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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항주에 고려사(高麗寺) 복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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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영 작성일07-02-25 10:25 조회2,311회 댓글1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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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침내 고려사(高麗寺)가 복원되었는데...

중국 항주에 고려사가 드디어 복원된 모양이다.

고려의 왕자 대각국사 의천을 비롯해 우리나라와 많은 인연이 있는 이 절이, 일본자본에 의한 호텔이 있는 원 터 옆에 다시 절 건물로 복원된 것이다. 그런데 이미 지난해 초에 대웅전과 천왕전 건물이 완공되었는데도 일반에 공개되지 못하고 그냥 덩그러니 남아있는 모양이다. 왜 그럴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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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사 (명나라 때의 그림)*

이제는 상식화되다시피 했지만 항주의 고려사는 특별히 의천 대각국사와의 인연이 각별하다. 의천 대각국사(義天?1055~1101)는 고려 문종의 네 번째 왕자로 태어나 11살 때 승려가 되어 구족계를 받았으며 12살 때인 1067년에 최고 승직(僧職)인 승통(僧統)에 올랐고 22살 때에는 처음으로 〈화엄경〉과 그에 대한 연구서를 강의했다. 의천은 불교공부가 깊어지자 화엄학과 천태학의 교리상의 차이를 공부하고 싶어서 당시 제일 유명한 스님인 송나라의 정원법사(淨源法師)를 비롯한 스님들과 편지를 통한 문답을 하다가 중국 유학을 결심한다. 그러나 당시 고려 왕실에서 허가를 하지 않자 서른 살이 되던 1085년 왕과 태후에게 편지를 남기고 몰래 중국으로 건너간다.

의천은 7월에 송나라 서울 변경(京)에 들어가 송나라 황제인 철종(哲宗)을 만난 뒤 유명한 승려들을 차례로 만나 교리에 대한 연구와 토론을 한다. 그리고는 항주로 내려가 혜인원(慧因院)이란 절에서 정원을 만나 교리에 대한 토론을 마음껏 했다. 혜인원에 머물 때 불교전적 7,500여 권을 기증하고 많은 재정적인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의천은 고려에 돌아와 천태종을 열게 되며, 정원에게 ≪화엄경≫의 세 가지 번역본과 이 경을 봉안할 장경각 건립비로 금 2,000냥을 보냈다. 정원은 장경각을 건립하고 그 경을 봉안하였는데, 이 때에 혜인원(惠因院)을 고려사(高麗寺)라 이름을 바꾸었으며, 의천의 소상(塑像)을 이 곳에 봉안하기도 하였다.

그러나 이 절은 명,청을 거치고 근대 일본의 침략시기를 지나면서 폐허화된 채 방치되었다가 일본 자본에 의해 화가산장이란 숙박시설로 만들어져 있었다. 이러한 역사적 사실을 알고 있는 김준엽 전 고려대 총장과 용운 스님 등 우리측 인사들이 중국과 수교가 된 이후 수시로 현지를 찾아 복원을 의뢰했었지만 별다른 움직임이 없다가 2004년 11월 절강성 정부의 승인이 나서, 항주 불학원(杭州佛學院) 광천(光泉) 스님의 주도로 옛 고려사 복원이 시작되었다.

복원이 시작되었지만 그 이후 우리의 관심이 소홀해진 것인가, 지난해 1월 대웅전 건물이 완공되었다는데도 그동안 아무런 소식이 없었다. 중국 측은 몇 번 한국을 방문해서 한국 사찰건축을 참고로 하고는 건축 양식을 우리식으로 복원해 놓았다고 한다(직접 가보지 못해 전언형식을 말할 수밖에 없다. 지난해 말 관광차 항주를 들릴 기회가 있었지만 아직 관광코스에 포함되어 있지 않아서인지 안내를 하지 않아 확인할 수가 없었다). 복원장소도 옛 고려사 터는 아니라고 한다. 옛 터에는 일본 시즈오카현 정부와 절강성 정부가 1982년 조약을 맺어 운영하는 화가산장(花家山莊)이라는 호텔이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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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원된 고려사*

사진을 통해서 구해 본 건물은 확실히 중국 건축과는 다르다. 대웅전과 그 앞에 8각 목탑형식의 건물이 있는데, 아마도 이 건물은 천왕전일 것이다. 어쨋든 대웅전은 한국식이다. 원래 명나라 때에 그려진 고려사 전경을 보면 건물양식은 당연히 중국식인데, 복원을 맡은 절강성 정부가 한국과의 관계를 감안해서 한국식으로 복원한 것으로 보인다. 다만 복원과정에서 관리책임을 누가 질 것인가를 놓고 갈등이 있었다고 한다. 이유인 즉, 고려사는 유서 깊은 사찰이므로 항주시 불교연합회에서 관리해야 한다는 주장과 관광진흥을 위해 항주시 관광국에서 총괄 관리해야 한다는 주장이 맞섰다고 한다. 한중불교교류 부분에 대해서 어떻게 기술할 것인지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였다. 의천 스님의 법통을 이어받은 한국 천태종은 여기에 의천스님 상(像)과 한중교류박물관을 별도로 설치하려고 하는 것 같은데 여기에 관한 세부협의도 끝나지 않았다는 얘기도 있었다.

그런데 기왕에 한중교류사를 여기에 전시하려면 나중에 원나라가 이 지역을 다스릴 때에 있었던 역사도 다시 살려야 할 것이다. 그것은 바로 고려말의 한 재력가가 이곳에 부모를 위해 불경을 안치한 사실이다.

그 주인공은 원관(元瓘)이다. 그는 충선왕 때 재상인 밀직사사(密直司使)를 지낼 정도로 왕의 신임이 깊었는데, 일찍이 대장경 1부를 만들어 중국 절강성(浙江省) 영파(寧波) 남쪽 사명산(四明山)에 있는 천동선사(天童禪寺)에 봉안하였으며, 충선왕 2년(1310년)에 어머니가 세상을 떠나자 다시 한 부를 더 만들어 대각국사 의천의 인연이 있는 항주의 고려사에 봉안하고 토지와 노비 등을 기증한다. 이러한 사실을 비석으로 만들어, 글은 당시의 문장가인 민지(閔漬)가 쓰고, 글씨는 원관의 사돈인 김순(金恂 1258~1321 : 김방경의 셋째 아들)이 써서 고려사에 세운다, 안동 김씨 집안에 그 비문이 전해온다.

또 일제 시대에는 상해에 사는 우리 교민들을 중심으로 해서 고려사 복원을 위한 모금운동도 있었다고 한다. 그만큼 우리와는 역사가 깊은 유적이어서, 수교 이후 김준엽 전 고려대 총장 등이 발로 뛰며 복원에 애쓰신 결과 일단 외관상으로 대웅전이 복원되었다. 앞으로 하나 둘씩 본래의 모습을 되찾을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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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중국 항주에서 나오는 신문을 인터넷으로 보니까 올해 춘절(우리의 설)에 정식으로 개원한다고 한다. 그렇다면 다음 달 중순쯤에 문을 여는 것이 되는데, 그동안의 문제들이 어떻게 정리가 되었는지 궁금하다. 복원하는 문제 자체에 너무 신경을 쓴 나머지 구체적인 복원상(像)에 대해서는 우리나라가 등한시 한 것이 아닌가 우려가 되지만 아무튼 중국 항주에 대각국사 의천과 그 다음 여러 사람들의 인연이 서린 고려사가 복원되었다는 소식은 반가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출처:네이버


댓글목록

김항용님의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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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중국 항주에 고려사가 복원되는 기쁜 소식을 잘 읽었습니다. 고려사에 문영공선조님 관련 기록을 어떻게 남게 하느냐가 문제이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