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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문학기행/정철] (7)한 잔 먹세 그려 또 한 잔 먹세 그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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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내영환 작성일07-02-06 10:01 조회1,996회 댓글2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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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문학기행/정철] (7)한 잔 먹세 그려 또 한 잔 먹세 그려

 

석주(石洲) 권필(權韠, 1569-1613)은 정철과는 편지 한장으로 제자와 스승의 관계를 맺게 된 사이이다. 정철은 애주가로 이름이 높고 호방한 성격의 소유하고 있는 인물이다. 그는 본디 술을 무척이나 좋아하였으나 과음하면 좋지 않다는 점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에 <주계문(戒酒文)>을 써 놓고 반성하기도 했다. 여기에서 정철은 술을 즐기는 이유 4가지를 든다. 마음이 불평하여 마시는 것이 첫째이고, 흥취가 나서 마시는 것이 둘째이고, 손님을 대접하느라 마시는 것이 셋째이고, 남이 권하는 것을 거절하지 못하는 것이 넷째이다. 즉 마음이 불평스러우면 순리대로 풀어버리면 될 것이고, 흥취가 나면 시가(詩歌)나 읊조리면 될 것이고, 손님을 접대할 때는 정성으로만 하면 될 것이고, 남이 아무리 끈덕지게 권하더라도 내 뜻이 이미 굳게 서 있으면 남의 말에 흔들리지 않아야 한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권필은 불귀의 객이 되어 누워 있는 송강의 묘를 자나다가 송강 정철의 성품이 잘 드러난 사설시조인 <장진주사(將進酒辭)>를 떠올렸다. 권주가(勸酒歌) 성격을 띤 이 시조는 본래 <장진주(將進酒)>란 악부제명(樂府題名)으로 그 내용은 주로 술을 마시고 흥겹게 즐긴다는 것이다.

한 잔(盞) 먹세그려 또 한 잔 먹세그려 곶 것거 산(算) 노코 무진무진(無盡無盡) 먹세그려.
이 몸 주근 후면 지게 우희 거적 더퍼 주리혀 매여 가나 유소보장(流蘇寶帳)의 만인(萬人)이 우러네나, 어욱새 속새 덥가나무 백양(白楊) 수페 가기곳 가면, 누른 해, 흰 달, 굴근 눈, 쇼쇼리 바람 불 제 뉘 한잔 먹쟈할고.
하믈며 무덤 우희 잔나비 휘파람 불제 뉘우친달 엇더리.

(한 잔 먹세 그려 또 한 잔 먹세 그려. 꽃을 꺾어 술잔 수를 꽃잎으로 셈하면서 한없이 먹세 그려. / 이 몸이 죽은 뒤면 지게 위에 거적을 덮어 꽁꽁 졸라매 가지고 (무덤으로) 메고 가거나, 아름답게 꾸민 상여를 많은 사람들이 울며 따라가거나, 억새, 속새, 떡갈나무, 은백양이 우거진 숲을 가기만 하면 누런 해, 밝은 달, 가랑비, 함박눈, 회오리바람이 불 적에 그 누가 한 잔 먹자고 하리요? / 하물며 무덤 위에서 원숭이가 휘파람을 불며 뛰놀 적에는 (아무리 지난날을) 뉘우친들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본문 초장 ‘무진무진 먹세 그려’에는 송강의 호탕한 성격과 꽃을 꺾어서 술잔 수를 셈하면서 도도하게 즐기는 그이 낭만적인 정경이 잘 드러나 있다. 중장에서는 인간의 최대 약점인 죽음으로 비롯된 무덤 주변의 삭막한 분위기는 대조적인 효과를 나타나며, 종장에서는 이 시조의 독자에게 인생의 무상감을 강조하여 상대를 설득하려는 의도가 확연하다. <장진주사>가 얼른 보기에는 향락주의를 내포하고 있는 듯한 인상을 풍기지마는 좀더 깊이 관찰해보면 이 작품은 그의 생사관을 나타낸 일종의 명상시임을 알 수 있을 것이다. 순연한 우리말로 조금도 부자연스럽거나 서투른 점이 없어 나름대로의 독특한 경지를 개척한 걸작이라 하겠다.
권필은 이러한 <장진주사>에 화답하여 <송강의 묘를 지나다 얻은 느낌(過松江墓有感)>이라는 시 한 수를 짓는다.

빈산에 낙엽지고 가을비 쓸쓸히 내리니,
정승의 풍류도 이처럼 적막하구나.
슬프도다 술 한 잔 다시 못 권하니,
옛날 그대가 읊었던 노래 바로 그대로세.

정철이 생전에는 호령의 재상으로, 그 곧은 말에는 초목도 벌벌 떨었었다. 그러나 세상을 뜨고 나니 별 수가 없는 인간이었다. 그래서 이렇게 노래하면서 그 슬픔을 달래고 있다. 여기에서 옛날 그대가 읊었던 노래는 바로 <장진주사>를 일컫는다. 송강소는 바로 가을비 쓸쓸히 내리는 빈산의 끝에 있다. 송강의 풍류는 바로 이곳 송강소에서 더욱 그윽해졌을 것이다. 아무리 애곡을 해도 하늘과 땅 사이가 멀어 통정이 되지 않아 부슬부슬 내리는 비를 맞으며, 스승을 불렀으나 무덤은 말이 없었다. 술을 마시기로라면 이백에게도 사양을 하자 않은 그였다. <장진주사>를 불러 고래처럼 마시기를 과시하며 죽어지면 누구도 권해주질 않을 것이니, 생전에 흠뻑 마시자고 노래했었다. 그래서 그 노래를 연상하면서 술잔을 올려 소식이 없는 것을 슬퍼하고 있는 권필이다.
출처 : 본인의 노하우/상식 입니다

댓글목록

김만응님의 댓글

profile_image 김만응
작성일

  이백의 시가 생각이 나서 옮겨 봅니다.

"山中與幽人對酌(산중여유인대작)"

兩人對酌山花開 (양인대작산화개)
一杯一杯復一杯 (일배일배부일배)
我醉欲眠卿且去 (아취욕면경차거)
明朝有意抱琴來 (명조유의포금래)

"山中與幽人對酌(산중에서 처사와 술을 마시며)"
둘이 마주 앉아 술을 마시는데 때마침 산에 꽃이 피니
한 잔 한 잔 또 한 잔이로다
나 취하여 졸리우니 그대 먼저 가시게나
내일 아침 생각 있으면 거문고나 안고 오시게

김항용님의 댓글

profile_image 김항용
작성일

  멋진 정철의 장진주사와 만응대부님의 이백 시, 잘 감상했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