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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문학기행 / 황진이] (7)어져 내 일이여 그릴 줄을 모로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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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내영환 작성일06-12-26 12:18 조회1,516회 댓글1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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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문학기행 / 황진이] (7)어져 내 일이여 그릴 줄을 모로던가

 

다음의 시조도 임을 떠나 보낸 후의 회한을 진솔하게 읊고 있는 작품이다. 애틋한 심리를 섬세하게 포착하여 정결하게 표현하였다.

어져 내 일이여 그릴 줄을 모로던가
이시라 하더면 가랴마는 제 구태여
보내고 그리는 정(情)은 나도 몰라 하노라.

(아! 내가 한 일이 후회스럽구나 이렇게도 사무치게 그리울 줄을 미처 몰랐더냐? 있으라 했더라면 임이 굳이 떠나시려 했겠느냐마는 내가 굳이 보내 좋고는. 이에 와서 새삼 그리워하는 마음을 나 자신도 모르겠구나.)

이별한 사람을 그리워하는 것이 기생들의 작품에서는 신분계급의 위치상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한다. 사랑의 노래는 곧 이별의 노래하는 전례를, 즉 고려 속요인 <가시리>, <서경별곡>을 이어 후대로 넘겨줄 전통을 지켜갔다. 그런데 여기서는 ‘어뎌’라는 말을 앞세워서 이별을 하지마자 곧바로 그리움을 깨닫게 된다는 사연을 그냥 말하듯이 나타냈으면서도 다른 노래에서는 찾을 수 없는 묘미를 갖추고 있다. 즉 이 작품은 임을 떠나 보낸 후의 회한(悔恨)을 진솔하게 나타내고 있는데, 애틋한 심리를 섬세하게 포착하여 표현하였다. 겉으로는 강한 척하지만 속으로는 외롭고 약한 서정적 자아의 마음이 공감을 불러일으킨다. 황진이는 이렇게 고도로 세련된 표현 기교를 구사하여 남녀 간의 애정을 진솔하고 대담하게 표현하고 있다.
황진이는 사랑과 이별만을 노래한 것이 아니었다. 한때는 번화로웠을 시절을 그리워하는 심정을 작품으로 형상화하기도 했다. 그녀는 <박연폭포(朴淵瀑布)>에서 폭포를 묘사하면서 여성답지 않은 기백을 보이며 폭포의 웅장함을 노래하고 있다.

한 줄기 긴 물구비가 골짜기 사이에서 뿜어내니,
백길이나 되는 용추로 쏟아져서 들어가네.
물이 날아 거꾸로 떨어지니 은하수를 의심하고,
성난 폭포에 가로 드리운 흰 무지개 완연하네.
우박이 날리고 벼락이 치다가 골짜기에서 멈추고,
구슬방아에서 옥이 부서져서 맑은 하늘을 뒤덮네.
노니는 사람들아 여산이 좋다고 말하지 마오,
모름지기 천마가 해동에서 으뜸인줄 알아야 하네.

황진이는 천한 기생이라고 해서 자기를 낮추지 않았다. 서경덕, 박연폭포, 그리고 자기가 송도삼절이라고 했을 만큼 자부심이 대단했던 인물이다. 이 시에서 자신을 중국의 영산에 비유하여 그 아름다움이나 웅장함을 자랑하며, 이보다도 박연폭포이 경치가 더욱 빼어날 뿐만 아니라 힘찬 울림을 지닌 절경임을 강조하고 있다. 여기에서의 박연폭포가 우리 나라의 으뜸이라고 한 것은 황진이 자신도 우리 나라에서 으뜸이라는 우월감을 자랑한 것이다. 여기에서도 황진이의 진취적이고 자유분방한 모습을 엿볼 수가 있다.
황진이는 다정다감한 여인이었지만, 재질이 너무 뛰어나서 오히려 여자로서는 그다지 행복하다고 할 수 없었다. 어찌되었던 간에 황진이가 사랑했던 남성들은 크든 작든 영향을 끼쳐 그녀를 더욱 빛나게 해주고 있다. 한창 꽃다운 명성을 날렸던 그녀는 미인박명인가 40세 미만의 젊은 나이에 요절하고 말았다. 그녀가 죽기 전에, “내가 죽거든 관을 쓰지 말고, 동쪽 문밖에 자기의 시체를 묻어 개미와 벌레들의 밥이 되게 하여 천하 여자들의 경계를 삼으라.”는 유언을 남긴다. 그러나 어떤 남자가 그녀의 시신을 수습하여 무덤을 만들어 주었다고 한다. 그녀의 무덤은 장단의 남정고개 남쪽에 있다.
다음은 문장이 뛰어나고 문장이 탁월하며 시를 잘 쓴 풍류인이라는 평판이 자자했던 백호(白湖) 임제(林悌, 1549-1587)가 황진이의 묘를 찾아가 그 앞에서 불렀다는 노래이다.

청초(靑草) 우거진 골에 자난다 누엇난다
홍안(紅顔)을 어듸 두고 백골(白骨)만 뭇쳣난다
잔(盞) 잡아 권(勸)하리 업스니 글을 슬허하노라.(인터넷에서 깨지는 글자 현대어로 바꿈)


(푸른 풀들이 우거진 골짜기에 자는 거냐 누워 있는 것이냐? 그 곱던 얼굴은 어디에 두고 흰 뼈만 묻혀 있느냐? 잔을 잡아 권할 네가 없으니, 인생은 정녕 무상한 것인가 슬픔을 억제할 수가 없구나.)

이 시조는, “송도의 명기 황진이의 무덤을 보고 이 노래를 지어 조문하다.”라는 기록이 ≪해동가요(海東歌謠)≫에 실려 있는 작품이다. 바로 임제가 평안도 도사로 임명되어 부임하러 가는 길에 평소에 보고 싶던 황진이를 찾았으나 그녀는 이미 이 세상 사람이 아니었다. 그래서 그는 장단에 있는 그녀의 무덤을 찾아가 묘 앞에서 술을 붓고 시조를 한 수 지어서 죽은 그녀와 대화를 나누었다. 전설에 의하면 어엿한 관리가 천한 기생의 묘 앞에서 제사를 지냈다고 해서 비난을 받아야 했고, 끝내 파면을 당했다고 한다. 이것이 사실이라 하더라도 두려워할 임제가 아니었다. 만일 황진이가 생전에 임제를 만났다면 둘 다 문학과 인간이 원숙했기 때문에 두 사람의 연애는 세인에게 주목을 받았을 것임에 틀림없었을 것이다.
출처 : 본인의 글입니다.

댓글목록

김태영님의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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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지난날 술잔을 들며 詩로써 和唱하던 일이 어젯일 같거늘, 벌써 他界하여 무덤엔 잡초만 우거졌구나. 아! 허망한 것은 人生! 그 아름답던 姿態, 그 요량한 노랫소리, 눈앞에 삼삼하여 귓가에 쟁쟁한데 정녕 너는 죽었느냐? 아니면 나를 놀래 주려고 짐짓 누워 있는게 아니냐!
白湖가 眞伊의 무덤에 致祭할 때 부른 노래    -유인몽의 어우야담에서-

‘산은 옛산이 로되 물은 옛물이 아니로구나.
밤낮으로 흘러가니 옛물이 있을 수 있겠느냐.
사람도 흐르는 물과 같은가, 한번가면 다시 돌아오지 않는구나!‘
서화담의 죽음을 한탄하던 황진이. 그녀 자신이 임제의 한탄의 대상이 된 것이 아이러니 합니다.
先人들의 풍류스런 詩話 잘 감상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