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龍章書院- 所係諸文 原文 國譯 -(용장서원-소계제문 원문 국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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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윤만 작성일07-03-17 17:28 조회1,489회 댓글3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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龍   章   書   院

- 所係諸文 國譯 -


南原龍章書院上樑文略

大司成公惕若齋金先生姿性戇直學術精深

대사성공척약재김선생자성당직학술정심

詩寫冲襟寄酒落於鶴峙鷗潔經尋墜諸講徵

시사충금기주낙어학치구결경심추제강징

妙於牛毛蠶絲辛朝斥邪荷衣屛驪上之騎北

묘어우모잠사신조척사하의병려상지기북

庭抗節素冠招瀘中之魂文山燕獄之寃至今

정항절소관초노중지혼문산연옥지원지금

流涕魯連海東之想於玆妥靈志節同符於三賢

류체노연해동지상어자타령지절동부어삼현

祀享永垂於一體

사향영수어일체


남원의 용장서원 상량문(요약분)

  대사성이신 척약재 김선생께서는 용모와 성품이 우직하시고 학문이 정밀하고 깊으시니, 시문이 가슴에 꽉 차서 글 붙임이 학과 갈매기처럼 우뚝하고 맑게 쇄락하시고, 강론이 소털과 누에 실처럼 고르게 연결되어 신묘하시다. 신조의 사악함을 배척하여 옷을 둘러메고 나귀를 탄 나그네로 몰리었으며, 원나라를 항거하다가 의관없이 노강의 혼백으로 초혼되었습니다. 문천상(文天祥 ; 문산)이 연옥에서 당한 억울함같이 지금에도 눈물을 흘리게 되여 노중련(魯仲連 ; 노연)이 동해에서 익사한 생각으로 이에 혼령이 편안하시리이다. 뜻과 절개가 삼현과 부합되시매 제사를 받드심이 동일하게 영원히 드리우리이다.

註(주) : 1. 惕若齋 : 김구용(1338~1384)의 호

        2. 辛朝 : 辛旽(신돈)의 조정이란 뜻으로 공민왕대를 비하한 말.

        3. 文天祥, 魯仲連은 모두 충절이 있는 지사로 억울하게 죽은 이들이다.

        4. 三賢 : 세분의 어진이 여기서는 포은 정몽주, 목은 이색, 도은 이숭인.

☞ ‘원나라를 항거하다가 의관없이 노강의 혼백으로 초혼되었습니다’에서 척약재께서는 원나라를 배척하는 입장에서 북원 사신의 입국을 반대하시다가 경기도 죽산 및 여주 땅으로 귀양을 가셨으며, 신흥강국 명나라가 매년 말 천필 그 때까지 누계 오천필을 공물로 바칠 것을 요구하였을 때 고려에서는 이를 들어주지 못하였다. 이로써 윈난성 따리로 귀양을 가시다가 쓰촨성 루저우에서 병으로 돌아가신 것이다.


龍章書院 奉安文

福岳鍾靈顯顯令德資性粹如行義剛克麗季

복악종령현현령덕자성수여행의강극려계

僻陋世昩經方性理之學自公始倡圃陶兩隱

벽루세말경방성리지학자공시창포도양은

輿之齋名道學文業一世矜式妙齡通籍師表

여지재명도학문업일세긍식묘령통적사표

國學開豁心目日星炳若辛朝秉忠北庭抗直

국학개활심목일성병약신조병충북정항직

始竄竹南竟流瀘北萬里招魂一杯東天白鷗

시찬죽남경류노북만리초혼일배동천백구

黃鶴月生精神龍章古祠重建昭蕆

황학월생정신용장고사중건소천


용장서원 봉안문

  복악(福척 岳재)에 영기가 모였으니 훌륭한 덕업이 명백하도다. 용자와 성품이 순수하시고 행의가 강직하였도다. 고려말엽에 문화가 뒤떨어져서 경국의 방도가 혼미하였는데 성리학은 공으로부터 시작되었으니 포은과 도은으로 더불어 명망이 같았으며 도학과 문업이 당대의 모범이 되었다. 젊은 나이에 경적을 통달하였으니 국가에 사표가 되었으며 마음공부를 넓게 열었으니 밝기가 일월 같았다. 신조 당시 충절을 지녔으며 원나라에는 곧게 항거하였다. 처음에는 죽남으로 귀양갔다가 마침내 노북으로 유배되었으며 만리밖에서 혼령을 청해 동쪽을 향해 술을 올렸지요. 백구와 황학같고 정신이 달과 같이 밝았사오니 용장 옛 사당을 다시 세워 밝게 갖추었습니다.


龍章書院 誌錄略

大司成公惕若齋金先生本以南原府使淸白

대사성공척약재김선생본이남원부사청백

史廉潔治績施惠民頌德故立祠而又輿圃隱

사렴결치적시혜민송덕고입사이우여포은

鄭先生始倡性理之學辛朝力斥奸臣李仁任

정선생시창성리지학신조력척간신이인임

嘗使北元以國書不遜大被咆喝抗節不屈遂

상사북원이국서불손대피포갈항절불굴수

竄大理衛至瀘洲病卒以帝命衣冠招魂而葬

찬대리위지로주병졸이제명의관초혼이장

恭讓王二年庚午立院

공양왕2년경오입원

配享又梁靑溪忠壯公立祀

배향우양청계충장공입사

時我 正廟朝時下 傳敎故其時本院移建于

시아 정묘조시하 전교고기시본원이건우

南原郡周生面上洞村

남원군주생면상동촌


용장서원의 서원지를 초략함

  대사성공이신 척약재 김선생께서는 본래 남원부사로서 청백리로 청렴결백하여 공적을 이뤄 은혜를 베풀었으니 백성들이 치덕을 칭송하여 사당을 세웠으며 또한 포은 정선생과 더불어 성리학을 창시하셨다. 신조와 간신 이인임을 힘써 물리쳤는데 일찍이 원나라에 사신으로 갔을 때 국서가 공손하지 않다하여 크게 꾸짖음을 당했으나 절개를 굽히지 아니하고 항거하다가 드디어 대리로 귀양가게 되었고 노주에 이르러 병으로 돌아가셨는데 황제의 명에 의하여 의관으로서 초혼하여 장사지냈으며 공양왕 2년 경오년에 이 서원을 건립하였다.

  그 뒤에 양청계 충장공을 여기에 배향하였으니 이 때가 조선 정조 때이고 전교가 내린 까닭에 그 때 본원을 남원군 주생면 상동촌에 옮겨 세운 것이다.

註(주) : 梁靑溪 : 양대박(梁大樸)의 호이며 충장은 청계공의 시호이다.

☞ ‘원나라에 사신으로 갔을 때 국서가 공손하지 않다하여 크게 꾸짖음을 당했으나 절개를 굽히지 아니하고 항거하다가 드디어 대리로 귀양가게 되었고 노주에 이르러 병으로 돌아가셨는데’에서 척약재께서는 원나라를 배척하는 입장에서 북원 사신의 입국을 반대하시다가 경기도 죽산 및 여주 땅으로 귀양을 가셨으며, 신흥강국 명나라가 매년 말 천필 그 때까지 누계 오천필을 공물로 바칠 것을 요구하였을 때 고려에서는 이를 들어주지 못하였다. 이로써 윈난성 따리로 귀양을 가시다가 쓰촨성 루저우에서 병으로 돌아가신 것은 앞에서 설명한 대로이다.


龍章書院 丁享祝文

首倡理學心秉忠直萬里臬復百代矜埴春(時隨)丁侑食景仰斯卓

수창리학심병충직만리얼복백대긍식춘(시수)정유식경앙사탁


용장서원의 정일에 드리는 제사 축문

  성리학을 으뜸으로 창시하시였으니 마음으로서 충직함을 지녔도다. 만리 밖에서 혼을 청해 왔으니 백대토록 모범이 되리이다. 봄 정일에 제사를 올리오니 이 높다란 서원이 크게 우러러 보입니다.


倡學識略

我  朝文明之治實三代以後鮮有其此而其

아  조문명지치실삼대이후선유기차이기

源盖始於王氏之季何者勝國五百年間賢明

원개시어왕씨지계하자승국오백년간현명

之主豪傑之佐亦不爲不多而之於聖賢義理

지주호걸지좌역불위불다이지어성현의리

盖蔑蔑他及其垂亡之際牧隱李先生爲大司

개멸멸타급기수망지제목은이선생위대사

成圃隱鄭先生惕若齋金先生陶隱李公潘南

성포은정선생척약재김선생도은이공반남

朴公之諸賢俱以本官兼學官勉進後學於是

박공지제현구이본관겸학관면진후학어시

一國章甫之流琢磨舊習薰道德性程朱性理

일국장보지유탁마구습훈도덕성정주성리

之學大明於世異成  我朝三百年儒雅之

지학대명어세이도성  아조삼백년유아지

化至于今家習正學人和大方不失其蹊徑者

화지우금가습정학인화대방부실기혜경자

伊誰之力歟鳴呼惟樟之生後先生盖三百有

이수지력여명호유장지생후선생개삼백유

餘年而又孤陋甚其於大賢德業安敢有所知

여년이우고루심기어대현덕업안감유소지

識而能發揮其萬一哉數行文字踓甚草草亦

식이능발휘기만일재수행문자유시초초역

以見吾東方斯文發源之由

이견오동방사문발원지유


창학에 관한 간략한 기록

  우리 조정에 문명의 치적이 삼대 이후에서야 이같이 드물게 두었으며 그 근원을 대개 고려 말엽으로 시작했음은 어찌된 까닭일까? 승국 오백년간에 현명하신 군주와 호걸스러운 신하가 적지 않았건만 성현과 의리에 있어서는 거의 보이지 않고 그 종말에 미처서는 목은 이 선생께서 대사성이었고, 포은 정 선생과 척약재 김 선생, 도은이공 반남박공 같으신 제현께서 함께 본직이나 학관으로서 힘써 후학들을 길렀으니 이에 나라 안의 선비들이 옛 습속을 갈고 쫓아 덕성을 마련하였으니 정자와 주자의 성리학이 세상을 크게 밝혀서 왕성하게 되었다. 우리 조정에서의 삼백년에 걸친 훌륭한 학문이 지금에 이르러서 가정마다 올바른 학문을 익히고 사람들이 큰 방도를 알게 되었으니 그 지름길을 잃지 않는 것이 그 누구의 힘이리오. 아! 유장의 태어남이 선생보다 대략 삼백년 뒤었으니 견문이 적고 물정에 심히 어두우니 대현들의 덕업에 어찌 감히 아는바가 있다고 그 만분의 일이라도 능히 발휘하리오마는 두어줄 문자가 비록 보잘 것 없으나 역시 우리 동방 유학의 발원 연유를 보게 될 것이다.

註 : 勝國 : 고려를 지칭함이니 앞선 나라를 높여 이르는 말.

    惟樟 : 이유장이니 호는 孤山(고산)이다.


安東后人 凡山 金泰煜 國譯


☞ 이 자료는 경기 포천이 고향이시고, 현재 의정부에 거주하고 계신 김재호(문)님이 실전된 선대 계대의 자료를 찾고자 수년간 국립도서관을 출입할 당시 원문을 입수하였다가 최근 국역을 하여 제공해준 자료입니다. 원문의 출처는 재확인하여야 하겠습니다.


댓글목록

김윤식님의 댓글

profile_image 김윤식
작성일

  개미실 대부님, 의정부 대부님 모두 모두 감사합니다.
(---대사성공이신 척약재 김선생께서는 본래 남원부사로서 ---)
귀한 자료를 보았습니다.

김발용님의 댓글

profile_image 김발용
작성일

  척약재 김선생께서는 용모와 성품이 우직하시고 학문이 정밀하고 깊으시니, 시문이 가슴에 꽉 차서 글 붙임이 학과 갈매기처럼 우뚝하고 맑게 쇄락하시고, 강론이 소털과 누에 실처럼 고르게 연결되어 신묘하시다. 신조의 사악함을 배척하여 옷을 둘러메고 나귀를 탄 나그네로 몰리었으며.......

귀한 자료를 잘 보았습니다.
용장서원을 두 차례 다녀왔지만 이 내용을 알고 갔더라면 더 좋았을것을요.
아는만큼 보인다니까요......

김항용님의 댓글

profile_image 김항용
작성일

  문온공 선조님에 대한 용장서원 관련 자료들을 잘 읽었습니다. 홈에 올리겠습니다,