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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동운부군옥(大東韻府群玉)》---익원공 김사형(金士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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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영 작성일06-10-18 17:54 조회1,334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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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동운부군옥(大東韻府群玉)》---익원공 김사형(金士衡)

[彊] 강건하다(健)라는 뜻이고 또 강(强)으로도 쓴다. 매우 건장한 것이다.

[굴강(堀彊)]: 조석간(趙石磵)은 병을 핑계로 광주(廣州)의 시골집에 살면서 이름과 자취를 감추고 벼슬 하지 않았다. 하루는 상락(上洛) 김사형(金士衡)이 방문하여 한번 벼슬할  것을 권하였다. 석간이 베로 만든 적삼을 입고 갈대로 만든 삿갓을 쓰고는 길게 읍하면서 한 마디도 대꾸를 하지 않았다. 상락(上洛)이 말하기를 “고집도 세도다 이 늙은이여! 하지만 옛날 모습을 어찌 할것인가?”라 하고는 수레를 타고 돌아와 버렸다. <徐居正 筆苑雜記>

조석간(趙石磵): 석간은 조운흘(趙云屹 1332~1404)의호, 고려말 조선초의 문신, 본관은 풍양(豊壤) 평장사 맹(孟)의 31대손이다. 이인복(李仁復)의 문인이며 1357년(공민왕6)에 문과에 급제하여 안동서기(安東書記)가 되고 1390년(공양왕2)에는 계림부윤(鷄林府尹)이 되었다. 1392년 조선개국후 강릉부사로제수 되었으나 칭병으로 사직하고 광주로 내려 갔다가 다시 검교정당문학(檢校政堂文學)이 되었다. 그뒤 관직을 떠나 여생을 보내다가 스스로 묘지를 짓고 73세에 죽었다.

김사형(金士衡): 1333 ~ 1407 고려말 조선초의 문신, 본관은 안동(安東), 자는 평보(平甫) 호는 낙포(洛圃), 고조는 방경(方慶), 할아버지는영후(永煦), 아버지는 부지밀직사 천이다. 개국공신 중에서는 배극렴(裵克廉) 다음으로 지위가 높았던 고려의 원로구신이며, 가문이 귀현(貴顯)하였고 마음이 청고하여 이성계가 아꼈다고 한다. 조준과 함께 8년간 재상의 지위에 있었으나 말을 신중히 하고 스스로 삼가며 분수를 지켜 적을 가지지 않았다. 시호는 익원(翼元)이다. 


[衡] 가로 평평하다.

[김사형(金士衡)]: 자는 평보(平甫), 본관은 안동(安東), 상락후(上洛侯) 김영후(金永煦)의 손자이다. 우왕(禑王)때 조준(趙浚)등과 함께 간관(諫官)으로 있었는데 그 당시 사람들이 사람을 얻었다고 일컬었다. 조선 태조(太祖)를 도와 개국공신(開國功臣)이 되었고 벼슬은 좌의정(左議政)에 이르렀다. 시호는 익원(翼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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