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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동의 광산김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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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주회 작성일07-01-02 21:59 조회2,321회 댓글1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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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려시대의 안동> (안동시,안동대학교 안동문화연구소, 2006년)


(1) 광산김씨

예안 오천의 광산김씨는 광주의 13개 토성 가운데 하나였고, 중앙에 본격적으로 진출하기 시작한 시기는 고려 후기부터였다. 따라서 통혼권도 재경관인에까지 확대될 수 있었다. 사원士元→진稹 부자는 순흥안씨와 안동권씨의 여서가 됨으로써 이후 그 후손의 일파가 안동에 낙향하는 계기가 되었다.

특히 김진은 안향安珦(순흥인)의 외손이고, 권윤명權允明(안동인)의 여서인 동시에 당시 대벌족인 김방경의 외손서였으며, 진의 손자 무務가 다시 김서린 金瑞麟(안동인, 繕工令)의 사위가 됨으로써 그의 후손들이 안동에 이거 정착하게 되었다.


*김방경→여서 권윤명→여서 김진


*김련→김사원→김진→2김천리→김무+(안동인) 김서린 딸

→2김숭지→김회→2김효로→1김연→1김부필→1김해(근시재, 의병장)



■ 近始齋金先生墓誌銘 128_276a


---葬縣西知禮村癸向之原。與上洛公金方慶之墓同原。蓋先生於上洛爲外裔故。

(중략) 天啓丙寅。上洛之孫有按節本路者。勒令發移先生之墓。明年二月。權厝齋舍後麓。會國有金革事。不得擇地安厝。事定。奉窆居音谷坐辛向乙之原。


---이 해 11월 경오일(庚午日)에 고을 서쪽 지례촌(知禮村) 계향(癸向)의 자리에 장례를 치렀는데, 상락공(上洛公) 김방경(金方慶)의 묘소와 같은 묘원이다. 이는 선생이 상락공의 외손이기 때문이었다.

(중략) 천계(天啓) 병인년(丙寅年 1626년 인조 4년)에 상락공의 후손으로 본도(本道)의 감사(監司)로 부임한 자가 있어 강제로 선생의 묘소를 옮기라고 하여 그 이듬해 2월에 임시 재실(齋室)의 뒤쪽 산기슭에다 안치해 놓았다. 그때 마침 나라 안에 전쟁이 나 묘지를 택하여 안장하지 못하였다가 전쟁이 끝난 뒤에 거음곡(居音谷) 신좌 을향(申坐乙向)의 자리로 이장(移葬)하였는데, 때는 12월 아무날이었고, 그 뒤 무신년(戊申年 1668년 현종 9년)에 풍수가(風水家)의 말에 따라 또 송음동(松音洞) 유좌(酉坐)의 자리로 이장하였는데, 그 날짜는 4월 24일이라고 한다.



■ 광산김씨 예안파 소개코너

http://kwangsankim.or.kr/a006/5002/ka02.htm


갈암(葛庵) 이현일(李玄逸)이 쓰고 있는 근시재(近始齋) 김해(金垓)의 [묘지명]에,

"이 해 11월 경오(庚午)일에 현(縣)의 서쪽 지례촌(知禮村)의 북쪽 들에 (김해를) 장례지냈으니, 상락공 김방경의 묘와 같은 산자락이다. 대저 선생(김해)은 상락공의 외손인 까닭이다."


안동김씨(상락김씨)와 광산김씨 사이의 범상치 않은 관계는 광산김씨 예안파의 현 종손인 김준식씨를 면담하는 과정에서도 드러났다.

"광산김씨가 안동으로 들어온 것은 무(務)자를 쓰시던 밀직부사공(密直副史公; 天利)의 둘째 아드님때 부터이지요. 저의 21대조 이신데요, 고려말선초에 안동으로 내려오셨지요. 처가가 영가김씨(안동김씨)여서 안동으로 낙향하시게 된 것이지요."

김무는 안동으로 내려와서 처음에는 남선면에 거주하였던 것 같다. "고려 말에 안동으로 낙향하셨어요. 남선면, 풍천면 등으로 옮겨다니며 살다가 예안 오천(烏川)에 세거지를 정하게 되는 것이지요."


김준식씨가 말하였다. "소감(少監; 金務)의 아들 목청전 직(穆淸殿 直) 숭지(崇之), 손자 음성현감 회(淮)가 풍산 도양동(道陽洞)에 거주하다가 증손 성균생원 효로(孝盧; 1454-1534) 때에 예안 외내(烏川)에 정착하게 된다."



ꁾ 

1)

상락공(김방경, 1212-1300) 셋째사위 (안동인)권윤명의 사위가 (광산인)김진이다.


2)

(광산인)김진의 손자 김무의 배위가 (안동김씨)김서린金瑞麟(繕工令)의 딸이어서, 그의 후손들이 안동에 이거 정착하게 되었다. 고 하는데,

우리 문중 상락공 현손 항렬 중에 김서린이 누구인지 알수 없다.


*김방경(1212-1300)→여서 (안동인)권윤명→여서 (광산인)김진


*(광산인)김련(1215-1291)→김사원→김진→2김천리(1333-?)→김무+(안동인)김서린 딸

→2김숭지→김회→2김효로(1445-1534)→1김연(1487-1544)→1김부필(1516-1577)→1김해(1555-1593, 근시재, 의병장)


2-1) 

상락공의 현손 사위인 김첨이 광산김씨라고 하는데, 김첨과 김무는 시기상 동시대로 보임.


*김방경(1212-1300)---김선---김승택---김묘---7녀+김첨(총재, 광산김씨)


3)

1534년 (광산인)김무의 증손 김효로의 묘를 상락공 묘 바로 위에 썼다.

ꁾ 상락공 묘가 실전되었었다면, 이때 상락공 묘소를 찾은 듯. (묘지석 발견)

상락공 묘지명은 1979년 기미보에 처음 실린 것으로 보아 1930년대 또는 1970년대 상락공 묘소 정비시 묘지석을 다시 발견하고 탁본한 듯.


4)

1580년 경진보 발간시, 상락공 묘가 '안동 예안현 지례촌 속칭 능동'에 있다고 적었다.

 

5)

1593년 김무의 6대손이자 김효로의 증손인 김해의 묘를 상락공(김방경)의 묘와 같은 산자락에 썼는데, 김해가 상락공의 외손이기 때문이었다.

ꁾ 이때는 이미 상락공의 묘를 이미 인지하고 있었음을 알수 있다.


6)

1602년, 벽오 이시발, 안동대도호부사로 재직중에 충렬공 묘지墓誌를 짓고 묘갈을 세웠다.


♠ 이시발(1569-1626) ---김도의 외손자

○공언의 2자 김도의 외손자 (이대건-)이시발은 경주이씨로 1602년 안동대도호부사로 재직시 출렬공(휘방경)의 묘갈을 건립하였고, 그의 유고집인 벽오유고에 충렬공 墓誌가 수록되어 있으며, 김도의 사위 이대건(李大建) 이시발의 손자 이인혁(李寅爀)은 오창 송천서원에 배향되어 있다. *****김공언---2/4김도---따님(+이대건)---이시발


7)

1600년대 초, 한강 정구, 충렬공 제문을 지었다.


♠ 한강 정구(1543-1620) ---문영공(김순)의 외손자 정포의 후손

한강 정구는 고려시대 문영공(휘순)의 큰 사위 정책의 둘째아들 설곡 정포(설곡시고가 전해 옴)의 후손으로 한강집을 지었는데, 이 한강집에 충렬공 제문이 수록되어 있다.


8)

1626년, 상락공 후손 김치, 경상도 관찰사(경상감사)로 부임하여 강제로 김해의 묘소를 옮기라고 하였다.

그 이듬해 2월에 임시 재실(齋室)의 뒤쪽 산기슭에다 안치해 놓았다가 전쟁이 끝난 뒤에 거음곡(居音谷) 신좌 을향(申坐乙向)의 자리로 이장(移葬)하였다.




댓글목록

김윤식님의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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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대부님, 새로운 접근 신선하게 느껴지네요.
이어지는 글 기대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