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문학기행 / 황진이] (3)영원한 정인, 서화담 선생을 유혹하고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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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내영환 작성일06-11-28 16:11 조회2,323회 댓글0건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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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진이는 뛰어난 재능과 발랄한 개성을 자랑하며 여러 명사들과 어울리고 그들을 가지고 놀았다고 할 정도로 만나고 싶으면 만났고, 싫어지면 헤어졌다. 이런 황진이는 끝내 당대의 대학자로 도학이 높은 화담(花潭) 서경덕(徐敬德, 1489-1546)에게까지 손을 뻗쳤다. 화담 선생은 역학 경서에 능통했으나 산 속에 묻혀 지내는 미추를 초월한 노인이었다. 평생 과거나 벼슬에 뜻을 두지 않았지만 그의 제자들 중에는 높은 고관을 지낸 벼슬아치도 많았다. 화담선생의 명망은 널리 알려져 있었다. 황진이는 자존심도 강하여 수도에 정진하여 생불(生佛)이라 불리던 천마산 지족암의 지족선사(知足禪師)를 유혹하여 파계시키기도 하였다. “지족선사는 30년 동안 면벽(面壁)했으나 나로 인해 무너졌다.”는 말을 살펴보면, 그녀는 양심의 가책이 없었고, 이로 인하여 오히려 세인의 관용을 받게 되는 처지가 되었음을 알 수 있다. 이렇게 자신만만한 황진이의 끈질긴 유혹에도 서경덕은 중심을 잃지 않았다. 오히려 서경덕은 그녀를 감화시켜 사제관계를 맺었다. 다음은 이러한 내용을 담은 유명한 이야기이다. 송도의 진이는 여자치고는 뜻이 크고 기개가 높아 사내대장부에 못지않았다. 진이는 일찍이 화담처사 서경덕이 고매하여 벼슬에 뜻이 없으며 학문의 깊이와 정통함이 뛰어났다는 말을 듣고, 한 번 시험해 보고자 선비처럼 끈으로 허리를 졸라매고 ≪대학(大學)≫을 옆에 끼고 서경덕을 찾아갔다. “첩이 듣자오니, ≪예기(禮記)≫에 말하기를, ‘남자는 가죽띠를 두르고 여자는 실끈으로 띠를 한다.’고 합니다. 첩도 학문에 뜻이 있어 실로 띠를 두르고 찾아왔습니다.” 선생은 웃고 받아들여 가르쳤다. 진이는 밤만 되면 몸을 가까이 기대는 등 교태를 부리면서, 마치 옛날 마등가의 음탕한 여인이 아란을 유혹하듯이 며칠을 두고 수작을 걸어 보았다. 그러나 서화담은 끝내 동요하지 않았다. 결국 황진이는 서경덕의 유혹에만 실패하였다. 왜냐하면 다른 많은 남자들이 풍류객이었던데 비하여 서화담은 학문에 정진한 석학으로 훌륭한 인품과 도덕성과 학덕을 가진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따라서 황진이는 결코 범상한 남정내가 아니었던 화담선생을 다시 보게 되었고, 그를 유일하게 선비상을 구가한 인물로 여기게 되었다. 진이는 서경덕을 자신의 스승으로 삼아 사숙(私淑 : 직접 가르침을 받지는 않았으나 마음속으로 그 사람을 본받아서 도나 학문을 닦음)하여 거문고와 술, 안 등을 가지고 그를 자주 찾아가서 당시(唐詩)를 배우고 익혔다. 결과적으로 황진이는 화담과의 만남을 통하여 인생의 새로운 깊이와 문장, 그리고 학문의 깊이를 배우게 되었다. 황진이는 화담에게서 인간의 참모습, 우주의 진리 등을 배우고 깨달았다. 이러한 만남은 황진이의 생애로서는 일대 전환점이었다. 하지만 이러한 기쁨도 오래 가지 않았다. 자신의 스승인 화담 선생이 숨을 거둔 것이다. 진이는 님을 먼저 보내고 난 뒤, 비탄에 빠진 자신의 감정을 읊조리고 있다. 산(山)은 옛산이로되 물은 옛물이 안이로다. 주야(晝夜)에 흐르거든 옛물이 이실소냐. 인걸(人傑)도 물과 같도다 가고 안이 오노매라.(인터넷에서 깨지는 글자 현대어로 바꿈) (산은 옛 산 그대로인데 물은 옛날 그대로의 물이 아니로다. 밤낮으로 흘러가고 있으니 옛날 물이 남아 있을쏘냐? 뛰어난 사람도 물과 같아서 한번 가면 다시는 오지 않는구나) 이 시조는 변함이 없는 산과 끊임없이 흘러가는 물과의 대조, 흐르는 물과 사라지는 인간과의 대조를 통하여 인생에 대한 허무함과 철학적 의미를 돌아보게 하고 있다. 그중에서도 정인(情人) 서화담에 대한 그리움이 인생무상이라는 인간의 보편적 감정으로 확산되는 점이 이채롭다. 이는 돌아오지 않는 무정한 임을 그리워하는 애련의 노래로 애상적 심회를 진솔하게 형상화한 작품이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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