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敬順大王 03 (경순대왕影幀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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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주회 작성일02-05-10 06:44 조회1,633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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敬順大王 03 (경순대왕影幀記)





2002년 5월 5일, 경기 연천 장남면 고랑포리에 있는 경순왕릉에서 [경순대왕 춘향대제]가 있었습니다.



주최측에서 배부한 책자에 새로운 내용이 다수 있어 행사에 참석치 못한 분들을 위하여 연재하여 소개하고자 합니다.







우리 홈페이지 게시판에 소개되지 않은 경순왕 영정으로 다음 두가지 새로운 영정이 있습니다.



3. 숭은전 봉안 (숭은전 : 경북 영주시 영주3동 101 철?산 기슭)

흑백 대형 1본, 1958년에 숭혜전 봉안 영정을 모사한 것



4. 숭인전 봉안 (숭인전 : 강원도 평창군 도암면 호명리 49)

흑백 대형 1본, 1924년에 숭혜전 봉안 영정을 모사한 것











▣ 경순대왕의 영정기

---金春植 (광운대 명예교수, 金富大王=마의태자 숭모회 대표)





聖祖 김알지 대보공 이후 경순대왕에 이르는 역대 조상님들 중에서, 예로부터 그 尊影(影幀)이 전해오는 것은 오직 경순대왕 뿐이시다.

근래에 경주 통일전에 신라 제29대 태종무열대왕과 제30대 문무대왕의 존영을 모시게 된 것은 1977년 이래의 일이다.







경순대왕의 영정에 대한 기록은

1785년 (정조9년 乙巳)에 후손 대광보국 승록대부 ???는 유아 선조이신 경순대왕의 화상을 전해 계림(경주)에 모시었는데, 임진년(1592)의 변란으로 殿宇(전우)와 함께 모두 불에 타버렸다.





인조때에 후손 荷潭공 時讓(1581-1643, ★제학공파)이 영남에 안찰사로 있을 때 옛 터에 殿宇를 중건하였으나,

畵像을 모사할 길이 없어 다만 위패를 모시고 해마다 제사를 지내며 정성을 표하는 향화(제사)가 끊이지 않아서, 비록 마음에 위안은 되나 玄遠한 遺像(유상)을 추모하던 후예로서 감회를 금할 수 없었다.





연전에 關東 (어느)사람에게 초상화 1본을 求得하였는데 (그것은) 강원도 원주 龍華山의 高自庵에 있던 것이라 한다.



말을 전하는 자가 이르기를 "예전에 대왕이 스스로 나라를 물려준 뒤로, 佛緣에 뜻을 두고 명산을 두루 돌아 다니다가 제용(?제천의 오기)에 이르러 이궁(별궁)을 짓고 서쪽 영상에 올라가 바라보매, (산세가) 용의 형상과 같이 기이하게 빼어났으므로



그 절정에 나아가 돌을 깍아 미륵불상을 조성하고 재궁을 세우니, 이것이 鶴樹寺(학수사)요, 또 미륵불상 앞에 암자를 지으니 이것이 高自庵(고자암)이라" 고 한다.



대왕이 여기에서 노닐다가 머문지가 아마 오래일 것이니, 遺像을 이곳에 모셨던 것이 진실로 옳은 듯하다.



생각하건대, 그 당시에 대왕을 호종하던 군신들이 나라가 무너지고 대왕이 귀복한 것을 몹시 마음 아프게 여겨 대왕이 이곳에 마음을 붙이고 있었기 때문에 화상을 그리어 봉안하여 그 끼친 자취를 길이 후대에 보이고자 함일 것이요,



아니면 승도들이 대왕께서 백성을 위하여 나라를 넘겨준 어진 마음을 추모하여 초상을 그려 봉안하여 그 제사를 길이 받들고자 함일 것이다.







고려의 중엽에 절과 殿宇가 황폐하여 사람의 발자치가 끊어진지 여러해가 지난뒤에, 黃山居士가 홀연히 가시덤불을 헤치고 무너지 벽위 ???



우의정 金思穆 공이 쓴 영정기가 있고, 숭혜전기와 그 밖의 문헌등에도 散見되는바,







현재 경순대왕의 영정을 봉안한 곳은 다음 4개처이다.



1. 숭혜전 봉안 (숭혜전 - 경주시 황남동 216번지)



현재 원본 1본과 모사본 4본을 소장하고 있고, 이중 모사본 1폭만을 영좌에 모셔놓고 있다. 대형 채색화 (당초의 영정은 고려조의 것으로 추정)





2. 경천묘 봉안 (경천묘- 경남 하동군 청암면 중이리 507 가마소 -新基마을)



소형 채색화 1본. 이 영정은 1795년에 강원도 원성군 귀래면 龍華山에 있는 高自庵 소장 영정을 개모하여 봉안한 것이라 한다.

*경천묘는 경상남도 지방유형문화재 제132호임





3. 숭은전 봉안 (숭은전 : 경북 영주시 영주3동 101 철?산 기슭)



흑백 대형 1본, 1958년에 숭혜전 봉안 영정을 모사한 것





4. 숭인전 봉안 (숭인전 : 강원도 평창군 도암면 호명리 49)



흑백 대형 1본, 1924년에 숭혜전 봉안 영정을 모사한 것





<참고> 金思穆공의 영정기에는 순천 송광사에도 영정이 봉안되어 있다고 하였으나, 실지 답사한 결과 동 寺에는 영정이 없고, 또 寺誌 등에도 그런 사실이 기록되어 있지 않음









● 경순대왕 영정기



경순대왕 영정기에서 화상을 취하였는데, 그 형상이 예전과 같이 완연하였다. 마침내 이에 감격하고 殿宇를 중수하여 그 화상을 봉안하였다.



국초에 이르러 목은 이색(1329-1396, 고려말의 성리학자), 권근 양촌 (1352-1407, 조선조 초의 학자), 상국 권희(1319-1405 고려말의 문관), 도관 권천 등 제공이 깊이 느낀 바 있어,



다시 옛 전우를 수축하였으나 또 세월이 흘러 삼백년이 되니, 봉안하였던 화상이 긁히고 깎여서 점차 옛 모습을 잃어갔다.





이때 경주인 金必振(1635-1691, 숙종때의 관리)이 대왕의 후예로서 숙종 丁巳년 (1677)에 원주의 목사로 있으면서 이곳에 향을 피우고 제사를 지내며 녹봉을 털어 김씨의 성을 가진 武眞과 부지런하고 성실한 승도들에게 일을 부탁하고,

훌륭한 畵工을 구하여 다시 畵像을 모사, 새롭게 하고, 또 대웅전의 오른쪽에 齋宮을 새로 지어 여기에 옮겨 모셨다.





그러나 丁丑년 (1697)에 절이 화재로 잿더미가 되고, 오직 影殿만이 ?연히 홀로 남았으나 보살피는 사람이 없어 ?폐한 지가 36년이 가까웠다.

승도들이 또 암자의 왼쪽에 옮겨 세웠으니 곧 當宇(당시의 임금) 丁巳년 (1737) 봄이었다.



아아, 影殿을 창건한 후 두 번 황폐하여 두 번 중수하고 또한 두 번 옮겨 세웠으니, 전후를 헤아려 보면 이미 8,9백년이 된다.





가시덤불에 파묻히었으나 影幀은 汚損(오손)됨이 없고, 화재를 당하였어도 影殿은 불타지 않았으니 그 또한 神異하지 아니한가.



이는 생각하건대 대왕이 만백성의 魚肉이 됨을 차마 볼 수 없어 千乘의 왕위를 弊履(폐이)와 같이 벗어 버렸으니, 그 어진 마음과 지극한 恩澤이 천지신명에게까지 감동되어 오랜 세월을 두고 이 影幀이 보호받은 것이리라.





그러나 내가 한스럽게 여기는 것은 鷄林은 곧 대왕의 옛 도읍지요, 대왕의 先陵이 여기에 있으니, 그 遺民(유민)과 자손들이 지금에 이르기까지 천년동안 대왕의 精靈을 생각지 아니함이 없으며



오늘에도 반드시 월성과 첨성대 사이를 오르내릴 것이나 제사 지냄에 있어 다만 位牌만을 모시고 眞像이 한동안 절간에 간직되어 있었으니 애석하게도 하담공(=★김시양)이 이 影幀을 일찍 발견하지 못한 것이다.



나아가 바라보니 仁厚하고 慈惠한 기상에 코가 오뚝하고 귀가 크며 髮眉(발미)가 빼어나고 이마가 풍만하며 뺨은 조금 야위었으나 관복을 갖춘 龍章의 모습은 왕자의 위용이었다.







지금 제천에는 대왕이 거하던 離宮(이궁)의 터가 있고 원주에는 대왕이 望拜하던 彌勒(미륵)의 터가 있다. 龍華鶴樹(용화학수)는 지금 彌勒黃山(미륵황산)으로 바뀌었고, 다만 高自庵(고자암)만이 옛이름을 쓰고 있다.



인제현에 대왕이 머물던 곳이 있어 金傅王洞(김부왕동)이라 이름하니, 읍지에 그 사적이 실려 있다.



호남의 순천 송광사에 또 影幀 1본이 있었는데 왜인이 가지고 그 나라로 들어가서 모사한 후 돌려 왔으므로 그것을 봉안하였으니, 이는 裔孫(예손) 漢章이 기록한 바의 내력이다.







上(정조)의 8년 91784) 甲辰에 또 시중공의 墓誌 1면과 평장공 (제2자 황)의 墓誌 1면을 찾았으니 이것은 아마 남의 산지를 함부로 점유한 자가 땅을 파고 감추어 두었던 것이 우연히 드러나 것이리라.



삼가 살펴 보건대 그중 1면에는 신라 경순대왕 휘傅의 9자가 있으니, 1은 鎰(일), 2는 湟(황), 3은 鳴鍾(명종), 4는 殷說(은열), 5는 錫(석), 6은 鍵(건), 7은 鐥(선), 8은 錘(추), 9는 德摯(덕지)이다. (하략)











▣ 김태서 - 경주김씨 종친회 홈에 경순왕 전신 영정(칼라)이 있습니다.그 영정의 내력이 궁금 합니다.아시는분 설명 부탁해~요. 글 감사합니다.

▣ 김재원 -

▣ 김영환 -

▣ 김항용 -

▣ 김은회 -

▣ 김재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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