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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온공 친필 암각문-청원정에 얽힌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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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내영환 작성일06-11-13 11:47 조회1,429회 댓글1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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척약재 친필 암각문-청원정에 얽힌 이야기

 

 

경상북도 예천군 용궁면 가야리에는 이곳 龍宮全씨의 중시조이신 菊波 全元發 선생을 모신

 

서원이 있다. 국파 전원발 선생은 고려말에 원나라에 들어가 괴과에 장원급제하여 원나라 벼슬이

 

영록대부 병부상서 집현전태학사에 이르렀던 분으로 당시 원나라에서 과거에 합격하기란 그야말로

 

 하늘에 별따기 였으며 더욱이 몽고인이 아니면 벼슬하기가 도저히 불가능하였던 시절이었고

 

아룰러 병권을 담당하기란 몽고인도 어려운 시절이었다.

 

그러나 우리 고려에서는 가정 이곡선생, 그리고 그의 아들인 목은 이색선생이 원나라에서 과거에

 

합격하여 벼슬을 하시었으니 자랑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러나 이곡선생이나 이색선생은

 

널리 알려졌으나 전원발 선생은 많이 알려지지 않아 안타까움이 든다.

 

전원발 선생과 척약재 김구용 선조와는 각별한 사이었으며, 더욱이 우리 안동김문의 장손은

方慶-- 資- 爲- 得男- 精으로 이어오다 金精공은 척약재의 아우인 金齊顔공과 더불어 신돈을

제거하려다 실패하여 김정공의 후손은 수안김씨로 , 김제안공의 후손은 사천김씨로 분적하였다.

 

바로 안동김문의 장손인 김정공의 배위가 국파 전원발선생의 따님이었다.

 

  소천서원은 낙동강의 상류인 성화천이 휘돌아나가는 경치 좋은곳에 자리잡고 있는데 그중에서도

 

아름답기로는 청원정이라는 정자가 으뜸이다. 청원정 정자는 임란시 소실되고, 그 후 복원하였는데,

 

정자의 편액은 원래 척약재 김구용 선조께서 쓰신 것이어서 이를 다시 복원하려 하였으나 원본을

 

잃어버렸고, 또 척약재 유묵이 가야리 창벽위에 새겨저 있었으나 떨어저 나가 강가운데로 묻히어

 

버렸으므로 도저히 고증할길이 없었다.

 

그러던 중에 강속에서 자주빛이 밤마다 비추어서 본토사람들이 이상히 여겨 강속을 샅샅히

 

살펴보니 커다란 돌위에 글씨가 새겨저 있는데 그 글씨에서 빛이 나오는 것을 확인하고 건져

 

올려서 다시 절벽위에 올려놓았다. 그리고 문중에서 이는 선조의 도움으로 청원정의 현판을

 

다시 척약재 필적으로 하라는 계시라 여기고 모사하여 청원정의 편액으로 달았다고 한다.

  

댓글목록

김항용님의 댓글

profile_image 김항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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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감사합니다. 홈 김구용 선조님란에 올리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