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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문학기행/정철] (6)나에게 살송곳 있더니 뚫어볼까 하노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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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내영환 작성일07-02-02 11:30 조회1,775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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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문학기행/정철] (6)나에게 살송곳 있더니 뚫어볼까 하노라

 

어느 날 밤, 술상을 마주하고 앉은 정철이 취기가 오르자, “진옥아, 내가 한 수 읊을테니, 너는 그 노래에 화답을 해야 한다.”고 강조하면서 자신이 먼저 노래를 하였다.

옥(玉)이 옥이라커늘 번옥(燔玉)만 여겼더니
이제야 보아하니 진옥(眞玉)일시 적실하다
나에게 살송곳 있더니 뚫어볼까 하노라

(옥이라 옥이라 하길래 반옥이 아니고 참옥이 분명하구나. 이제야 보니 참옥임이 분명하구나. 나에게 살송곳이 있으니 뚫어 보고 싶구나.)

이것은 노골적인 음사(淫辭)다. 구슬이 서 말이라도 꿰어야 보배라, 아름답고 사랑스런 진옥의 자태에 흠뻑 빠져 어찌할 바를 모르는 송강의 모습이 눈에 선하다. 번옥은 인조옥을 말함이니, 소문에 듣던 진옥을 그저 소문만 무성한 한낱 기생일 뿐이려니 하고 대수로이 마음에 두지 않았다가 한번 보고 반해서 염치없이 덤벼들고 싶은 심정을 솔직히, 너무 노골적으로 드러내고 있다. 물론 살송곳은 남자의 성기를 일컫는다. 진옥 역시 만만찮은 상대였으니 화답이 또한 그럴사 하다.

철(鐵)이 철(鐵)이라거든 섭철(鐵)만 여겼더니
이제야 보아하니 정철(正鐵)일시 분명하다
마침 내게 골풀무 있더니 녹여볼까 하노라

(쇠가 쇠라 하길래 그저 그런 쇠인 줄 여겼더니, 이제야 보니 순수한 정철임이 분명하구나, 나에게 풀무가 있으니 녹여볼까 하노라.)

이 작품에서의 철(鐵)은 남성을 비유하고 있는데, ‘섭철’은 행실이 좋지 못하여 평이 나쁜 남성을, ‘정철’은 행실이 돈독하고 인덕이 높은 남성을 지칭한 것이다. 정철(鄭澈)을 정철(正鐵)로, 즉 동음이의어로 비유하여 뜨거운 몸으로 녹여버리겠다는 진옥의 노래도 음사임이 틀림 없다. 그러나 멋있는 사내와 멋있는 기생의 희롱이 문학으로도 손색이 없다. 즉 진옥의 젊고, 아름답고, 뜨거운 가슴으로 인덕과 교양을 겸비한 이런 남성인 정철과 함께 사랑을 나누겠다는 심정을 헤아려 볼 수 있다.

이와 같이 정철과 기녀 진옥은 이런 수작을 주고 받았다. 뚫고 녹인다는 말은 바로 성행위를 뜻하는데, 옥을 뚫고 철을 녹인다는 비유를 사용해 묘미가 있는 수작을 만들어낸 것이다. 점잖은 사람이라도 기녀와 만나 음란한 짓을 하는 것은 얼마든지 허용되었고, 그런 짓거리를 시조로 노래한다고 해서 지탄의 대상이 될 수는 없다. 명분과 격식을 갖추어 문집에 실은 시조도 있지만, 파탈을 하고 놀면서 즉석에서 지어 부르고 만 시조가 더 많았을 것이다.
이렇게 송강과 진옥은 서로를 이해하는 사이가 되었다. 하지만 1592년(선조 25) 정철은 적소 생활에서 풀려서 다시 서울로 돌아가 벼슬 생활을 하게 되었다. 진옥은 사랑했던 연인 정철과의 헤어짐을 아쉬워하면서 이별을 노래하였다. 기생 진옥도 당시 둘 사이의 감정을 시로 남기고 있다.

이밤에 이별하는 사람이 얼마나 많겠는가,
아득히 밝은 달빛만 물 위에 지는구려,
애닯도다 이 밤을 그대는 어디서 자는가,
나그네 창가엔 구름에 숨은 기러기 울음뿐이네,

유배에서 풀려난 송강이 서울로 올라와 진옥에게 함께 살 것을 청했으나 진옥은 끝내 거절하고 강계에서 살았다 한다. 이러한 진옥은 시조문헌에는 ‘송강첩(松江妾)’이라고만 기록되어 있다. 대개는 강릉 명기, 평안도 기생 홍장 등 기생 이름을 적는 것이 관례였다. 하지만 시조문헌 중에 유독 진옥만이 ‘누구의 첩’이라고 기록되어 있다. 이는 진옥도 물론 기생임에는 틀림이 없지만, ‘송강첩’이라고 기록된 것은 송강의 지위를 생각했기 때문에 이런 결과를 가져온 것이다. 아마도 진옥은 이런 기록으로써 만족했으리라고 생각된다.
출처 : 본인의 노하우/상식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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