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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담 김시양 연구(석사학위 논문)-본론 (19), 교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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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항용 작성일06-11-09 10:41 조회1,496회 댓글1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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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시는 부마의 위치에 있으면서도 검소하게 사는 친구 신익성의 모습을 보고 게에 비유한 시이다. 이 시에서 梁甫吟이란 악부의 하나로서 사람이 죽으면 梁甫山에 장례 지냈으므로 輓歌의 의미로 사용되었다. 신익성은 게구멍 같은 작은 집에 살면서도 자신을 낮추는 지혜로움과 근심 속에서도 증자와 제갈량이 즐겨 불렀던 梁甫吟을 읊으며 즐거운 마음으로 생활하는 친구의 삶을 찬양하였다. 하담은 시를 주고받으며 절친하게 지냈던 친구 사이였으면서도 申翊聖이 아버지를 위해 『象村集』을 간행하여 배포하게 되었을 때 잘못된 부분을 지적했던 강직한 性品이였다.

그는 친한 친구일수록 잘못된 점은 지적해서 고쳐주는 성격이었다. 漢文四大家 月, 象, 谿, 澤 중에서 두 사람은 절친한 친구였으며, 象村은 친구 申翊聖의 아버지였다. 當代의 文章家로 한 세상을 견줄만한 사람이 없었다고 말하는 許筠과도 막역한 친구 사이였다. 荷潭이 북경의 서장관으로 갈 때 金時讓을 전송하며 보낸 글이 『성소부부고』에 전한다. 중간 부분부터 옮겨보면 다음과 같다.

   

   근세의 사대부들이 법을 지키기에 조심하지 않는 것은 아니지만 세상의 의논이 너무나도 좁아 터럭만한 과실도 가리기 어려워서 불행히 법에 얽혀 든 자도 있는가 하면 또한 빠져 나가는 자도 많았으니, 아, 어떻게 상하가 법을 바르게 지키고 아부하지 않기를 선릉시절과 같이 할 수 있겠는가? 나의 벗 자중은 천하의 선비다. (중략) 나는 子中의 깊은 도량에 대해 한 번 쓰이고 버림받는 사이에서 기뻐하거나 슬퍼하지 않았음을 아니 보통 사람보다 뛰어남이 이와 같았다. 銓衡의 推擇과 주상의 발탁해 씀이 어찌 그 봄이 없었겠는가? 대개 위아래가 법을 유지하고 바름을 지켜, 사정에 끌리지 않는 것이 宣陵시절과 같고자 함이다. 子中은 포부가 본디 무거우니 또 즐겨 손순히 참으며 말없이 구차히 넘겨서 조정의 선발한 바람을 저버리겠는가?  그 지경이라면 권공이 또한 사람들이 너무 적적하다고 비웃을 것이니, 子中은 힘쓸진저. 지금 이 행차에 있어 상사는 후덕하고 달식하여 족히 儒雅로서 鎭撫할 만하며 부사 역시 재능으로 자부하는 처지니, 子中의 풍격과 강개로써 협심하여 서로 도와 사신의 직책의 성공을 꾀한다면 오나라 季札이 주나라에 간 것과 鄭나라 子産이 聘問한 것과 時代는 다르나 일만은 똑같이 들어맞을 수 있을 것이니, 위대하지 아니한가? 子中은 힘쓸지어다. 그 행차에 있어 子中이 한 말로 보내줄 것을 요청하기로, 이를 써주며 경계하는 바이다.1)


許筠은 자신의 친구인 金時讓을 천하의 선비라고 극찬했다. 지금 현실이 宣陵時節 같지는 않지만 부디 北京에 가서 많이 듣고 많이 기억해서 見聞을 넓히고 돌아오라고 친구로서의 友情이 담긴 便紙를 보냈다.


1) 許筠,『惺所覆瓿稿』 第五卷,  文部二,  序,「北京金子中」. “近世薦紳大夫, 非不兢兢守法, 而世議甚隘, 毛疵難掩, 不幸有絓於憲者, 亦多網漏, 嗚呼安得上下持法, 守正不阿, 如宣陵日耶, 吾友金君子中, 天下士也. ” 중략 “不佞又以知子中之道量, 不欣戚於一用捨間者, 出於恒人如是也, 銓衡之推擇, 當宁之拔用, 豈無其見歟, 蓋欲使上下持法, 正不阿私如宣陵日, 子中抱負素重, 亦肯巽順淟涊, 循黙苟過, 以孤朝廷遴簡之望耶, 不然則權公亦笑人寂寂也, 子中勉旃哉, 今玆之行, 上价厚德達, 足以雅鎭, 而副价亦材能自喜, 以子中之風力則介協心相濟, 以圖使職, 則其於吳札之觀周, 鄭僑之致聘, 可以異代而同符, 不亦韙耶, 子中勉之哉, 於其行也.子中要一言以贐, 書此以規之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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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허균과 하담공과의 교류를 보여주는 중요한 자료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