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경사 원진국사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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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재원 작성일02-05-13 02:08 조회1,641회 댓글0건본문
고려시대에 제작된 원진국사비는 당초문양이며, 비상단귀점이 독특한 형식으로 되어 있다. 원진국사(1187 ~ 1221)의 속성은 신씨, 호는 승형, 자는 영회이며, 13세에 희양산 봉암사의 동순에서 삭발하고 이듬해 금산사에서 구족계를 받았다. 명종의 후애를 받으며 명산을 유력하고 희종 4년(1208)금강산 유점사에 머물다가 강종 3년에 삼중대사를 비수하고 고종 3년(1215)에 대선사가 되어 보경사주지가 되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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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진년 봄에 의종은 그의 사자를 삭발하여 대사에게 친속하게 하는 등 왕실의 신임을 받았고 우왕 9년에 팔공산염불사에 이거한 후 10년 10일 입적하니 왕이 국사로 추증하고 시호를 원진이라 하였다. 비명은 통의대부 추밀원 우부승선성 국자감 대사성 사자금어대신 이공로가 짓고 글씨는 장사랑 대관서승겸 보문각 교감 김효인(官 : 병부상서, 한림학사)이 썼다. 비석은 갓이 없고 신석양각을 귀접이한 독특한 형식으로 귀부와 대석은 단일석이고 비좌는 폭이 배면과 같은 정도의 넓이로 주위에 단변 44연변을 조각하였고,귀갑은 6각형의 갑문내에 왕자를 질서있게 새겼으며, 귀두는 여의주를 물고 있는 용두화 하였으며 신석 둘레에는 7.4cm의 당초문양을 장식하였다. 귀부는 화강암, 비신은 사암으로 되어 있다. 비문의 서체는 대자는 전서체로 횡서하였고 소자는 해서체로 종서하였다. 자경은 대자는 7.6cm, 소자는 2.0cm다. |
▣ 김태서 - 감사합니다.
▣ 김은회 - 잘보았습니다.
▣ 김항용 - 감사합니다.
▣ 김영환 -
▣ 김재익 -
▣ 김주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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