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렬공 어록 17(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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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주회 작성일06-12-06 19:48 조회1,524회 댓글4건본문
말년
■ 牧隱文稿卷之二十 /傳
鄭氏家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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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경공(*정해, 1254-1305)의 아들인 청하군(淸河君, *정책)은 성격이 활달하여 삼가고 조심하는 법이 없었으며 집안 살림에 대해서는 아예 관심을 두지 않았는데, 부인 김씨(金氏)의 조부인 충렬공[忠烈公 김방경(金方慶)]이 매번 “책(㥽)은 진짜 사나이다.”라고 칭찬을 하곤 하였다.
어려서 문음(門蔭)으로 누차 보임(補任)되어 서대비원녹사 북면도감판관 흥위위참군사별장(西大悲院錄事北面都監判官興威衛參軍事別將)을 지냈으며, 대덕(大德) 8년(1304, 충렬왕30)에 흥위위 보승 호군(興衛尉保勝護軍)을 제수받고 조현대부(朝顯大夫)의 품계에 올랐다.
*청하군(淸河君)
<1321년 김순 묘지명, 민지 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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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남 영돈(永暾)은 지금 도관직랑 지합주사(都官直郞 知陜州事)이고, 차남 영휘(永暉)는 지금 흥위위 보승별장(興威衛 保勝別將)이며, 3남 사순(思順)은 머리를 깎고 자은종(慈恩宗)의 대덕(大德)이 되었으며, 4남 영후(永煦)는 사헌지평(司憲持平)이 되었다. 장녀는 내시 중정대부 친어군대호군(內侍 中正大夫 親御軍大護軍) 정책에게 시집갔고, 2녀는 대광 상당군(大匡 上黨君) 백이정(白?正)에게 시집갔으며, 3녀는 사인(舍人) 별리가불화(別里哥不花)에게 시집갔으니 원의 좌승상(左承相) 아홀반(阿忽反)의 아들이다.
<1332년 김순처허씨 묘지명, 이제현 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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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남 영돈(永暾)은 봉상대부 전법총랑(奉常大夫 典法摠郞)이다. 둘째 영휘(永暉)는 흥위위 낭장(興威衛 郎將)이다. 그 다음 사순(思順)은 출가하여 자은종(慈恩宗) 대덕(大德)이다. 그 다음 영후(永煦)는 봉선대부 자섬사사(奉善大夫 資贍司使)이다. 장녀는 대광 청하군(大匡 淸河君) 정책(鄭漬)에게 시집갔으나, 먼저 죽었다. 다음은 대광 상당군(大匡 上黨君) 백이정(白?正)에게 시집갔다. 막내는 강절성 참지정사(江淅省 參知政事)인 왕인 별리가불화(王人 別里哥不花)에게 시집갔다.
동문선 제100권
전(傳)
정씨가전(鄭氏家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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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첨의찬성사로 시호가 장경공(章敬公)인 ★해(?, 1254-1305)를 낳았고, 장경공이 부영(扶寧) 김공(金公) ★구(坵)의 딸에게 장가들어 청하군(淸河君)인 ★책(책)과 판전교시사인 이(怡)를 낳았고, 다음에 중찬치사(中贊致仕)로 시호가 광정(匡定)인 홍공(洪公) 규(奎)의 딸에 재취하여 딸 둘을 낳았는데, 대언(代言)인 ★경사만(慶斯萬)과 종부령(宗簿令)인 최광(崔廣)에게 출가하였다.
청하군이 판삼사사(判三司事)인 상락군(上洛君) 김공(金公) 순(珣)의 딸이며, 도첨의 중찬인 양천(陽川)허문경공(許文敬公) 공(珙)의 외손녀에게 장가들어 설헌(雪軒)선생 오(?)와 설곡(雪谷) 선생 포(?, 1309-1345)를 낳았다. --- 경씨(慶氏)는 지금 시중공(侍中公)인 복흥(復興)을 낳았고, 최씨(崔氏)는 판개성(判開城)인 맹손(孟孫)을 낳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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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목록
김항용님의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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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항용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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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수많은 관련 자료를 검색하며 정리한 <충렬공 어록> 그동안 고생하셨습니다. 일단 모두 합하여 자료실에 올리겠습니다.
전에 작성하던 충렬공 연보는 어찌되었나요. 연락주십시오.
김발용님의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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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발용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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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연재 잘 보았습니다.
바쁘신 중에 연재를 마무리 하시느라 고생하셨습니다.
프린트 하여 항시 옆에 두겠습니다.
김행순님의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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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행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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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언제쯤 올라오는지 궁금했었는데 잘 보았습니다.
건강하시지요~~
김진교님의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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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진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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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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