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동 풍산 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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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주회 작성일07-01-01 15:01 조회1,555회 댓글0건본문
■ <고려시대의 안동> (안동시,안동대학교 안동문화연구소, 2006년)
(중략) 이수건의 연구에 따르면, 의성김씨 안동 입향조는 김거두金居斗로부터 시작된다. 김거두는 그의 아들 김천金洊의 호적에 의하면 1390년에 52세였으니 출생년은 1339년(충숙왕8)이며, 벼슬은 고려 공조전서에 이르렀다. 김방경의 4대 외손인 동시에 문화인 대언 류총의 사위이며 문탄공 권한공의 외손서이다. 그는 만년에 경상도 안동으로 내려와 풍산현을 거주지로 삼으면서 이때부터 안동 지방에 살게 되었다.
(4) 의성김씨
의성김씨가 안동에 정착한 것은 14세기 후반경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즉, 좌사윤 김태권이 공민왕12년(1363) 김용의 흥왕사난에 화를 당하자 아들 거두가 外鄕을 따라 낙향한였다고 한다. 태권은 안동김씨 상락군 김방경의 증손서(방경→흔→승고→서 김태권)가 되며, 거두 또한 안동권씨 정승 권한공의 외손서(권한공→서 류총→서 김거두)가 된다.
■ <안동 풍수 기행, 돌혈의 땅과 인물> (이완규, 2001년)
소산리 혈처, 삼소재
뛰어난 자연조건과 유구한 역사를 가진 소산리에는 선김과 후김이 사이 좋게 오랜 세월 세거해 왔다.
(중략) 현재 모습의 삼소재가 언제 건립되었든, 소산에 먼저 자리를 잡은 것은 후김이 아니라 선김이었다. 이 사실을 증명이라도 하듯이 삼소재는 소산의 주룡이 힘있게 뻗어 내리는 주맥에 기대어 마을 한복판에 높직이 자리잡고 있다. 내룡의 흐름에 따라 자연향대로 동쪽을 향해 앉아 있는 삼소재의 품새는 그 위세가 당당하다. 그러므로 소산에 삼소재보다 더 큰 규모의 집이 있지만 감히 삼소재의 권위를 넘볼 수 없는 것이다.
소산 김씨
소산리의 후안동김씨를 흔히 소산 김씨라 부른다. 소산리에 처음 들어온 후김은 비안현감 사은 김삼근(?-1465)의 아버지 김혁이라고 한다.
의성김씨 안동 입향조
김용비의 후손 중 누가, 무엇 때문에 안동으로 오게 된 것일까? 의성김씨 안동 입향조는 김용비의 5세손인 공조전서 金居斗 이다. 입향조는 여러 면에서 기억해 두어야 할 인물이다. 그것은 한 가문뿐만이 아니라 그 지방의 역사와 문화를 이해하기 위한 좋은 자료가 되기 때문이다.
집안에 전해오는 김거두의 행적에 따르면 그는 고려 충숙왕 8년(1339)에 태어났으며 고려의 국운이 끝나갈 무렵 동생인 金居益과 함께 개성을 떠나 落南한다. 그때 한양성 남문밖에 이르러 김거두는 동생 김거익에게 “우리 형제가 같은 곳으로 가게 되면 뒷날 반드시 사는 곳이 좁아질 것이니 일찍부터 서로 떨어지는 것만 못할 것이다. 너는 호남으로 가고 나는 영남으로 가서 사는 것이 옳을 것” 이라 하고는 안동 풍산현 신지동, 즉 지금의 상리에 정착한다. 김거두가 풍산에 터를 잡은 이유는 이웃한 소산리에 선외가인 충렬공 김방경의 후인들이 세거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김방경(1212-1300)---김흔(1251-1308)---김승고---여 + (의성인)김태권
김용비(묘 의성)---자---손---증손 김태권
---5세손 김거두(1339-?)---6세손 김천(1362-?) → 12세손 학봉 김성일(1538-1593)
ꁾ 종합해 보면
1)
소산리에는 후김(신안동)보다 선김(구안동)이 먼저 자리를 잡고 살고 있었다. 아마도 1295년 충렬공(김방경)의 상락군개국공 식읍 1천호 식실봉 3백호 봉작, 이어지는 김흔의 습봉, 1312년 김순의 습봉으로 풍산 일대(회곡, 소산 등)에 후손들이 세거하게 되었고(좌랑 김승고, 1342,3년 안동 회곡 거주 등), 처가 또는 외가 인연으로 청주정씨(정책-정오, 정포), 의성김씨(김거두-김천), 안동권씨(권윤명-) 등이 이 일대에 입향하게 되는 것으로 볼수 있음.
2)
의성김씨 안동 입향조 김거두(*안동김씨 김승고 사위인 김태권의 아들)가 고려말(1363년 혹은 1390년대) 외향인 안동 풍산 신지동(현 상리)로 낙향 정착하는데, 이웃한 소산리에 선외가인 충렬공 김방경의 후인들이 세거하고 있었기 때문.
3)
소산리에 처음 들어온 후김은 비안현감 사은 김삼근(?-1465)의 아버지 김혁이라고 한다. (여말선초)
4)
여말선초에 도평의공(김구정)의 아들 김자첨은 회곡에서 의성 사촌으로 이거. 이후 선김의 풍산일대 거주 흔적이 보이지 않음.
5)
1392년 12월, 익원공(김사형) 상락백 식읍 1천호 식실봉 3백호 봉작
6)
(1500년대) 소산리에 선김의 익원공파(언묵)가 낙남하여 정착. 1674년 삼소재 건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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