





2002년 5월 5일, 경기 연천 장남면 고랑포리에 있는 경순왕릉에서 [경순대왕 춘향대제]가 있었습니다.



주최측에서 배부한 책자에 새로운 내용이 다수 있어 행사에 참석치 못한 분들을 위하여 연재하여 소개하고자 합니다.







아래에 소개하는 [경순대왕陵誌] 중에서 주요 내용은 다음과 같습니다.





- 고려경종3년 (서기 978) 음력 4월4일에 대왕께서 승하하시자, 이곳에 大王禮로서 因山하여 陵을 조성하였으나,



임진왜란 이후에 실전되었던 것을 조선조 영조3년 (서기 1727) 에 후손(안동인) 金石+宏(김굉, ★익원공파)이 [敬順大王藏之] 라는 6자가 각자된 誌石을 발견하고 --- 수안김씨 종친회장 김수선 이라는 분의 말씀에 의하면 김굉은 좌정승(=김사형)의 8대손, 영의정(=김수동)의 4대손이라 함



영조 23년 (서기 1747)에 영역을 찾아내어 영조대왕께 修治疏(수치소)를 올렸다.







- 陵碑는 단기 4320년 (서기 1987)에 연천군 주관으로 陵域을 정화하면서,



실전되었던 因山때의 舊碑를 찾아서 비각 안에 모시고,



영조대왕때에 세웠던 비를 능묘 앞에 세웠다.







- 그 옛날에는 대왕릉의 주변 10리가 다 능역이었다고 전해오나,



지금은 약 4만5천평 정도로 추산되는 陵所 일대의 산림이 樹林없는 붉은 산으로 남아 있을 뿐이며,



그 나마도 능묘 주위의 1,000평 정도만을 분할하여 극도로 축소되 사적지로 지정하고 있다.



그리고 이 1,000평 정도의 능묘 이외의 산림은 현재 국유림으로 보존되어 있는 실정이다.









▣ 경순대왕 陵誌

--- 金明壽 (숭실대 명예교수, 신라김씨 연합대종원 부총재)





신라 제56대 경순대왕의 능은 경기도 장단면 남8리 (현 경기도 연천군 고랑포리) 聖居山 줄기의 花藏山에 위치하고 있다.



이곳 화장산은 동쪽에는 연천강과 월봉산이 있고, 서쪽에는 성거산이 있으며, 남쪽으로는 임진강이 흐르고, 북쪽에는 金陵坡(금릉파)가 있는 지역으로 성거산의 한 줄기가 서남쪽으로 흘러내린 곳에 자리잡고 있다.



地師들의 말에 의하면 일명 花藏龍이라고도 부르는 이곳은 八百蓮花格이요 금계포란형국으로 천하의 명당이라고 한다.







고려경종3년 (서기 978) 음력 4월4일에 대왕께서 승하하시자, 이곳에 大王禮로서 因山하여 陵을 조성하였으나,



임진왜란 이후에 실전되었던 것을 조선조 영조3년 (서기 1727) 에 후손(안동인) 金石+宏(김굉, ★익원공파)이 [敬順大王藏之] 라는 6자가 각자된 誌石을 발견하고 영조 23년 (서기 1747)에 영역을 찾아내어 영조대왕께 修治疏(수치소)를 올렸다.



영조대왕께서는 金聖運(강원,충청감사), 金應豪(첨정) 등으로 하여금 陵墓(능묘)를 봉축하게 하고, 장단부사 沈鳳徵(심봉징)으로 하여금 致祭(치제)하게 하였으며, 그로부터 장단부에서는 매년 3월1일과 10월1일에 춘추享祀(향사)를 올리고, 官軍으로 하여금 수호하도록 하였었다.







경순대왕릉은 서기 1975년에 문화재 사적 제224호로 지정되어 국가에서 경내 일원을 보수하고 곡장과 일부석물 등을 개수하였으며,



陵碑는 단기 4320년 (서기 1987)에 연천군 주관으로 陵域을 정화하면서, 실전되었던 因山때의 舊碑를 찾아서 비각 안에 모시고, 영조대왕때에 세웠던 비를 능묘 앞에 세웠다. 이때 비각과 재사 1동을 신축하여 삭막하던 능역에 새로운 운치를 조성한 것은 매우 다행한 일이다.







그 옛날에는 대왕릉의 주변 10리가 다 능역이었다고 전해오나, 지금은 약 4만5천평 정도로 추산되는 陵所 일대의 산림이 樹林없는 붉은 산으로 남아 있을 뿐이며, 그 나마도 능묘 주위의 1,000평 정도만을 분할하여 극도로 축소되 사적지로 지정하고 있다. 그리고 이 1,000평 정도의 능묘 이외의 산림은 현재 국유림으로 보존되어 있는 실정이다.



이 지역은 지금 군의 작전지역에 속하는 최전방지대이기 때문에 군의 허가 없이는 출입할 수가 없다.









*[陵誌] 郎讀에 이어 몇가지 참고 말씀을 드리고자 합니다.



◇ 축소지정된 사적지와 주변산지

원래 경순대왕 능역은 상당히 범위가 넓었고, 지금 국유림으로 되어 있는 능침 주변의 산지 4만5천평도 또한 능역의 일부라고 생각되는데, 이 중에서 천평만을 분리해서 사적지로 지정하였기 때문에, 이 국유림 4만5천평이 언제 어떻게 처분될지 불가측이라 심히 우려되는 바입니다.



장차 능역의 수치 또는 확장이 필요할 때에 대비하여, 이 국유림을 능역에 편입하도록 정부에 건의해야 할 것으로 생각됩니다.





◇ 다음으로 이곳 능역은 지금 민족의 비극을 안고 있는 휴전선 남방 군사분계선에 접속되어 있으며, 능묘의 뒷산마루 산줄기가 마치 병풍을 두른 듯이 선이 그어져 있습니다.



다시 말하면 군사분계선이 능역의 일부를 침범하고 있고, 능역이 남쪽 군사분계선에 걸치어 있는 것입니다. 이것은 어찌 생각하면 결코 우연한 일이 아니고, 민족의 참화를 막으려고 하시는 대왕의 聖念과 역사적 교훈이 여기에 깃들여 있는 것이 아닐까 생각됩니다.



일찍이 백성을 지극히 아끼고 사랑하셔서 왕관을 헌신짝처럼 내버리신 대왕이 군사분계선 상에서 남북을 바라 보시면서 북한에 대하여는 무고한 인민들을 제물로 하는 무력통일의 망상을 버리라 하시고, 남한에 대하여는 북한의 동포들을 진정한 골육지정으로 대하여 남북이 반드시 평화통일을 이룩하도록 하라는 무언의 역사적 교훈을 주시는 것만 같습니다.









▣ 金在源 -

▣ 金勃鏞 - 감사합니다...

▣ 김태서 - 경순대왕의 교훈에 감탄 하였습니다.

▣ 김항용 -

▣ 김정중 -

▣ 김재익 -

▣ 김영환 -

▣ 김은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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