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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문학기행 / 황진이] (5)색에 혹하는 자는 남자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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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내영환 작성일06-12-11 09:56 조회1,880회 댓글1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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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기문학기행 / 황진이] (5)색에 혹하는 자는 남자가 아니다

 

다음에 인용한 시는 황진이가 당시 문인으로서 대제학을 지낸 세양(世讓) 소양곡(蘇陽谷)과의 한 달을 보내고 이별의 연회를 베풀면서 노래한 것이다. 소양곡에 대한 일화가 있는데 이를 소개하기로 한다.
소양곡은 어릴 때부터 강직하여,
“색에 혹하여 자제하지 못하는 자는 남자가 아니다.”
라고 말하던 중에 송도의 창기 진이가 재색을 겸비하였다는 소문을 듣고 친구들에게,
“30일만 동거하고 만약에 하루라도 더 머무르면 사람이 아니다.”
라고 장담하였다. 송도에 가서 진이를 보니 과연 아름다워 사귀게 되어 30일간의 약속으로 동거에 들어갔다. 어느덧 꿈같은 한달이 쏜살같이 자나가고 헤어질 날이 다가와 함께 남루에 올라 이별의 술잔을 나누었다. 진이는 조금도 슬픈 기색이 없이 다만 시 한수를 짓겠다고 해 양곡이 허락하니 바로 <소세양을 떠나보내며(贈別蘇陽谷世讓)>라는 즉흥시를 지어 바쳤던 것이다.

달빛 아래 뜰에는 오동잎 다 떨어지고,
찬서리 속의 들국화는 노랗게 되었구나.
누대는 높아 하늘은 지척인데,
주고받는 천잔의 술에 사람들은 취했구나.
흐르는 물소리는 거문고 소리에 화답하여 차고,
매화는 피리소리에 들어 향기롭구나.
내일 아침 그대가 떠나고 나면,
임 그리는 정 길고 긴 물거품이 되누나.

이 시를 듣고 소세양은 자신이 비정했다고 탄식하면서 차마 그곳을 떠날 수가 없어서 다시 더 머물렀다고 한다. 이 작품에는 강직하다고 스스로 자부하던 남자의 허장성세를 한꺼번에 전복시키는 황진이의 지모가 엿보이며, 절개가 굳은 남자의 마음을 단 한 번에 무너뜨리는 정도로 그녀의 문장력은 과히 대단하다고 할 만하다. 이별을 앞선 작자의 태도는 헤어지기 싫다고 애련에 빠져 님의 옷자락을 부여잡는 부정의 이미지를 갖고 있지 않고, 이별을 오히려 받아들이는 능동적이며 적극적인 자세를 취하고 있다는 것이 다른 이별시와는 구별이 된다. 이별을 당하는 자의 비애감, 슬픔 등의 감정은 나타나지 않고 있으며, 기존의 관념화된 이별의 애정시와도 다르다. 그녀만의 자신 만만한 자세로 편협한 감정이나 관념에 빠지지 않으면서도 고매한 이상과 품격을 유지하고 있는 것이다.

황진이 자신이 만났던 남자들은 수없이 많았지만 자신이 사랑했던 사람들은 모두 자신의 곁을 떠나갔다. 화담선생, 이사종, 소세양 등이 그러했다. 하지만 그렇게 이별을 하고 떠내 보냈지만, 임에 대한 진이의 그리움은 끝이 없었다. 따라서 진이는 이러한 애련의 심정을 또다시 <꿈(夢)>이란 시를 읊고 있는 것이다.

그립고 보고픈 임 만날 길은 다만 꿈길 뿐.
임을 만나 반겨할 때 임은 나를 찾아왔네,
원컨대 다른 밤 꿈에 임 찾아 나설 때는,
같은 때 오가는 길 중간에서 함께 만나기를.

임을 그리워해도 만나는 방법은 꿈밖에 없는데, 내가 당신을 찾을 때는 서로 어긋나서 만나지 못했지만, 이제는 찾아가는 길 가운데서 만났으면 오죽이나 좋겠는가 하는 작자의 자신의 진솔한 심정을 묘사하였다. 남녀의 만남이란 처음의 만남을 소중히 여긴다. 그런 만남이 이별을 하면 은근히 그리움이 싹트는데, 세월이 흐르고 흘러 그 그리움이 정점에 다다르면 꿈속에서라도 만나보기를 바라게 된다. 따라서 작자는 그리움이 지나치면 꿈 속에서도 보인다는 그 막연한 말을 직접 시로 승화시켜 자신의 님에 대한 그리움을 간결하게 표현하고 있다.
출처 : 본인의 글입니다.

댓글목록

김행순님의 댓글

profile_image 김행순
작성일

  요즘 작업하고 있는 &lt;청백리 전라감사&gt; 41인 중에 양곡선생이 계시네요.
&lt;소세양을 떠나보내며(贈別蘇陽谷世讓)&gt; 후4구의 원문을 옮겨봅니다.
流水和琴冷 흐르는 물소리는 거문고 소리에 화답하여 차고,
梅花入笛香 매화는 피리소리에 들어 향기롭구나.
明朝相別後 내일 아침 그대가 떠나고 나면,
情與碧波長 임 그리는 정 길고 긴 물거품이 되누나
솔내님께서 요즘 올리시는 글과 제가 보고 있는 글이 겹치는 부분이 많아 읽는 재미가 솔솔합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