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곡선조님이 1억1만1천번이나 읽으신 백이전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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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항용 작성일07-02-12 16:08 조회1,782회 댓글0건본문
백곡선조님께서 백이전을 1억 1만 1천번이나 읽으셨다는 독수기가 있습니다만, 백이전이란 무엇인가 정리해 보았습니다. <독수기가 기록되어 있는 백곡집과 맨 뒷면의 독수기>
<백곡집 十>(栢谷集)
<상기 백곡집 十의 맨 끝에 실려 있는 독수기>
<백이전>에 대하여 1. <백이전>의 등장인물 백이(伯夷)와 숙제(叔齊) 백이와 동생 숙제는 성(姓)이 묵태(墨胎), 중국 은나라의 처사(處士). 고죽군(孤竹君)의 두 아들. 역성혁명(易姓革命)에 반대하는 사상을 투영시킨 인물. 주(周)나라의 무왕이 은(殷)나라를 치려는 것을 말렸으나 듣지 않으므로, 주나라 곡식 먹는 것을 부끄럽게 여기어 수양산(首陽山)으로 들어가 평생 고사리를 캐어 먹으며 살다가 죽은 두 사람.
2. <백이열전(伯夷列傳)> 해설 -사마천(司馬遷)/홍석보 옮김 <전략> 전하는 바에 의하면 백이․숙제는 고죽국(孤竹國) 군주의 두 아들이다. 아버지는 아우인 숙제를 후사(後嗣)로 세우려고 하였으나, 아버지가 죽게 되자 숙제는 형 백이에게 양위하려고 했다. 그러자 백이는, "네가 왕위에 오르는 것이 아버님의 명이다." 하고 끝내 국외로 도망가 버렸다. 숙제도 또한 제위에 오르기를 즐겨하지 않아 도망해 버렸으므로 고죽국 사람들은 중자(中子)를 군주로 세웠다. 그 후 백이․숙제는 서백 창(西伯昌)이 노인을 따뜻하게 모신다는 말을 듣고 거기에 귀속하려고 했다. 그러나 막상 이르고 보니 서백은 이미 죽고 그의 아들 무왕(武王)이 부왕(父王)의 목주(木主)를 받들어 문왕(文王)이라 칭하고 동쪽은 은(殷)의 주왕(紂王)을 치려하고 있었다. 백이․숙제는 무왕의 말고삐를 붙들고 간하였다. "부왕의 장례도 치르기 전에 전쟁을 하려고 하니 이 어찌 효라 할 수 있겠습니까? 신하의 몸으로 군주를 시살(弑殺)하려고 하시는데, 이 어찌 인(仁)이라 할 수 있겠습니까? 그러자 무왕의 좌우에 있는 신하들이 이 두 사람을 베려고 하였으나 태공망(太空望)이, "이 이야말로 의인(義人)이다." 하고 부축하여 데려 가게 하였다. 무왕이 은의 난을 평정하니 천하의 사람들은 우러러보게 되었다. 그러나 백이․숙제는 이를 부끄럽게 여겨 주(周)의 녹봉을 먹으려 하지 않고 수양산(首陽山)에 몸을 숨기고 고사리를 캐 먹으며 연명하다가 끝내 굶어 죽게 되었을 때 다음과 같은 노래를 지었다. 오늘도 저 서산(西山)에 올라 고사리를 캤노라. 폭력으로 폭력을 보답하고도 그 그릇됨을 모르는 무왕 신농(神農)․순(舜)․우(禹)의 호시절은 홀연히 사라졌구나. 이제 우린 어디로 가야 하나, 아아 가자, 죽음의 길로 쇠잔한 나의 운명이여! 이렇게 해서 끝내 수양산에서 굶어 죽었다. 이것으로 보아 과연 두 사람의 마음가운데에는 원한이 없었을까? 어떤 사람은 말했다. "천도(天道)는 공평 무사하여 언제나 착한 사람의 편을 든다." 하지만 백이․숙제와 같은 사람은 착한 사람이라고 할 수 없었을 것인가. 그들은 이와 같이 인과 덕을 쌓고 청렴 고결하게 살다가 이렇게 굶어 죽었다. 또한 공자의 고제 칠십인(高弟 七十人) 가운데 중니(仲尼)는 오직 안연(顔淵)만을 학문을 좋아하는 사람이라고 추상(推賞)했다. 그러나 회(回)는 가끔 쌀뒤주가 비어 있었으며, 지게미나 쌀겨도 배불리 먹지 못하다가 끝내 요절했다. 하늘이 착한 사람에게 보답하는 것이라면 이것은 도대체 어찌된 셈일까? 한편 도척(盜甁)은 날마다 죄없는 사람을 죽이고 사람의 간(肝)을 회치는 등, 포악 방자하여 수천 사람의 도당을 모아 천하를 횡행하였으나 천수(天壽)를 다하고 죽었다. 이것은 그가 어떤 덕행을 쌓았단 말인가? 이러한 것은 가장 현저한 예라 하겠지만 근세에 이르러서도 소행(素行)이 도(道)를 벗어나 오로지 악행만을 저지르고도 종신토록 일락(逸樂)하여, 부귀가 자손 대대로 끊이지 않기도 한다. 이와는 달리 정당한 땅을 골라서 딛고 정당한 발언을 해야 할 때만 말을 하며, 항상 큰 길을 걸으며 공명 정대한 이유가 없으면 발분(發憤)하지 않고, 시종 근직(謹直)하게 행동하면서도 오히려 재화를 당하는 일이 이루 헤아릴 수 없이 많다. 그래서 나는 매우 의심하지 않을 수 없다. 천도라는 것이 있는 것이냐, 없는 것이냐고. 공자는 이에 답하여 말한다. "도를 같이하지 않는 사람끼리는 서로 상의하지 않는다."라고. 이것은 곧 각각 자기 의사(意思)에 따르라는 뜻이다. 그러므로 공자는 또 이런 말도 했다. "부귀라는 것이 뜻대로 얻어질 수 있는 것이라면 마부와 같은 천한 직업이라 할지라도 나는 사양하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구해도 얻어지지 않는 것이라면 내가 원하는 대로 도를 행하고 덕을 쌓겠다." 또한 그는 이렇게도 말했다. "차가운 계절이 되어서야 소나무․잣나무가 푸르러 조락(凋落)하지 않는 것을 알 수 있다." 즉 세상이 모두 혼란 오탁할 때라야 청렴한 선비가 드러나게 된다. 이것은 곧 세속 사람이 부귀를 그렇게 중하게 여기는데 청렴한 선비는 그 부귀를 가볍게 여기기 때문이 아닐까? 공자의 말과 같이 '군자는 세상을 마친 후에도 이름이 칭송되지 못함을 부끄러이 여기는' 것이다. 한(漢)의 가자(賈子)는 '탐욕한 사람은 재물에 목숨을 걸고 의열(義烈)한 사람은 명예에 목숨을 걸고 권세욕이 강한 사람은 그것에 끌려 죽고 범용한 일반 사람은 그저 생명을 탐하고 아낄 뿐이다.'라고 했다. '같은 종류의 광명은 서로 비쳐주고, 같은 종류의 만물은 서로 구하고, 구름은 용을 따라 용솟음치고, 바람은 호랑이를 따라 일어난다. 성인이 나타나 만물이 이를 우러러보는 것처럼' 백이․숙제가 현인이기는 하지만 공자의 칭송을 얻음으로써 그 이름이 더욱더 드러났고, 안연은 독실한 선비이지만 공자의 덕으로 그 덕행이 더욱더 드러났다. 이와 같이 암굴(暗窟)에 숨어 사는 덕이 높은 선비가 그 진퇴에 시운이 맞았다 하더라도, 그 이름이 묻혀 칭송되지 못하는 수가 많은 것은 슬픈 일이다. 촌리(村里)에 살면서 행실을 닦고 이름을 떨치고자 하더라도 공자와 같은 성현의 덕으로 칭송되지 않는다면, 어찌 그 이름을 후세에 남길 수 있겠는가? <사기열전> 서양에서는 그리스의 헤로도토스를 역사의 아버지라고 부르는 것처럼 동양에서는 사마천을 역사의 비조(鼻祖)로 부른다. 사마천은 궁형(宮刑)이라는 비참한 형벌을 당했으면서도 올바른 역사를 서술해야 한다는 일념에서 마침내 '사기'라는 불후의 명저를 내놓았다. '사기'의 구성은 '본기(本紀)', '표(表)', '서(書)', '세가(世家)', '열전(列傳)'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열전'은 문호․학자․정치가․군인․자객․유협(遊俠)․해학가․관리․실업가 등 일세를 풍미했던 인물들의 일생의 일을 기록한 전기이다. '열전'은 그 분량면에서도 방대할 뿐만 아니라 인물의 성격이나 활약상을 유려한 문체로 흥미진진하게 그려 주고 있어 문학적으로도 매우 높은 평가를 받고 있다. 여기에 실린 백이열전은 백이․숙제의 정의로운 삶의 자세를 보여 주는 것이면서도 동시에 작가의 역사 철학적 관점을 가장 극명하게 드러내 보여 주기도 한다. 폭력으로서 폭력을 치는 것은 자기 모순이 아니냐는 백이․숙제의 충고에도 불구하고 무왕이 듣지 않았기 때문에 백이․숙제는 마침내 비극적으로 최후를 마쳤다. 뿐만 아니라 도척과 같은 극악 무도한 인물은 간악한 행동에도 불구하고 천수를 다 했다. 바로 이 점에서 사마천은 천도(天道)라는 것이 있는 것인지 없는 것인지 회의에 빠지지 않을 수 없었다. 이런 고뇌 끝에 사마천은 모순에 가득 찬 이 세상에서 선악 정사(善惡正邪)를 바로 드러내어 후세 사람들의 감계(鑑戒)로 삼는 것이 바로 역사가의 할 일임을 깨닫고 마침내 역사 집필의 붓을 들었던 것이다. 3.관련 시조-성삼문(成三問)의 시조 <수양산(首陽山) 바라보며 이제(夷齊)를 한(恨)하노라~> 수양산(首陽山) 바라보며 이제(夷齊)를 한(恨)하노라. 주려 죽을진들 채미(採薇)도 하난 것가. 비록애 푸새엣것인들 긔 뉘 따헤 났나니. 이제 : 백이와 숙제 채미 :고사리를 캐어 먹음 푸새엣 것 : 절로 나는 풀 같은 것 4.관련 시조-홍익한(洪翼漢)의 시조 <수양산(首陽山) 나린 물이 이제(夷齊)에 원루(寃淚)ㅣ 되야~> 수양산(首陽山) 나린 물이 이제(夷齊)에 원루(寃淚)ㅣ 되야 주야불식(晝夜不息)하고 여흘여흘 우는 뜻즌 지금(至今)에 위국충성(爲國忠誠)을 못내 슬허하노라 수양산 : 산 이름. 중국 산서성에 있는 산으로 백이와 숙제가 거기서 굶어 죽었다고 함. 이제 : 백이(伯夷)와 숙제(叔齊). 은나라가 망하자 수양산에 들어가 주나라의 곡식을 먹지 않고 고사리를 캐어 먹다가 굶어 죽었다 함. 원루(寃淚) : 원통한 눈물 주야불식(晝夜不息) : 밤낮으로 쉬지 않음 여흘여흘 : 여울여울. 여울이 되어 흐르는 물소리 위국충성(爲國忠誠) : 나라를 위한 충성심 슬허하노라 : 슬퍼하노라 5.관련시도-주의식(朱義植)의 시조 <주려 주그려 하고 수양산에 드럿거니~> 주려 주그려 하고 首陽山(수양산)에 드럿거니 헌마 고사리를 머그려 캐야시랴 물성(物性)이 구븐 줄 메워 펴보려고 캐미라 주려 주그려 하고 : 굶어 죽으려고 드럿거니 : 들어갔는데 헌마 : 설마 물성 : 물건의 성질 구븐 줄 : 굽은 것이 믜워 : 미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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