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 -호곡집-남용익(南龍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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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내영환 작성일07-01-30 11:33 조회1,481회 댓글0건본문
남용익(南龍翼)
1628(인조 6)∼1692(숙종 18). 조선 중기의 문신·학자. 본관은 의령. 자는 운경(雲卿), 호는 호곡(壺谷). 부사 득명(得明)의 아들이다.
1646년(인조 24) 진사가 되고 1648년 정시문과에 병과로 급제한 뒤, 시강원설서·성균관전적과 삼사를 거쳐, 병조좌랑·홍문관부수찬 등의 요직을 역임하였고, 잠시 경사도사로 좌천되었다가 다시 삼사로 돌아왔다.
1655년(효종 6) 통신사의 종사관으로 일본에 파견되었는데, 관백(關白)의 원당(願堂)에 절하기를 거절하여 음식 공급이 중지되고, 여러가지 협박을 받았으나 굴하지 않았다.
이듬해 돌아와 호당(湖堂)에 뽑혀 들어갔고 문신중시에 장원, 당상관으로 진급하여 형조·예조참의, 승지를 역임하고 양주목사로 나갔다.
현종 때는 대사간·대사성을 거쳐 공조참판을 빼고는 전 참판을 지냈으며, 잠시 외직으로 경상·경기감사로 나갔다가 형조판서에 올랐다.
1680년(숙종 6)부터 좌참찬·예문관제학을 역임하고, 1689년 소의 장씨(昭儀張氏)가 왕자를 낳아 숙종이 그를 원자로 삼으려 하자, 여기에 극언으로 반대하다가 명천으로 유배되어 3년 뒤 그곳에서 죽었다.
문장에 능하고 글씨에도 뛰어났으며, 효종·현종·숙종 3대에 걸쳐 청화요직을 두루 역임하고 문명을 날렸으나 즐거워하는 기색이 없었고, 늘 근신하고 근면하였다.
저서로는 신라시대부터 조선 인조대까지의 명인 497인의 시를 모아 엮은 《기아 箕雅》 및 《부상록 扶桑錄》, 그리고 자신의 시문집인 《호곡집》을 남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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