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문학기행 / 황진이] (4)당당하게 명창 이사종과 계약동거를 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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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내영환 작성일06-12-04 17:10 조회1,711회 댓글0건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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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진이는 서사(書史)에도 정통하고 시가 뿐만 아니라 가창에도 능하였다. 따라서 27세 때 이사종(李士宗)을 만나 애정편력을 보여주기도 하였다. 이사종과 관련된 이야기는 ≪어우야담≫에 실려 있다. 선전관 이사종은 당대의 명창이었다. 일찍이 사신으로 가는 길에 개성을 지나다가 천수원 냇가에서 쉴 때, 경치에 도취된 그는 저절로 흥이 솟구쳐 두어 가락 큰 소리를 읊었다. 때마침 그 곳을 지나던 황진이가 노래 소리를 듣고, ‘이 노래 곡조가 참으로 이상하다. 보통 시골구석에서 부르는 노래가 아니다. 듣자 하니 서울에 이 사종이라는 유명한 풍류객이 있다. 하던데, 당대의 절창이라, 아마 그 사람일 게다.’ 라 생각했다. 사람을 시켜 알아보았더니 과연 이사종이 틀림없었다. 황진이는 그를 집으로 데리고 와 자기 집에서 머물게 했다. 하루는 황진이가 말했다. “당신과는 마땅히 6년을 같이 살아야 하겠습니다.” 라고 제의하면서 3년 동안 먹고 지낼 재산들을 사종의 집으로 옮겼다. 3년은 황진이가, 그리고 3년은 이사종이 상대편 집안 식구까지 먹여 살리고, 정한 기한이 끝나자 황진이가 떠나갔다. 이렇게 자기 집에서 3년, 그의 집에서 3년간 유감없이 열정을 불태웠던 황진이와 이사종은 계약 동거가 끝나자 미련없이 헤어졌던 것이다. 오늘날에도 계약결혼이나 계약동거는 결혼제도에 있어서 가장 첨단을 달리는 사고방식인데, 황진이는 이미 조선시대에 이를 실천하였다. 즉 예술적 안목으로 창(唱)을 들을 줄 아는 식견을 가진 황진이는 영혼의 교감으로 이사종을 선택하여 당대의 사회통념을 넘어선 계약동거라는 형태를 취하여 함께 살았던 것이다. 여기에서 그녀가 한 남성에게 얽매이기 싫어하는 성격과 자신의 의지대로 자신의 삶을 살고자 하는 삶을 엿볼 수 있다. 자신이 먼저 정한 동거기간을 하루도 어기지 않고 냉정하게 돌아서는 모습이나, 경제적인 부분을 동등하게 해결한 것이 당시의 상황을 초월해서 남녀간의 평등한 관계를 이룩한 것이다. 선구자로서의 그녀의 면모를 다시 한 번 생각하게 하는 적극적인 사랑이었다. 황진이는 자존심이 도도한 여인이었다. 그러나 황진이는 이사종과 헤어진 뒤, 사랑하는 임을 못잊어 괴로워하면서 그를 그리는 마음을 다음 같이 읊조리고 있다. 동지(冬至)ㅅ달 기나 긴 밤을 한 허리를 버혀 내어 춘풍(春風) 니래 아레 서리서리 너헛다가 어론 님 오신 날 밤이여든 구뷔구뷔 펴리라..(인터넷에서 깨지는 글자 현대어로 바꿈) (동짓달 긴긴 밤의 한가운데를 베어 내어, 봄바람처럼 따뜻한 이불 속에 서리서리 넣어 두었다가, 정든 임이 오신 밤이면 굽이굽이 펼쳐 내어 그 밤이 오래오래 새게 이으리라.) 그리움과 기다림의 심정을 노래하기 위하여 여기에서는 시간을 휘어잡고자 했다. 님이 오는 봄밤은 짧고 님이 오지 않는 밤은 길다는 것이야말로 어찌 할 수 없는 삶의 역설 같은데, 긴 밤의 허리를 잘라 이불 아래 넣는다면서 그런 역설을 그냥두지 않았다. ‘서리서리’와 ‘구뷔구뷔’라는 의태어는 이별의 슬픔을 되씹고 있는 노래에서라면 도저히 찾을 수 없는 것이며, 주어진 불행을 자아확대로 극복하자는 신바람을 나타낸다. 황진이는 기녀 중에서 특히 우뚝한 위치를 차지하며, 삶의 조건을 희롱하는 풍류를 삼았다. 즉 간절한 그리움과 기다림의 심정을 시간에 대한 기발한 착상에 여성 특유의 섬세한 감각을 표현한 점이 뛰어난 시적 효과를 얻고 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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