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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비님들의 뒷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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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중 작성일06-12-12 06:46 조회1,365회 댓글1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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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선비의 화장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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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con_07.gif신원건 2006-12-10 17:05:09 icon_07.gif조회수: 1528 icon_07.gif추천:3
 

해질 녘 찾은 안동 병산서원

<사진·글 신원건기자 laput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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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 선비들의 뒷간(화장실). 문 대신 달팽이 모양으로 휘어진 좁은 황토벽을 따라 들어가니 소나무 널판지를 엮어 만든 디딤판이 보입니다. 지붕도 없으니 일을 보면서도 '무위자연'이 깨우쳐 질만합니다. 문이 없으니 노크를 할 수도 없고... 그저 들어가기 전 '에헴'하고 소리를 내면 안에서도 '에헴'하며 인기척을 내지 않았을까요?
 
늦은 가을 날, 해질 녘 경북 안동시 풍천면에 있는 병산서원(院)을 찾았습니다. 인적이 드문 낙동강 옆 비포장 도로를 따라 한참을 달리니 오른편에 작고 소박한 한옥들이 나타납니다. 보는 순간  '엥? 이게 그 유명한 병산서원?' 이라며 튀어나온 실망감이 정문인 복례(復禮·예를 좇는다)문을 통과하는 순간 감탄 섞인 나즈막한 신음으로 바뀝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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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생들이 앉아 시를 읊고 공부하던 만대루(晩對樓). 1572년 서애 유성룡 선생이 글을 쓰고 후학을 양성했던 곳입니다. 아래편에 보이는 작은 기와지붕이 있는 문이 복례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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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대루 밑을 지나쳐 서원 중앙에 있는 입교당(교실) 마루에 걸터앉아 보니 기둥 넘어 옥빛 낙동강과 그 뒤 병산이 한눈에 들어옵니다. 햇살을 받은 병산은 산 굽이굽이 빛이 교차하면서 말 그대로 한 폭의 병풍이 됩니다. 서원 건물 대부분 단청을 입히지 않은 나무 그대로 입니다. '학문정진'을 위해 '화려함'을 배제한 것처럼 느껴졌습니다.

홍매나무, 청매나무, 350년 된 목백일홍이 어우러진 사원은 금세라도 유림들이 걸어나올 듯한 고즈넉한 분위기였습니다. 미술사학자들이 한국 최고의 서원으로 꼽는 만대루는 인공 건축물이 아닌 자연의 숲 같았습니다. 조선 몰락의 이유를 많은 학자들이 '탁상공론'으로 유학이 왜곡됐기 때문이라고 하는 얘기를 들은 적이 있습니다.
 
그런데 최소한 이곳에서 만큼은 유생들이 자연스럽게 '무위자연(無爲自然)' 속에서 공부를 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 곳은 유림들이 후학을 양성하고 유학을 계승하기 위해 만들어졌지만 정작 이 건축물을 설계하고 만든 목장(木匠)들은 도교에 심취한 사람들이 아니었을까 하는 상상을 해 보았습니다. 자연이 사람이고 사람이 자연인 '무위자연(無爲自然)'의 개념을 하나의 건축물로 표현한 것이 아니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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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대루의 소나무 기둥과 대들보는 휘어지면 휘어진 대로, 곧으면 곧은 대로, 원래 모양 그대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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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대루 아래 쪽 기둥도 원래 소나무 모습대로 휘어져 있는 모습입니다. 심지어 기둥 주춧돌까지 자연석을 평평하게 깎지 않고 나무 기둥을 원래 돌 모양에 맞췄습니다.(아래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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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대루 벽면. 송판 옹이에서 흐른 송진이 그대로 마르면서 노란빛깔을 띠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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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대루 바닥의 수백년된 송판입니다. 나이테들이 울퉁불퉁한 굴곡을 이루고 있었는데 마침 저녁 햇살을 받아 춤추며 물결치듯 그림자를 만들어 주었습니다.
- 끝.

댓글목록

김행순님의 댓글

profile_image 김행순
작성일

  아련한 어렸을 적 추억이 떠오릅니다.
대여섯 살 때 기억이 새록새록합니다.
안동에 가고 싶어지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