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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 통영(옛 충무)에 가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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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주회 작성일06-12-26 21:40 조회1,422회 댓글2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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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 통영(옛 충무)에 가면


1) 삼도수군통제사를 역임하신 안김 선조님들을 생각하고,


바) 안김의 삼도 수군통제사(安金三道水軍統制使) 소개


35대   김응해(金應海)  1646. 3.  ~ 1648. 3.  만기.(副使)

43대   김   적(金  적)  1659. 8.  ~ 1660. 1.  병으로 사임.(翼元)

63대   김세익(金世翊)  1685. 3.  ~ 1686. 6.  병으로 사임.(應海의孫)

71대   김중기(金重器)  1695. 8.  ~ 1695. 11. 잡혀감(이인좌의난).(應河曾孫)

85대   김중원(金重元)  1711. 11. ~ 1713. 5.  전근.(應海의曾孫)

92대   김중기(金重器)  1718. 9.  ~ 1720. 1.  재임.(應河의曾孫)

100대   김   흡(金   翕)  1727. 12. ~ 1729. 12.  만기.(世翊의孫)

104대   김   집(金   潗)  1733. 6.  ~ 1736. 4.   만기.(重元의子) 

106대   김   광(金   洸)  1737. 9.  ~   ?            (應海의高孫)

116대   김   윤(金   潤)  1754. 3.  ~ 1755. 2.   파직 (應海의高孫)

140대   김영수(金永綬)  1786. 1.  ~ 1786. 7.   순직  (郡事)


---1593년 초대통제사 이순신, 2대원균, 3대이순신…1894년 208대통제사 홍남주에 이르기 까지 300년간충청도, 전라도, 경상도 3도의 수군을 지휘한 총사령관(종2품직). 원래는 각 도의 수군절도사가 수군을 지휘하였으나, 1592년(선조 25)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경상도, 전라도, 충청도의 수군을 하나로 통합하기 위해 삼도수군통제사를 신설하고 전라좌수사 이순신(李舜臣)을 임명한 것이 그 시초였다. 삼도수군통제영 예하에는 경상좌,우수영과 전라좌,우수영 그리고 충청도수영등 5개수영을 거느리고 있었으며 각수사(水使)는 정3품직이다.



2) 통영 앞바다 한산도에는 통제사공(휘김영수) 친필 제승당 현판이 있고,


20) <통제사공 친필 현판> 소개 (2006. 7. 1. 태영(군) 제공)

한산도 제승당의 현판글씨가 김영수 통제사의 친필임을 포항 문화원장 을 역임하신 李正業 선생님과 전화 통화를 하면서 알게 되었습니다. 이정업 선생님은 김영수 당시 흥해군수에 관한 책을 집필하고 계신분인데 80~90%완료 해놓고 후손을 찾느라 고생을 많이 하셨다고 들었습니다. 김영수선조님의 자료를 많이 수집하셨다고 합니다. 조만간 만나기로 약속하였습니다.


崇禎三丙午仲春統制使望八醉筆 숭정삼병오중춘통제사망팔취필

김영수 통제사공이 돌아가시던 해인 1786년 봄에 이순신 통제사를 바라보며 팔취가 쓴것이 아닌가 생각 되어집니다. 따라서 '팔취'는 김영수 선조님의 號일 가능성이 큽니다.

제주도 관덕정의 탐라형승 필적 끝에도 '八醉' 이며 각종 암각문도 취자만 해독하다보니 취하여 쓴것으로 번역을 하였는데 오역을 한것이 아닌가 추측해 봅니다.




3) 통제영터 세병관 담 옆에 모아 놓은 50여기의 선정비, 불망비, 거사비 가운데에 통제사공(휘 김영수) 타루비가 서 있는데, 실제로 눈물을 흘리듯 중상부에 젖은 색깔이 진하고,


라) 타루비문(統制使 金公 諱 永綬 墮淚碑文) 원문 및 역문


六朔이營  一心圖報  身無兼衣  言不及私  이(호두머리+位) :임할이

規畵未半  公何遠棄  父老咸嗟  士卒相弔


통제사 김공 휘영수 타루비문  <타루비(墮淚碑): 비석을 보면 눈물이 흐른다는뜻>


육삭(六朔) 동안 영(營)에 계시면서  <육삭(六朔): 6달>

일심(一心)으로 보은(報恩)을 도모 했네. <보은(報恩): 나라에 대한 은덕>

몸에는 겸의(兼衣)가 없고  <겸의(兼衣): 두벌 옷>

말씀에는 사(私)에 미치지 않으셨네.

구획(區劃)에 아직 반(半)이 되지 못했는데,  <구획(區劃): 부임의 뜻>

공(公)께서는 어찌하여 갑자기 버렸을까?

부로(父老)는 모두가 슬퍼하고  <부로(父老): 나이많은 이에대한 존칭>

사졸(士卒)들은 서로서로 조문했네.  <사졸(士卒): 사관과 군졸>


---공(公)이 통제사(統制使)가 된지 6삭만에 졸서(卒逝)하였다. 정종(正宗) 10년 병오(丙午)에 비(碑)를 세워 옛적에는 마구리(馬九里)에 있었더니 왕년(往年)에 충렬사(忠烈祠)앞에 옮겨 세웠다가 지금은 세병관내에 세워졌다.


마) <조선왕조실록> 기록 내용(정조10년)

정조10년7월7일에 유진항(柳鎭恒)을 삼도수군통제사로 삼았다. “전 통제사 김영수의 선정(善政)이 구중궁궐까지 들리었으므로 내가 실제로 남녂의 걱정을 잊고 있었는데, 애석하게도 중간에 세상을 떠나고 말았다.”

경은 반드시 마음을 써서 앞 사람이 진작시킨 정사(政事)가 허사가 되지 않도록 하라.” 하였다




4) 통영 충렬사 사당 앞마당 좌측에 숭무당 건물이 있는데, 김중기 통제사가 세운 것이라고 안내판에 적혀 있으며, 전시관에 전시중인 숭무관 관련 고서에는 수결도 보인다.


<문화재청>

통영충렬사 

임진왜란( 壬辰倭亂 ) 중 수군통제사( 水軍統制使 )로서 가장 큰 업적을 남긴 충무공( 忠武公 ) 이순신( 李舜臣 )의 위업을 기리기 위해 세워진 사당이다. 1593년 8월 수군통제사가 된 이후 충무공의 주된 활동무대가 한산도를 중심으로 한 통영 근방이었으므로 가까운 남해 충렬사와 함께 이곳에 그의 위패를 봉안하여 제향( 祭享 )하게 된 것이다. 이것이 창건된 것은 1606년(선조( 宣祖 )39)이었으며 당시 수군통제사로 있던 이운룡( 李雲龍 )이 왕명에 따라 건립하였으니, 그는 곧 임진왜란시 이충무공 휘하에서 왜적을 물리친 역전의 수군장수였다. 그 뒤 1663년(현종 4) 남해 충렬사와 함께 사액을 받은 후 역대 수군통제사들이 매년 봄 가을의 제사를 주관해 왔다. 따라서 『문헌비고( 文獻備考 )』에 이곳 충렬사의 창건 및 사액의 연대를 각각 1614년(광해 6)과 1723년(경종 3)으로 기록한 것은 크게 잘못된 것이다. 그리고 사액( 賜額 )이 내려지는 과정에서도 이곳 충렬사는 우여곡절을 겪었다. 노량에 있는 남해 충렬사의 창건이 여기보다 늦었으면서도 1663년에 먼저 사액이 된 후 이곳에는 아무런 조치가 내려지지 않자 그 해 10월, 사간( 司諫 ) 민유중( 閔維重 )이 경연( 經筵 )에 들어가서 이곳 사우( 祠宇 )에도 사액이 내려져야 함을 건의하였고, 영의정 정태화( 鄭太和 )와 예조판서 홍명하( 洪命夏 ) 역시 같은 내용을 주청함으로써 뒤늦게 사액을 받게 되었던 것이다. 그리하여 이때 이루어진 '충렬사( 忠烈祠 )'란 액자가 참찬송준길( 參贊 宋浚吉 )의 웅건한 필체로 쓰여지게 되었으니 그는 곧 민유중의 장인이기도 하였다. 이 사당의 규모는 본전( 本殿 )과 정문·중삼문 외에 1663년 이후 김경( 金鏡 ), 최숙( 崔숙 ), 김중기( 金重器 ) 등 역대 통제사들에 의해 이루어진 동서재실( 東西齋室 )과 강당 및 숭무당( 崇武堂 )이 자리잡고 있다. 또한 경내에는 특히 어느 사당에서 보다도 많은 비석들이 보존되어 있다. 그 중에서도 가장 오래된 것은 '통제사충무이공충렬비( 統制使忠武李公忠烈碑 )'인데 사당의 정문 우측에 위치한 이 비는 1681년(숙종 7)에 수군통제사 민섬( 閔暹 )이 세운 것이다. 전면에 있는 글은 1614년에 영의정 이항복이 쓴 것으로 현재 여수에 있는 '통제이공수군대첩비( 統制李公水軍大捷碑 )'의 내용과 같은 것이다. 그 뒷면의 음기( 陰記 )는 우암 송시열이 쓴 것으로 입비( 立碑 )의 내력을 전해주고 있다. 그리고 정문의 좌측에는 통제사 김휘영( 金諱永 )의 타루비( 墮淚碑 )가 서 있으며 사당의 뒷편에는 역대 수군통제사들의 비 29기가 나란히 세워져 있다. 그리고 이곳에는 명나라 황제가 이충무공께 내린 팔사품( 八賜品 ), 즉 여덟가지의 선사품과 함께 정조대왕이 내린 어제기판( 御製記板 )이 보관되어 있다.



5) 통영시내 중앙시장에 가면 활어시장에는 횟감이 가득하고, 충무김밥 집이 즐비하다.


지난 연휴 1박 2일을 이용하여 실로 오랫만에 가족여행을 다녀 왔습니다. 합천 해인사, 통영 중앙시장, 충렬사, 통제영터 세병관, 그리고 거제도 남단 외도 해금강 일대를 둘러보고 왔습니다.

시간 사정상 합천 함벽루, 한산도 제승당, 마산 몽고정, 김해 송악단터는 답사하지 못하고 다음 기회로 미루어야 했습니다.

타루비 사진과 김중기 통제사 세우신 충렬사내 숭무당 사진, 그리고 수결 사진은 추후 소개하겠습니다.


댓글목록

김태영님의 댓글

profile_image 김태영
작성일

  바쁜데 시간을 내셨습니다.
동양의 나포리! 아름다운 통영!
개인적으로도 꼭 가보고 싶은 곳입니다.
세병관(국보305호)은 김응해 통제사가 중수 했지요.
사진자료 기대 됩니다.

김항용님의 댓글

profile_image 김항용
작성일

  언젠가 답사해야할 충무 일대를 선험하셨습니다.
마산 몽고정과 김해 송악단터가 궁금합니다.
4개월 전에 김해의 허난설헌 소설 작가 김영희선생님께 의뢰하여 김해 송악단터 현장 답사를 부탁했는데 그곳엔 아무 것도 없다고 합니다. 어찌된 일인지 좀더 살펴봐야 할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